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선거는 상대가 있는 가운데 한판 승부를 가린다는 점에서 종종 ‘전쟁’에 비유되곤 한다. 민주주의 축제인 선거를 꼭 전쟁 등의 부정적인 표현으로 설명해야 하느냐고 따지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선거정치의 작동방식이 전쟁과 비슷하기 때문에 비유적으로 설명하다 보니 적절치 못한 표현이 많은 게 사실이다.
‘테러와의 전쟁’ 부시 전(前) 미국 대통령을 상징하는 이 표현은 말만 들어도 정의롭고 당당하며 그래서 악의 무리에 맞서는 착한 사람들의 분노가 담겨 있는 듯하다. 이 전쟁에 동참하지 않으면 마치 악의 편인 것처럼 느끼게 되는 것도 이런 이유다. 이처럼 어떤 사물이나 대상을 바라보는 구조화된 심리적 체계를 ‘프레임(구도)’이라고 한다.

우리한테도 잘 알려진 조지 레이코프(G.Lakoff)는 그의 주저 ‘프레임 전쟁’에서 프레임을 어떤 이슈를 담아내고 정의하는 틀로 설명하고 있다. 아주 사소한 일에서부터 전쟁 같은 거대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어떤 이슈를 담아내고 그 이슈의 정의까지 담보하는 인식의 틀은 매우 중요하다. 프레임이 어떻게 작동되는지에 따라 승패가 결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4.11 총선의 프레임은?
민주통합당 한명숙 새 대표체제가 들어서자 일부 보수언론에서는 4.11 총선을 ‘박근혜 대 노무현 구도’라고 했다. 또 어떤 이는 ‘박정희 대 노무현 구도’라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의 바탕에는 4.11 총선의 프레임이 어떻게 작동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있다. 이번 총선 프레임이 박근혜 대 노무현으로 짜인다면 한나라당은 해볼 만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실정을 덮고 정권심판론을 잠재울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부각시켜 반노(反盧)와 비노(非盧)까지 흡수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괜찮은 프레임인가. 박근혜 대신 박정희를 개입시키는 것은 한 술 더 뜬 것이다. 경제위기의 시대에 박정희에 대한 향수까지 끌어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레임은 진실에 바탕을 둬야 대중과의 소통을 통해 힘을 얻을 수 있다. 아무리 좋은 기획으로 프레임을 짜려고 시도해 봤자 대중이 공감하지 못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지난해 양극화가 극대화되고 있는 시점에서도 이명박 대통령이 꺼낸 ‘공정사회론’이 허망하게 끝난 것은 국민이 전혀 공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근 보수언론이 기획하고 있는 박근혜 대 노무현 구도도 실상은 예외가 아니다. 이 대통령을 은폐시켜 박근혜라는 신상품을 띄우고 민주통합당에 친노정당의 색깔을 입히려는 의도에 다름 아니다. 여기에 국민이 얼마나 공감할까. 현실은 박근혜가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이 더 본질적인 것이 아닌가.

물론 변수는 있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쇄신을 정말 제대로 해서 이명박 대통령의 어두운 그림자를 모두 걷어내고 한나라당을 ‘전혀 새로운 정당’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것이다. 반대로 한명숙 대표는 인적쇄신을 했다는 것이 고작 민주통합당을 뼛속까지 친노로 물들였을 경우다. 이쯤되면 박근혜 대 친노(노무현) 프레임이 통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경우가 현실적으로 가능하다는 말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박근혜의 쇄신과 한명숙의 쇄신, 그 결과에 달려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에 따라 전혀 다른 프레임, 이를테면 이명박 대 김대중-노무현 연합군의 대결구도가 펼쳐질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프레임을 인물이나 정책, 그 어떤 방식으로 기획하더라도 이명박 대통령을 배제시키기엔 민심이 너무 흉흉하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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