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지난 3일 라디오에서 들려온 한나라당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목소리는 자못 결연해 보였다. 국민에게 실망을 끼쳐 드려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당 쇄신과 강한 개혁 의지를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저를 비롯해서 한나라당 구성원이 가진 일체의 기득권을 배제하고, 모든 것을 국민 편에 서서 생각하고 결정할 것이다”라는 말은 적잖은 감동을 줬다. 한나라당 비대위원장으로서 박근혜 위원장이 말할 수 있었던 ‘마지막 고백’이 아니었나 싶다.

중구난방 비대위, 이대로는 안 된다
의지가 좋다고 해서 그 결과까지 좋은 것은 아니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강건한 쇄신 의지에도 최근 비대위가 보여주는 모습은 적잖게 위태로워 보인다. 우선 팀워크가 아니라 개인플레이를 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비대위원 누구나 언론에 나가서 하고 싶은 말은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비대위의 팀플레이 결과물을 공유하면서 전체 로드맵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채 익지도 않은 정책과 공유하지도 않은 얘기, 그리고 잔뜩 감정이 실린 듯한 독설 등은 결코 ‘비상체제’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비대위는 토론 기구가 아니다. 더욱이 홍보기구도 아니다. 빨리 결단하고 대수술을 집행해야 하는 실행기구이다. 철저하게 시스템적으로 움직이고 국민의 여론을 수렴해 집행하는 역할이 핵심이다. 결단은 빨리, 집행은 과감하게 해야 한다. 그래서 비상체제를 구성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지금의 한나라당 비대위는 그런 집행능력이 있는지 의문이다. 집행기구로서의 진중함과 냉철함, 치밀함이 매우 아쉬워 보인다.

애초 9일로 얘기됐던 비대위원들과 한나라당 의원들의 연석회의 문제도 뒤끝이 개운치 않다. 당 대변인이 연석회의 얘기를 꺼냈다가 원내 대변인이 곧바로 관련 사실을 부인하는 것은 좌충우돌의 모습만 보여줄 뿐이다. 스스로 불신을 자초하는 일이요,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는 비대위의 치부만 드러냈다.
말할 수 없는 것은 말하지 말라. 행동보다 말이 앞서면 실언과 실책이 불거지기 마련이다.
저항이 두렵다면 쇄신을 접어야 한다

최근 ‘여의도 연구소’가 제안한 공천 쇄신안을 보면 신선한 내용이 많다. 물론 전문가들이 오래 전부터 거론했던 내용이고, 정치권에서도 오래 전부터 논의했던 내용이다. 그러나 지금 같은 비상시기에, 그것도 한나라당 비대위에서 논의한다는 것 때문에 더 관심을 끌었다. 제대로만 한다면 한나라당의 인적 쇄신은 엄청난 반향을 불러올 수 있을 뿐더러 박근혜 비대위 체제의 성패를 가늠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는 법, 당내 저항이 촉발될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또한 감수해야 할 운명이었다.

그런데 공천 쇄신안과 관련해 당내 반발이 나오고, 친이계가 거세게 저항하자 비대위가 주춤하고 있다. 심지어 공천 쇄신안을 스스로 평가절하하는 발언까지 나오고 있다. 이래서야 무슨 쇄신을 하겠다는 것인가. 예견된 저항에 비대위가 당황해 하는 모습이 더 이상해 보인다. 이미 기호지세(騎虎之勢)이다. 상처가 나더라도 정면 돌파해야지 이쯤에서 타협한다면 호랑이 밥이 되고 만다. 호랑이 등 위에 올라 탄 박근혜 비대위원장, 라디오 연설만큼 용기 있고 과감해야 한다. 벌써부터 위태로운 모습은 정말 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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