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지네. 참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주신 스승은 마음의 어버이시다. 아아아 고마워라 스승의 사랑 아아아 보답하리 스승의 은혜.’
지금보다는 조금 더 순수하고 아이들 마음도 더 순박했던 시절, ‘스승의 은혜’를 부를 때면 왠지 가슴 한 구석에 떨림 같은 게 있었다. 노래를 부르는 순간만큼은, 아 하늘같은 선생님의 은혜를 무슨 수로 갚을까, 뭐 이런 생각도 해본 것 같다.

하지만 노래는 노래고, 현실은 그렇지도 않았다. 선생님 은혜가 과연 하늘 같은지 도무지 알 수도 없었고 그 은혜를 갚아야 할 이유도 전혀 없었다. 그 시절에도 치맛바람이라는 게 있어서 아무리 공부 잘하고 똑똑해도 가난한 집 아이는 반장을 잘 시켜주지 않았다.

중학교 고등학교에선 왜 그리 두들겨 패는 선생이 많은지, 그 또한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권투 선수 흉내를 내며 아이를 벽에 몰아넣고 샌드백 두드리듯 마구 주먹을 날리지를 않나, 의자를 들어 내리찍지를 않나, 얼굴이 퉁퉁 붓도록 뺨을 후려갈기지를 않나. 그렇게 얻어 터지고 나서는 복도에 얌전하게 엎드려 성경책을 베끼며 ‘참회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

그렇게 두들겨 맞은 아이들은 대개 영화 ‘친구’에 등장하는 동수 같은 아이들이었다. 선생들은 동수 같은 아이들은 한 번씩 그렇게 가혹하게 매질을 할 필요가 있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패서라도 사람 만들어야겠다”는 나름의 믿음이 있었고, 그걸 알기에 동수 같은 아이들은 선생의 매질을 견디고 복도에 엎드려 성경을 베꼈던 것이다.

그 시절, 학교의 ‘짱’은 선생이었다. 제 아무리 건달이고 시내를 주름잡는 ‘통’이어도 선생이 “야, 동수 이리 와!” 하면 바로 꼬리를 내릴 줄 알았다. 저희들끼리 치고받고 서열을 가리고 하더라고 선생은 선생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친구들도 있다. “그때 선생님께서 그렇게 매질을 해준 덕분에 내가 엇나가지 않고 사람 구실하면서 살고 있다.” 웃기는 소리 같지만, 오고가는 매질 속에 담긴 사제지간의 사려 깊은 정이나 진정성 같은 걸 공유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때는 그랬다.

세상이 달라졌다. 패서라도 사람 만들어야겠다,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 아이들이 잘못하면 혼이 나야 하지만, 혼을 내는 선생이 없다. 학교에 호랑이 선생님이 사라졌다. 호랑이가 없으면 이리가 왕 노릇 하게 돼 있다. 호랑이 선생님 없는 학교에 철없는 아이들이 저희들끼리 패를 나누어 친구를 때리고 괴롭히고 그 때문에 소중한 목숨을 잃기까지 한다.

공포나 폭력으로 통제하는 것은 어리석다. 맹목적인 복종도 안 될 말이다. 하지만 정당한 권위는 인정하고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학교에선 선생의 권위가 인정받고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선생의 권위를 인정하거나 존중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부모들 책임도 크다. 아이들 앞에서 선생을 아무렇게나 부르고 평가한다. 심지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선생을 혼내줄 테니 걱정하지 마라며 큰소리를 치기도 한다. 제 자식 잘못은 생각지도 않고 선생이 아이를 괴롭히고 부당하게 대우한다며 항의하고 예사로 막말을 해대기도 한다. 이런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가 선생을 존중할 리 없다.

이런 부모들은 학교와 선생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다. 차별하고 무시하고 조롱하고 업신여기거나 이유도 모른 채 매질을 당했던 학창시절의 아픈 기억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러면 안 된다.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아도, 선생은 선생이다. 아무리 못난 아버지라도 아버지는 아버지이고, 못난 형이라도 형은 형이라고 가르쳐야 하듯,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다.

봄이 되면 또 어린 병아리들이 학교에 들어가고 새 인생을 시작할 것이다. 제 키만한 가방을 메고 학교 가는 아이 뒷모습만 봐도 부모들은 눈물이 날 것이다. “선생님 말씀 잘 들어라!”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그렇게 말해 주어야 한다. ‘스승은 마음의 어버이’가 되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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