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이영선(62, 여, 서울시 동대문구 인문동) 씨의 아버지(90)는 위암 초기 환자다. 지난 4월 병원에서 위암 판정을 받았지만 나이가 너무 많아 수술보다는 식이요법을 택했다. 현재 영지버섯과 토마토를 먹으며 자가 치료를 하고 있다. 이 씨의 아버지는 젊은 시절부터 마약을 복용하듯 매일 술을 마셨다. 적게 마실 때는 하루에 소주 한 병, 많게는 5~6병까지 마셨다. 주변에서 술병을 빼앗기도 하고 말려도 봤지만 소용없었다. 이 씨는 “지금은 아버지가 술을 끊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다”며 “아버지뿐 아니라 남편 역시 술을 너무 잘 마셔서 걱정된다”고 말했다.

◆40~50대 사망률 1위 ‘간암’… 폭음·과음이 원인
현재 우리나라 40~50대의 사망률 1위는 간암이다. 게다가 한국 남성의 대장암 발병률은 아시아 1위, 세계 4위다. 이러한 암들은 과음 및 폭음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 주의가 요구되고 있다.

2010년 지역사회건강통계(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서울시민의 고위험 음주율은 15.7%(남성 24.4%, 여성 4.9%)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남성 4명 중 1명이, 여성 20명 중 1명이 고위험 음주자라는 얘기다. 우리 사회의 폭음·과음 문화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고위험 음주율이란 한 번에 소주 7잔 이상을 마시는 술자리가 한 달에 한 차례 이상인 남성과 여성(5잔 이상)의 비율을 의미한다.

◆잘못된 음주문화 여전…본인 주량 알아야 과음·폭음 예방
암의 주요 유발 요인은 음주와 흡연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외에 소리 없이 다가오는 대장암·유방암·식도암 등도 과도한 음주가 일으키는 암이다.

이미 많은 사람이 이 때문에 고통에 시달리고 있으나 우리 사회의 잘못된 음주문화는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재희(39, 여, 서대문구 남가좌동) 씨의 이모부(61)는 대장암을 앓고 있다. 5년 전 수술을 받은 그는 지방에서 요양생활을 하고 있지만 지금도 매일 술을 1병 이상 마신다. 유 씨는 “(이모부가) 하루라도 술을 마시지 않으면 굉장히 불안해 한다”며 “술을 끊으려고 시도를 해 봤지만 매번 실패했다”고 전했다.

이 씨는 “명절에는 친척들이 모여 술을 함께 마신다”며 “(이모부가) 과음을 해 병이 더 악화될까봐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세종대학교에 다니는 김진권(28, 남, 김해 상계동) 씨는 연말에 이어 연초에도 잦은 술자리 모임을 가질 예정이다.

김 씨는 “선배 및 지인과 술을 많이 마신다”며 “술자리가 시작되면 선배들이 술을 권하기 때문에 자리에서 먼저 일어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폭음하는 술 문화가 해결되지 않으면 암환자가 계속 늘어나는 상황이 되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가 조사한 ‘한국인의 음주실태’에 따르면 우리나라 남성 열 명 중 일곱 명은 ‘술은 원만한 대인관계에 필수적’이며 ‘술을 많이 마셔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같은 인식이 폭음·과음 강요와 같은 잘못된 음주문화와 연결되기도 한다는 지적이다. 회식이라는 공식적인 자리를 통해 강요적 음주와 조직을 위한 음주를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관계 전문가들은 자신의 주량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서울시 복지건강본부 건강증진과 김화숙 주무관은 “한국인은 술자리에서 과음·폭음을 많이 한다”며 “과음문화를 없애고 적정음주량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WHO(세계보건기구)에서 정한 폭음 기준은 순 알코올로 60g(소주 1병)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현재까지 적정음주 기준이 정해져 있지 않다. 김 주무관은 “WHO 일일 적정음주량은 남성 하루 4잔, 여성 2잔”이라며 “적정음주량 이상의 술을 마시면 체내에서 해독이 안 돼 숙취현상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이어 “암 발생을 부추기는 음주의 위험성을 알리는 ‘절주 캠페인’도 도움이 된다”며 “그동안 알지 못했던 사실을 알림으로써 시민 스스로 음주를 줄이도록 권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장기훈 한국문화음주연구센터원 대리는 “술을 마시는 양과 횟수를 조절해야 한다”며 “스마트폰이나 다이어리에 음주한 날을 표시하고 주간음주 횟수를 조절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 대리는 “월요일에 술 약속이 있으면 다음 약속은 목요일로 잡는 것이 좋다. 부득이 월요일, 화요일 이틀 연속 술을 마셨으면 3일의 휴식을 가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술로 인한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함에도 술을 줄일 수 없는 상황이라면 전문기관을 방문해 상담을 받아야 한다”며 “혈압이 높아지고 혈당이 높아지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듯이 알코올중독은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한 뇌의 질병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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