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고개 순교성지 입구 ⓒ천지일보(뉴스천지)

당고개 순교성지

기해박해 당시 10명 순교
가슴 시린 母子 사연 품어

▲ 당고개 순교성지 입구에 있는 이해인 수녀 시비(詩碑) ⓒ천지일보(뉴스천지)
[천지일보=백지원 기자] ‘님들을 닮지 못한 부끄러움 그대로 안고/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서있는 우리/ 이 땅에서 결코 잊혀질 수 없는/ 처절하게 고독하고 용감했던 님들의 선택으로/ 우리가 누려왔던 빛나는 영광을 당연히만 여겨서왔던 무심함과 우매함을 용서하십시오.’
-이해인 수녀의 ‘당고개 성지에서’ 中-

고층 아파트들 사이에 자리 잡은 당고개 순교성지는 동네공원처럼 작고 소박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퍼져 나오는 그들의 신앙정신만큼은 결코 작지 않았다.

당고개 성지는 서소문 밖 네거리, 새남터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성인을 탄생시킨 성지다. 1839년 기해박해 당시 이곳에서 1840년 1월 31일과 2월 1일 양일에 걸쳐 남녀 10명이 순교한 곳으로 가톨릭 교인들이 많이 찾는 성지 가운데 하나다.

‘당고개 성지’라는 이름만 들으면 지하철 4호선 ‘당고개역’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성지는 서울 용산구 용산전자상가 뒤편으로 난 작은 골목 끝에 위치해 있다. 성지 앞에 다다르면 성당 건물 입구와 그 옆에 당고개 순교성지임을 알리는 ‘칼(형틀)’ 모양의 팻말, 그리고 이해인 수녀의 시가 새겨진 시비(詩碑)가 보인다.

그의 시 ‘당고개 성지에서’를 읽으면 가슴 시린 감동이 전해진다. 시에서 이 수녀는 순교한 성인들에 대한 존경과 감사를 표하면서, 그 희생을 당연하게 여겨왔던 자신과 오늘날 신앙인들의 모습을 돌아본다.

시에 담긴 뜻을 되새기며 그 옆으로 난 나무 계단을 오르니 작은 문이 보인다. 그 작은 문에 들어서 몇 걸음 걸으니 넓은 잔디마당이 펼쳐졌다. 성지에선 어머니의 품처럼 따스한 포근함과 함께 한국적인 향기가 느껴진다. 황토빛 벽이 둥근 마당을 감싸고 있고, 그 벽을 도자기와 옹기 조각들이 장식하고 있다. 그리고 벽에는 이곳에서 순교한 10명의 모자이크 초상화가 빙 둘러서 성지를 지키고 있다.

▲ 당고개 순교성지 모자상 ⓒ천지일보(뉴스천지)
마당 한쪽엔 한옥건물과 그 앞에 모자상 하나가 세워져 있다. 한복 차림을 한 어머니가 한 아이를 품에 안고 있고, 반대편에선 다른 아이가 어머니의 치맛단을 잡은 채 한 발을 들고 있는 모습이다. 안겨 있는 아이는 귀엽고 똘망똘망한 눈으로 어머니를 응시하고 있으며, 어머니는 넉넉하고 온화한 표정을 하고 있다.

바라보는 사람마저 미소 짓게 하는 이 모자상에는 가슴 아픈 사연이 서려 있다. 이곳에서 목숨을 잃은 순교자 중 한 명인 이성례(마리아)에게는 6명의 아이가 있었다. 그가 감옥에 갇혔을 때 젖먹이 아이가 젖을 먹지 못해 굶어 죽자, 그는 다른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잠깐 신앙을 부인했다.

하지만 나중에 다시 신앙을 지키며 순교의 길을 택했다. 아이들을 위해 신앙을 부인했을 때의 죄책감, 그리고 다시 돌이켜 순교의 길을 택했을 때 아이들을 두고 떠나야 하는 그 마음은 어떠했을까. 애절한 사연을 듣고 나니 마음이 숙연해진다. 이성례 외에도 순교자 9명의 사연 그 어느 하나 가슴 아프지 않은 게 없다.

겉모습만 보면, 높은 현대식 아파트들 속에서 넉넉하고 포근하게만 느껴졌던 당고개 성지. 하지만 그곳에 서린 그들의 신앙의 정신은 높고 숭고했다. 이해인 수녀가 시에서 말한 ‘피 흘린 목숨보다 더 붉게 타오른 사랑’처럼.

▲ 당고개 성지 잔디 마당에 한쪽에 있는 모자상과 한옥. ⓒ천지일보(뉴스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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