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내릴 정거장이 되어서 내리는 것뿐입니다."
2일 세수 80세로 입적한 지관(智冠) 스님이 2009년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장에서 퇴임하면서 남긴 말이다.

지관스님은 국내 최대 불교종단인 조계종 종무행정의 최고 수장 자리에서 물러나면서도 이처럼 어떤 미련도 남기지 않는 모습이었다.

지관스님은 퇴임 후 외부활동을 거의 하지 않은 채 자신의 호를 딴 가산(伽山)불교문화연구원에서 불교대백과사전인 '가산불교대사림' 편찬작업에 매달렸다.

금석문(金石文) 분야의 권위자였던 지관스님은 '가산불교대사림' 이전에 '교감역주역대고승비문'(전6권)을 편찬했으며, 한국불교학연구자 100인의 연구성과를 집대성한 '한국불교문화사상사', '가야산해인사지', '비구니계율연구', '신행귀감' 등을 펴내는 등 종단을 대표했던 학승(學僧)다운 면모를 보여왔다.

2010년에는 60여 년 만에 처음으로 고향인 포항을 방문해 '고향방문기념비'에 "65년전 집을 나와 입산한 후 한 번도 돌아보지 못했던 고향땅을 찾아야겠다는 마음이 간절하였다"는 내용을 남기기도 했다.

그가 1974년 펴낸 '한국불교소의경전연구'도 한국불교학 자료의 서지적 기원을 펼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앞서 스님은 1천700년 전통의 한국 불교가 독자적인 불교 사전조차 하나 없음을 누구보다 안타깝게 여겼다.

그는 1991년 동국대 총장에서 물러나면서 한국불교학연구를 통한 한국불교중흥을 위해 사재를 털어 창경궁 근처에 가산불교문화연구원을 개원했다.

개원 후 연구원 10여 명과 함께 편찬 작업에 매진한 스님은 바쁜 일정에도 머물던 정릉 경국사에서 승용차 없이 대중교통이나 도보로 출퇴근하는 등 솔선수범하며 배움과 가르침의 길을 걸었다.

그가 평생 매달렸던 가산불교대사림은 현재 13권까지 편찬됐다. 스님은 개인적으로 20권까지 발간해 세계 최대 불교대사전의 면모를 갖춘다는 계획을 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조계종 원로의원이던 지관스님은 2005년 제32대 총무원장에 취임했으며, '원로'답게 종단의 안정과 화합의 기틀을 마련하고서 4년 임기를 마치자 평화롭게 종권을 이양했다.

그는 총무원장 재임시 조계종의 소의경전(근본경전)인 '금강경'을 표준화했으며,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완공 등 조계사 성역화, 템플스테이통합정보센터, 충남 공주 태화산 전통불교문화원, 국제선센터 건립 등을 통해 한국불교와 간화선의 대중화 기반을 구축했다.

1947년 해인사에서 당대 최고 율사(律師)였던 자운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스님은 운허스님 문하에서 수학했다.

이후 경남대와 동국대 대학원을 나와 동국대 선학과 교수, 동국학원 이사와 감사, 문화공보부 문화재위원 등을 역임했다.

고인은 조계종단에서 최연소 강사(28세), 최연소 본사(해인사) 주지(38세), 최초 비구 대학총장(1986년·동국대) 등의 기록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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