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택·군부의 부상…사실상 `金·張·軍' 집단지도
지배권력 미래 불투명…"중장기적으론 위기 개연성"

(서울=연합뉴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런 사망(2011.12.17)에도 북한의 새 지도부가 빠르게 안정을 찾아가는 모양새다.

북한은 지난 한 달간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을 정점으로 김정일 시대의 권력 실세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체제 안정을 대내외에 과시하고 있다.

외형적으로는 최고영도자가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바뀐 것 외에 변화가 없어 보인다.

김 부위원장이 2009년 1월 후계자로 내정된 이후 국정을 주도해온 후계체제 구축세력, 즉 김 위원장의 사람들이 그대로 새 시대를 이끌고 있다.

지난달 김 위원장의 영구차를 호위한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 김기남·최태복 당비서, 리영호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겸 군 총참모장, 김영춘 인민무력부장, 김정각 군 총정치국 제1부국장, 우동측 국가안전보위부 제1부부장이 대표적이다.

김 부위원장의 금수산기념궁전 참배와 신년음악회 관람에 동행한 당 정치국 후보위원 이상 고위간부, 신년 첫 군부대 시찰을 수행한 현철해·박재경 군 대장, 황병서 당 조직지도부 부부장 등도 모두 김정일 시대의 사람이다.

이들은 북한 정권수립 이후 이어진 세습체제에 길들고 성공가도를 달려온 터라 김정은 체제 옹위는 자신들에게 사활이 걸린 문제다.

그러나 지배권력의 운용 방식은 김정일 시대와 본질적으로 달라졌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상징적 구심점인 김 부위원장과 실질적인 통치자 장성택 부위원장, 막강한 힘을 자랑하는 군부라는 세 축이 권력의 정점에 함께 서 있다는 것이 대북소식통들의 전언이다.

김 위원장의 장남 김정남이 지난 3일 도쿄신문에 보낸 이메일에서 "젊은 후계자(김정은)를 상징으로 존재시키면서 기존의 파워 엘리트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나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김 위원장을 구심점으로 노동당과 군이 절대적으로 복종하고 움직인 일인지배체제와는 다른 형태의 권력연합으로 볼 수 있다.

'포스트 김정일' 시대가 사실상의 집단지도체제로 첫 걸음을 내디딘 셈이다.

김 부위원장이 현재 20대 후반의 어린 나이이고 후계수업 기간도 3년에 불과해 북한 지도부가 김 위원장 때처럼 모든 권력을 한 사람에게 집중시키는 선택을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정권 수립 이래 김일성 일가의 세습체제에 익숙해 있는 현실에서 누구도 김 부위원장을 제치고 최고영도자에 오를 명분도 힘도 현재로선 없다는 것도 현실이다.

결국 김정일 시대의 권력 실세들이 김 부위원장을 권력의 정점에 상징적으로 내세운 채 서로 협력하며 국정운영을 해나갈 수밖에 없는 게 김정은 시대 지배권력의 현주소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주목되는 권부의 핵심인물은 장성택 부위원장이다.

장 부위원장은 2008년 8월 김 위원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부터 3년 5개월간 김 위원장을 직접 보좌하며 국정 전반을 운영해왔고, 현재도 사실상 섭정체제를 이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대부분 인사도 그의 손에서 이뤄져 최룡해·문경덕 당 비서, 리영수·오일정 당 부장, 지재룡 주중대사 등 노동당과 지방 당조직, 외무성 등 주요 기관의 실세는 장 부위원장의 사람으로 채워졌다.

한 대북소식통은 15일 "리제강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 석연찮은 교통사고로 사망함으로써 북한 사회 전반을 속속들이 감시 통제할 수 있는 완벽한 시스템을 갖춘 노동당은 장 부위원장의 영향력 아래 들어갔다"고 말했다.

이러한 장 부위원장을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은 군부다.

선군정치로 막강한 힘을 키운 군부는 김정은 후계체제 구축 과정에서도 김 위원장의 와병을 틈타 저마다 영향력 확대를 꾀하면서 장 부위원장을 견제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상당수 군부 실세의 파워는 쉽게 통제하기는 어려운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군부 중에서 김 위원장 사망 이후 권력서열 순위가 급상승한 오극렬 국방위 부위원장은 `다크호스'로 꼽힌다.

그는 2010년 9월 당 대표자회에서 정치국 후보위원에도 오르지 못해 서열 27위로 밀렸으나 김 위원장 사후 12위로 뛰어올랐다.

그의 서열 상승은 군부 내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미약한 장 부위원장이 그와의 친분을 이용해 군부를 견제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군부 실세 대부분이 다닌 만경대혁명학원 1기생인 오극렬은 군사장비 제작에도 깊이 참여한 군부 원로여서 대부분의 군 간부들이 그에게만은 머리를 조아린다고 한다.

대북소식통은 "오극렬이 2009년 2월 당 작전부장에서 국방위 부위원장으로 초고속 승진한 것은 무력을 움직이는 김영춘 부장을 견제하려는 장 부위원장의 작품"이라며 "오극렬은 장성택과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장성택 섭정체제를 도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북한의 새 지배권력의 안정적인 모습이 얼마나 유지될지는 아직 예단하기 이르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중장기적으로 김정은과 권력엘리트, 권력엘리트 내부의 상호관계가 변화하면서 위기에 봉착할 개연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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