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일 오후 서울역 인근 지하보도에 마련된 노숙인 응급대피소에서 노숙인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꽁꽁 언 몸 녹이려 하루 200명가량 이용

[천지일보=김예슬‧장수경 기자] “드르렁드르렁~” 영하권 기온을 보인 4일 오전 ‘노숙인 응급대피소’ 안. 서울역 파출소 옆 지하보도에 있는 이곳에서 노숙인 35명이 군용 이불을 덮고 잠을 자고 있었다.

대피소는 서울시가 한파에 대비해 지난달 15일 설치했다. 전기 판넬을 깔아 난방시설도 갖췄다. 이 때문에 대피소는 생긴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현재 200여 명의 노숙인이 이용하고 있다.

오전에는 50명 정도가, 야간에는 약 150명이 대피소에 머문다. 기자가 방문한 40분 동안에도 노숙인 4~5명이 사무실에서 이름을 확인한 후 대피소에 들어가 추위에 언 몸을 녹였다.

김대영 다시서기센터 생활지도원은 “지난해 12월 말에는 162명이 이곳에서 숙면을 취했다”면서 “정원은 80명이지만 최대한 공간을 확보해 많은 인원이 쉴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숙인 “기쁘면서도 불안”
“더 바라는 점이 있다면 염치가 없는 거죠. 지금도 충분히 만족해요.”

노숙인 이주영(33, 남) 씨의 말이다. 이날 만난 노숙인들은 대피소가 생겨 다행이라는 데 모두 공감했다.

기존 쉼터는 여러 가지 제약이 많았던 반면 대피소의 성격을 띤 이곳은 별다른 제약 없이 24시간(청소시간 제외)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 이들이 꼽은 최대 장점이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이름과 생년월일만 제공하면 얼마든지 이곳을 이용할 수 있다.

이 씨는 “쉼터도 많이 이용해봤다. 그러나 술 한 잔이라도 먹거나 입에서 술 냄새가 조금이라도 나면 쫓겨나기 일쑤였다. 한마디로 노숙인이 들어가 생활하기에는 제재가 너무 심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대피소에 대해 “방 안에 여럿이 있으니까 냄새가 나 힘들 때도 있고 술을 먹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주위에 피해를 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부분은 서로가 이해하면 되는 것”이라면서 “당장 추위에 얼어 죽는 동료를 보지 않아도 돼 기쁘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노숙인은 “이제 추위를 피할 수 있는 대피소가 생겼으니 우리가 밖에서 죽는다면 (그건) 오로지 술 때문일 것”이라면서 “앞으로 우리가 잘 이용하고 행동해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부산이 고향인 김내홍(54, 남) 씨는 “예전에는 작은 (종이)박스 11개를 모아야 추위를 피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박스를 구하지 않아도 돼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손에 들고 있는 박스를 가리키며 “이제 잘 곳은 있으니까 이것(박스)을 팔아서 생활비를 벌려고 한다”며 웃었다.

한편 하루아침에 생긴 대피소가 언제 사라질지 몰라 걱정하는 노숙인도 있었다. 김주용(가명, 54, 남) 씨는 “하루아침에도 할 수 있는 게 철거인데 이런 걸(대피소) 추진한 분들이 현 자리에서 내려오면 흐지부지돼 다시 추운 바깥에 내몰리지 않을까 걱정된다”라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시민 “훨씬 낫다. 더 생겼으면”
지하도를 이용하는 시민들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노숙인이 대피소에 들어가는 것을 보던 조성우(20, 남, 경북 구미 옥계동) 씨는 “지하도가 쾌적해지고 깨끗해져서 놀랐다”면서 다른 곳에도 대피소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고 노숙인이 자립할 수 있도록 대피소 외 실질적인 방안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은영(가명, 49, 여) 씨는 “응급 구호방이 생기기 전에는 노숙인이 무서워 혼자 이곳(지하도)을 걷지 않았었다”며 “지금은 마음 편하게 지하도를 지나다닐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한편 시설 근무자들은 응급대피소가 잘 운영되고 있으나 아직 제 역할을 다 할 수 없는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잠시 추위를 피하는 장소에서 한발 더 나아가 상담이나 다른 시설에 연계가 필요한 노숙인에게 최대한 도움을 줄 수 있는 곳이 돼야 하는데 현재 근무 인원이 4명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는 것.

이 인원마저도 교대로 돌아가기 때문에 한 사람이 사무실을 지키면서 대피소에 드나드는 사람을 점검하기에도 바쁘다. 김대영 생활지도원은 “응급대피소가 대피소 역할에서 끝나지 않고 발전해 노숙인에게 더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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