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세상일이 어찌 뜻대로만 되겠는가. 아무리 기획하고 연습하더라도 뜻대로 안 되는 일이 더 많고, 정말 단순하게 생각했던 일이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킨 경우도 수두룩하다. 인류 역사도 이면을 보면 우연한 일로 가득 차 있다. 실제로 우리네 삶도 주변을 돌아보면 ‘뜻하지 않은 일’로 넘쳐나고 있다.

요즘 우리 정치권에서도 기획되지 않은 사건, 뜻하지 않게 태풍으로 번지는 일이 많다. 오세훈 전(前) 서울시장의 ‘무상급식 꼼수’가 ‘안철수 바람’을 불러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박근혜 비대위 체제도 기획하지 않은 사건이다. 등 떠밀려 비대위원장을 맡았건만 하루하루가 불안해 보인다. 최근의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도 뜻하지 않은 곳에서 촉발됐다. 사태가 이렇게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확산될 줄이야 감이나 잡았겠는가.

대의명분 놓쳐서는 안 된다
고승덕의 돈봉투 발언으로 한나라당 전체가 요동치고 있다. 밖으로는 한나라당이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듯하고, 안으로는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이 펼쳐지고 있는 듯하다. 박근혜 비대위 체제가 그나마 중심을 잡고 있지만, 하루가 멀다고 터져 나오는 이런저런 내우외환(內憂外患)으로 그도 힘겨워 보인다.
고승덕의 돈봉투 사건은 당장은 한나라당에 엎친 데 덮친 격이 될 것이다. 비대위가 이제 뭔가를 해 보려는 순간에 과거 ‘차떼기 사건’을 연상케 하는 ‘돈봉투 사건’이 터졌으니 초대형 악재임은 분명하다. 당 해체와 재창당론이 다시 급부상하는 것도 이런 배경이다. 총선은 고사하고 더 이상 한나라당 이름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뜻이다.

게다가 비대위를 음해하고 공격하는 일도 더욱 노골화하고 있다. 박근혜의 과거 대선후보 경선자금까지 제기되고 있다. 자칫 비대위가 동네북이 되지는 않을지 우려될 정도다.
그러나 고승덕의 돈봉투 사건은 뜻하지 않게 일이 커졌지만, 한나라당과 박근혜에게 결정적인 기회가 될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비대위 체제 출범 이후 미적미적했던 인적쇄신의 명분이 자연스럽게 마련됐기 때문이다.

돈봉투 사건의 주역들은 구태 정치인이나 친이계로 압축된다. 이는 박근혜가 칼을 휘두르면 휘두를수록 대의명분을 얻게 된다는 뜻이다. 비록 저항하거나 탈당하는 의원들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감수해야 한다. 다소 실리를 잃더라도 대의명분을 놓쳐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야 총선에서 설사 100여 석 이내로 제2당이 된다고 하더라도 차기 대선에서 할 말이 있는 것이다. 총선에서 분열이 두렵다고 뭉뚱그려서 간다면 과연 총선에서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며, 그 결과로 차기 대선을 돌파할 수 있겠는가. 어림없는 소리다.

이런 점에서 고승덕은 박근혜에게 ‘양날의 칼’이다. 무엇을 어떻게 쇄신해야 할지 그 길을 안다면 기회요, 피를 묻히는 칼이 두려워 손에서 놓아버린다면 그때는 위기가 될 것이다. 호시탐탐 박근혜의 비대위 체제를 무력화하려는 시도가 당 안팎에서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박근혜가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소속 의원들의 탈당이나 분열이 아니다. 청와대는 더더욱 아니다. 양날의 칼을 쥔 박근혜가 과연 무엇을 치고, 무엇을 얻을지를 지켜보고 있는 국민이다. 그런 국민에게 이제 박근혜는 두려움 없이 의미 있는 작품을 보여줘야 한다. 기회는 그리 자주 오는 법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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