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요즘 내내 가슴이 먹먹하다. 김정일이 죽어서가 아니다. 자식 키우는 아비로서 그렇다. 친구들의 괴롭힘을 견디지 못해 세상을 떠난 대구 중학생 아이 때문이다. 채 여물지도 않은 밤톨 같은 녀석이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그랬을까. 남의 자식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모두의 일이다.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마침 여기저기서 학교 폭력 왕따로 인한 사건 사고 기사가 줄을 잇고 있다. 언론이라는 게 파리떼처럼 몰려다니는 성향이 있어, 이런 게 요즘 기삿감이라며 앞다퉈 보도하는 탓도 있다. 두고 봐라, 시간이 흘러 잊혀질 만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해질 것이다.

교육부는 시도 부교육감 회의를 열어 학교폭력을 막고 학생을 보호하는 방안을 논의하는 등 종합대책을 마련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학교 폭력 피해 실태도 조사하고 전문 상담사들도 일선 학교에 배치한다고 떠들었다. 불난 집에 부채질도 아니고, 뒤늦은 수선에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여태까지 뭘 하고 있다가 이제 와서 호들갑인가. 염치없는 사람들이다. 그럼 지금까지 실태파악도 못 하고 있었던 말인가.

우리 사회에는 개혁이 필요한 분야가 많다. 정치는 말할 것도 없고, 교육 분야는 특히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교육개혁은 교육부를 개혁하는 것이다. 별 볼일 없는 우리들이 보기에, 그 사람들 일 년 내내 하는 일이라는 게 입시 정책을 만지작거리는 것이다. 입시 제도를 발전시키는 게 아니라, 자주 바꾸는 것이 지상 과제이고 그들의 존재 이유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학생들은 실험쥐 신세가 되어 숨을 헐떡이고 학부모들은 허리가 휜다. 제도가 바뀔 때마다 사교육비 절감, 학생들의 창의성 개발과 개성 존중을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사교육비가 줄었다는 증거도 없고 아이들의 창의성과 개성이 살아났다는 징후는 더더욱 없다.

학교도 문제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최근 몇 년간 학교폭력에 관한 상담사례에 따르면, 학교가 폭력을 알고도 방치하거나 사태 해결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피해를 입은 학생이 문제 제기를 해도 합의를 종용하는 등 사안을 덮기에만 급급했다. 잔인한 사람들이다.
교사들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책상 위에 엎어져 자거나 말거나 수업 시간만 채우면 된다며 무관심한 교사들이 부지기수다. 사교육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학생들 탓이라 어쩔 수 없다고 항변하지만, 체념이 도가 넘는다. 가르치는 걸 포기한 것이라면, 폭행이나 왕따 때문에 고통 받는 아이들이 없도록 살피고 힘을 쏟는 게 도리 아닌가.

학교 폭력과 왕따가 일상이 된 지 오래인데도, 교사들이 “우리 잘못이 크다”며 머리를 숙인 적도 없고, 학교 폭력과 집단 따돌림 근절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며 결의를 보인 적도 없다. 무너진 공교육을 한탄하면서 한편으로는 오히려 상황을 즐기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 지경이다.

아이들을 몰아세우는 가정도 문제다. 예전처럼 그저 묵묵하게 지켜봐 주고 따뜻하게 감싸주고 안아주는 엄마들 찾아보기 힘들다. 매니저 엄마, 관리형 엄마를 자처하며 아이들을 다그친다. 아이의 성적이 곧 엄마의 자존심이다. 그래서 ‘엄친아’가 등장하고, 아이들은 숨이 막힌다. 얼마 전 성적 문제로 심하게 매질을 한 엄마를 살해한 고교생도 그런 것이다.

그러고 보면, 다 어른들 책임이다. 성적이라는 욕망, 돈이라는 욕망, 권력이라는 욕망에 목을 매고 자식들의 삶을 따뜻하게 들여다보지 못하는 어른들 잘못이다. 어른들이, 회초리를 맞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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