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주삼 미술품 복원가ㆍ미술품 복원연구소 art C&R 소장
임진년이 밝았다. 올해도 어김없이 새해는 보신각의 타종으로 시작되었다. 공중파에서는 이를 실시간으로 방송하고 많은 군중이 직접 타종소리를 듣기 위해 보신각에 모여들 정도로 온 국민이 새해 염원을 비는 중요한 행사가 되었다.

우리에게 이처럼 연례행사가 되어 버린 타종은 실은 1920년대 경성방송국 개국과 더불어 기획된 행사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이전에는 신년을 알리는 타종 기록은 없었다고 한다. 그러니 이 타종 행사는 비교적 최근에 생긴 전통인 셈이다.

보신각 타종의 원래 목적은 성문을 열고 닫는 시각을 알리는 것이었다. 각각 33번과 28번의 타종을 하였다. 따라서 새해 타종 행사에서 33번의 타종을 하는 것은 새해를 연다는 의미를 부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째든 33번의 타종 기간 내내 종소리를 듣는 사람들은 숙연한 감동을 받게 된다.

이 범종의 울림은 단순히 새해를 연다는 분위기 때문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모자란 심금을 울리는 감동이 있다. 이는 우리 범종 특유의 중후한 음색과 긴 울림 때문이다. 맑고 아름다운 종소리를 추구하는 서양종과 비교했을 때 동양 종은 청하하면서도 긴 울림의 음색이 특징이다. 특히 우리의 범종은 동양 삼국의 종들 중에서도 아름다운 음색과 가장 긴 여운으로 유명하다.

최근 국립중앙과학관의 삼국종 비교 조사결과 우리 범종의 우수성은 크게 종의 상단부에 있는 굵은 대롱모양의 음관과 종의 바로 밑에 있는 움푹 파인 공간, 즉 울림통 혹은 명동이라고 하는 공간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특히 음관은 타종시 종내부에서 발생하는 잡음을 빼내는 일종의 음향 필터 역할을 하고 울림통은 종소리와 공명 진동을 일으켜 긴 여운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종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종의 형태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종의 성분 비율이다. 우리 범종은 일반적으로 청동으로 만든다. 구리 그 자체는 너무 무른 금속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종은 물론 기타 기물은 만드는 것이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구리에 주석을 섞어 소위 청동이라고 하는 합금상태로 주조를 하였다.

주석의 함유량은 청동기의 단단한 정도와 직접 연관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종의 제작에 있어서 음색을 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주석의 함유량이 높아질수록 더 청아한 소리가 나게 되지만 반면에 깨지기 쉽기 때문에 구리와 주석의 적절한 비율 배분이 좋은 범종을 제작하는 데 관건이 된다.

최근 광주시민의 성금으로 제작된 ‘민주의 종’이 구설수에 올랐다. 제작과정에서 깨진 종을 수리해서 납품을 했다고 하고 며칠 전에는 납품 과정에서 청동의 무게를 속였다는 의혹까지 불거졌다. 더구나 이 주조소에서 범종을 제작할 때 적용한다는 밀납 주조 기법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이 사건은 주조서가 책임을 지고 다시 제작하여 납품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것 같다.

이 구설수의 원인은 막대한 금액이 드는 범종의 제작을 전적으로 민간업체들에 일임함에 따라 발생하는 부작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현재 보신각에 있는 범종은 보존상의 위험성 때문에 86년 우리 범종종의 대표격인 성덕대왕 신종, 일명 에밀레종을 토대로 재제작하여 교체한 것이다. 많은 학자들이 형태를 모사했을 뿐 음색은 원래 종과는 질적으로 많은 차이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참에 국가 주도 하에 범종을 제작하는 것이 어떨지 조심스럽게 재안해본다.

문화재청이 주도하여 범종 장인들을 모아 제작소를 운영관리 하고 과학적인 조사를 곁들인다면 형태는 물론 음색까지도 재현된 범종을 만드는 것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보신각의 범종 소리에도 감동을 받는데 하물며 성덕대왕 신종의 진짜 음색을 들으며 새해를 시작하면 어떨까 하는 벅찬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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