▲ 마더 테레사 수녀 ⓒ(사진 제공: Evert Odekerken)

마더 테레사 수녀

[천지일보=백지원 기자] 1988년 미국 하버드대 의과대학에서 재밌는 실험이 이뤄졌다. 마더 테레사의 일대기가 담긴 영화를 보기 전후의 면역항체 ‘Ig A’ 수치를 비교 분석하는 실험이었는데, 영화를 보기 전보다 본 후에 수치가 일제히 높게 나타났다. 이에 남을 돕는 봉사활동을 하거나 그러한 일을 보기만 해도 인체의 면역기능이 향상되는 효과를 ‘마더 테레사 효과(Teresa Effect)’라고 한다.

테레사 수녀는 섬김과 헌신, 사랑과 봉사를 실천했던 인물로 전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노벨 평화상으로 받은 상금마저도 ‘나환자 구호소 건립 기금’으로 내놓을 만큼 이웃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

기독교의 핵심 가르침인 ‘사랑’을 삶 속에서 실천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는 테레사 수녀. 그의 희생적인 삶은 오늘날 신앙인들에게 ‘사랑’의 의미를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더욱이 교권다툼 등으로 잡음이 끊이지 않는 오늘날 한국 기독계에 테레사 수녀의 삶은 ‘종교인’의 참모습을 생각하게 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신앙이 각별했던 그는 18세 되던 해, 로레토 수녀회에 들어가 인도로 떠나면서 인도와 인연을 맺었다. 수녀가 된 이후 지리학 교사로 파견됐고, 로레토 수녀회 안에서 평생을 다할 것을 서원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게 됐다. 테레사 수녀는 1946년 피정을 가던 도중 “모든 것을 내려놓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돌아보라”는 신의 음성을 들었다고 전했다. 이후 그는 수녀회 탈퇴 절차를 마치고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시작했다.

그의 봉사는 인도의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됐다. 인도의 빈민가인 ‘캘커타’에 거주하면서 ‘사랑의 선교 수녀회’를 설립해 빈민이나 고아, 나병환자, 굶주리는 사람 등을 도왔다. 이 무렵부터 그는 ‘마더 테레사’로 불리며, 가난한 이들의 어머니로서 살았다.

당시 인도는 전쟁 등으로 길거리에 빈민들이 난무했다. 빈민가 사람들은 몸에서 구더기가 끓기도 했고, 피고름이 나오기도 했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고 정성스레 돌보며 주위 사람들에게 많은 감동을 전했다. 낮아지는 마음과 남을 섬기는 마음이 없었다면 어려운 일들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무섭다고 피하는 곳, 가장 어두운 곳에 테레사 수녀가 손을 내밀며 작은 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이 일을 하는 것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인도 관리들은 외국인이라며 반발했고, 수녀는 수녀원 안에서만 지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보수 로마 가톨릭 인사들의 반감을 사기도 했다.

하지만 그와, 함께한 수녀들의 꾸준한 노력은 결국 인정받았다. ‘사랑의 선교 수녀회’는 교황청으로부터 정식 승인을 받아 교황 직속 조직이 됐다.

인도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힘들고 아픈 사람들을 위해 일생을 바친 그는 종교, 인종, 시대를 초월해 존경받는 인물로 꼽히고 있다.

죽어 가는 사람들을 위한 시설이나 고아, 버려진 아이들을 위한 시설 등을 설립하고, 나병 환자들을 위한 캠페인을 벌였다. 그는 또한 워싱턴에 입양센터(아동을 위한 테레사의 집)를 세워 사생아·미혼모 문제 등을 해결하고자 했다.

그는 수녀이긴 했지만 가톨릭만 옳다고 고집하지 않았다. “우리는 누구든 개종을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의 이름으로라도요. 신앙을 갖는 것이나 개종하는 것은 하느님의 은총만이 이루어낼 수 있는 일입니다.”

온몸으로 사랑을 실천한 마더 테레사 수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이웃을 위해,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정신은 가톨릭교인뿐 아니라 전 세계인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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