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달이 가기 전에 시론을 통해 꼭 밝히고 싶었던 글이 있다. 금년은 십이지의 다섯 번째인 임진년(壬辰年) 용(龍)의 해, 그것도 흑룡의 해라고 하여 모두들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하는 분위기다.
그러면 여기서 잠시 용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용은 신화나 전설 속에 등장하는 동물일 뿐 실존하지는 않는다. 즉, 상상 속의 동물이라는 얘기다. 또 용이 가진 상징성도 동․서양의 설화나 신화마다 제각각이다. 이처럼 용의 실체뿐만이 아니라 상징하는 바에 있어서도 다양한 의견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비밀스런 동물임을 방증하는 것이다.

아무튼 서양에서는 특히 중동지방에서는 용은 뱀의 형상을 취했다고 생각하며, 사악한 악(惡)의 상징이며 숭배가 아닌 퇴치의 대상으로 여겨져 내려오고 있다.

반면에 동양에서는 특히 중국에서는 선행과 풍요를 상징하며, 퇴치가 아닌 숭배의 대상이며 유익한 존재로 여겨져 내려오고 있다. 따라서 동양에선 한국과 일본을 비롯해 많은 나라들이 중국의 문화권에 속해있는 관계로 용의 해인 금년 역시 많은 풍요와 복을 가져올 것이란 기대감에 부풀어 있으며, 심지어는 무속인을 찾아가 올해 무슨 좋은 일이 있을는지, 돈을 많이 벌 수 있는지, 결혼은 할 수 있는지, 승진은 할 수 있는지를 묻는 이들로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룬다고 한다.

그렇듯이 이 땅엔 온통 용의 기운과 세력으로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음을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통해 충분히 알 수 있다. 예컨대 용상(龍床) 용포(龍袍) 등 나라의 주인인 임금을 휘감고 있는 것은 온통 용의 형상으로 치장하고 있었고, 심지어 임금의 얼굴마저 용의 얼굴이라 해서 용안(龍顔)이라 불렀다. 나라님이 용의 기운에 사로잡혀 있는데, 세인들이야 오죽했겠는가. ‘등용문’ ‘용두사미’ ‘개천에서 용 났다’ 등 용이 들어가지 않은 말이 없다 할 정도로 우리 민족은 오랜 세월 이처럼 용과 함께 살아왔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역사 혹은 설화나 신화 속에 꼭 용이 숭배의 대상만은 아니었음을 말해주는 사찰을 발견할 수 있었다.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에 위치한 만어산에 가면 46년 가락국의 김수로왕이 세웠다고 하는 만어사라는 사찰이 있다. 이 만어사에 얽힌 수많은 전설가운데 하나는 사찰녀(악귀) 다섯과 흑룡이 사귀면서 횡포를 일삼다가 부처님의 설법으로 돌로 변했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 사찰의 전설뿐 아니라 기독교의 성서에서도 용은 절대 숭배의 대상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성서에 보면 하늘의 하나님을 호위하고 있는 네 천사장이 있는데, 그 네 천사장 중에서 하나님보다 높아지겠다는 욕심으로 인해 결국 하늘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는 천사장 하나(루시엘 또는 루시퍼)가 있다. 이 천사장이 창세기 에덴동산에서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인 바로 그 뱀이며, 오늘날까지 이 지구촌을 주관해 온 장본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6천 년 동안 빼앗긴 지구촌을 다시 회복하고 인류의 죄를 없애고 생명을 주기 위해 지금까지 이 용과 싸워 왔던 것이며, 결국 때가 되어 용과 싸워 이기고 용을 잡아 가두는 역사가 있음을 성서의 요한계시록을 통해 예고해 왔음을 발견할 수 있다.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라고 기록된 말씀이 그 증거다.

‘옛 뱀’이라 했으니 창세기에 등장해 아담에게 죄를 짓게 한 바로 그 뱀이었으며, 인류를 죄로 물들게 해 오늘날까지 주관해 온 사단이요 마귀였음을 확연히 깨달을 수가 있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상기할 것은 이 뱀의 실체를 아는 것이다. 예수 초림 때 당시 종교세상을 지배하고 있던 종교지도자들을 향해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라고 했다면, 이 뱀은 기어다니는 뱀을 두고 한 말이 아니요 바로 온갖 거짓과 돈과 권력으로 종교세계를 주관해 오던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바로 뱀이었음을 깨달을 수 있다.

그런데 이 뱀이 이천 년 전 당시 잡힌 게 아니요 오늘날 계시록에서 잡힌다고 하니, 이천 년 전 당시 종교지도자들을 주관하던 그 사단의 영이 오늘날 기독교세계를 미혹하며 온갖 거짓과 돈과 권력으로 치부하는 기독교 종교 지도자들과 함께 역사해 왔음을 알 수 있으며, 잡히는 때도 바로 이때임을 귀 있는 자는 깨달을 수 있으리라.

또 성서가 아니고라도 ‘용용 죽겠지’라며 아이들이 놀리는 구전(口傳)이 있다. 즉, 지금까지 이 세상을 미혹하며 어지럽혀 왔던 용은 때가 되면 결국 잡힐 것을 우리의 역사 속에서도 예고해 왔었음을 잊지 말자. 결국 용은 숭배의 대상이 아닌 저주의 대상이었음을 명심해야 한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