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엠진] 전국탐방 ‘강원 두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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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루」문화답사

고행 끝에 찾아오는 극락… 두타를 찾다

 

 

 

 

▲ ⓒ천지일보(뉴스천지)

 

 

겨울 두타산(1353m)은 비경 중 비경이지만 산행은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이름도 고행과 수행을 뜻하는 ‘두타’다. 하지만 희로애락이 있는 우리네 삶이 그렇듯 산을 오르면서 조화를 이룬 기암절벽과 능선을 보노라면 지친 기색이 곧 회복된다. 고행의 길을 걸으면 그 끝에 극락이 온다. 두타산과 이웃한 청옥산은 종종 극락으로 표현된다.

가파른 두타산과 달리 산세가 비교적 부드러워 산행인의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겨울에 훌쩍 떠난 두타산과 청옥산, 그리고 두 산의 산자락에 펼쳐진 무릉계곡을 지나면서 자연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어보자. 


 


산이 아름다운 이유는 능선과 골짜기, 그리고 정상이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자연이 주는 선물을 온전히 받았다고 말할 수 없다. 직접 산을 탔을 때 비로소 산경의 가치를 알 수 있다.

2012년을 앞두고 강원도 동해시 두타산을 찾은 이들은 감탄을 자아낸다. ‘고행의 길’이라는 이름의 뜻과 달리 설산(雪山)은 아름다울 뿐이다. 하지만 산마루로 걸음을 향하면서 가파른 산세와 산속에서 바라본 경치로 ‘두타’의 의미를 되뇐다. 거창하지만 불가(佛家)식대로 뜻을 풀이하면 ‘세속의 번뇌를 버리고 고행의 길을 걷는 것’이다.

암릉과 신선이 머무를 법한 암반계곡으로 이뤄진 두타산은 절경으로 꼽힌다. 산자락에서 바라보는 경치도 멋있지만 중턱과 마루에서 바라보는 산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가파른 산세로 오르기엔 힘들지만 태백준령에서 전해오는 정기와 산에서밖에 볼 수 없는 진풍경, 그리고 한 편의 대서사극이 조화를 이뤄 산행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특히 무릉계곡, 무릉반석, 삼화사, 하늘문, 두타산성, 박달령계곡, 청옥산 등 뛰어난 문화유적지와 자연경관지에서 오래 머무르는 이들이 많다.

차가운 기운이 옷깃으로 스며든다. 무릉계곡에 다다랐을 때 써늘한 공기가 머릿속까지 들어온다. 코가 시큰거릴 정도다. 하지만 산을 오르며 맛보는 찬 공기는 그 어느 때보다 상쾌하다. 경관은 어떠한가. 자연이 만든 기암괴석은 거북이, 장군 등 다양한 모습으로 매력을 뽐내 웃음을 자아낸다. 걷느라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해 걸음을 잠시 멈추자. 그리고 경관을 보며 산의 정기와 해학을 감상한 후 떠나는 것은 어떨까. 그렇게 걷다 보면 두타산이 희로애락이 담긴 인생과 닮은 것을 체감한다.

눈이 내린 다음 날 아침 두타산은 발목 위로 올라올 만큼 눈이 쌓였다. 산행 초입, 눈으로 덮여 길이 보이지 않고 인적도 드물다. 삼화사에서 등산로가 두 갈래로 나뉘는데 학소대로 가는 왼쪽 길과 관음암으로 가는 오른쪽 길이다. 하늘문을 통과하기 위해 오른쪽 관음암 길로 걸었다. 이 길은 학소대보다 덜 알려졌다. 관음암까지는 철계단을 의존해야 하는 구간도 있지만 길이 그리 험하지 않다. 관음암을 지나 하늘문에 이르는 길이 힘들다. 이 길을 걷는 이는 마치 작은 극락에 도달하기 위해 고행하는 어느 수행자의 모습과 같다. 깎아지른 벼랑 아래로 펼쳐진 반석에 서면 몸가짐이 조심스러워진다.

좁고 험한 길을 따라 다다른 하늘문. 이름만 들으면 정상과 가까울 듯하지만 두타산 정상의 1/4 지점이다. 이곳 정상은 신선바위와 함께 풍광이 가장 좋은 전망대다. 건너편에 마주 보이는 봉우리는 두타산 정상과 청옥산이다. 그 아래로 펼쳐진 300여 개의 경사진 계단이 보인다. 장정들도 다리가 후들거리는 계단이다. 90도 가까이 되는 급경사이다 보니 안내판엔 ‘노약자나 어린이는 통행 시 안전에 유의해달라’는 주의 문구가 있다. 철제 난간을 잡고 층계를 내려가면 피마름골이 나온다. 명칭은 피나무가 많아서 피마름골이라고도 하고 임진왜란 때 목숨을 잃은 이들의 피가 흘러 붙여졌다고 전해진다.

하늘문을 밑에서 올려다보면 숙연해진다. 임진왜란 당시 나라를 위해 희생한 넋이 이 문을 통과해 저 피안의 세계로 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임진왜란의 흔적은 두타산성에서도 찾을 수 있다. 신라 102년에 축조된 산성은 지금은 터로 그 길이를 짐작할 뿐이다. 임진왜란 때 의병과 피란민들이 모여 이 지방으로 쳐들어온 왜군 5천여 명을 물리쳤다. 이때 피해자도 약 2천 명이라고 하니 7천여 명에 가까운 사람들의 피가 두타산에서 흘러내렸다. 그리고 두타산성의 비극은 1950년에 발발한 6.25전쟁으로 다시 나타났다. 이 일대에서 역시 수많은 군인과 민간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래서 김지하 시인은 무릉계곡에서 귀신의 울음소리를 들어 도망치듯 골짜기를 떠났다고 한다. 그리고 무릉계곡에서 두타산을 ‘검은산’으로 표현했다. 우리네의 아픈 역사를 나타낸 셈이다. 두타산은 가족과 나라를 지키기 위해 악착같이 싸웠던 그들의 희생을 지금 우리에게 전하려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계속 한자리에서 있는 것은 아닐까.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나와 대한민국이 존재한다. 

산성을 지나 정상을 오르는 길이 좁고 험하다. 하늘문을 통과하면 편한 길이 나올 것이라는 생각은 일찍이 접는 게 좋다. 어느 곳을 보더라도 쉬운 길은 없다. 청옥산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두타산에서 편안한 길을 찾는 게 어렵다.

두타산성에서 햇대등을 지나 도착한 두타산 정상. 하늘과 맞닿은 산마루 설경은 머리가 시릴 만큼 상쾌하다. 차디찬 바람이 피부에 달라붙는다. 지금 이 순간을 위해 고행의 길을 걸었다. 산을 오를 당시는 몰랐으나 정상에 다다르니 산의 이름이 왜 ‘두타’인지 그제야 깨닫는다.

겨울 두타산행은 오로지 나와 산의 관계에 집중하게 된다. 한계가 찾아왔을 때 ‘정상에 도달할지 가는 걸음을 멈추고 하산할지’에 대한 것이 가장 큰 관건이다. 그러면서 오르는 이는 자신을 생각한다. 그리곤 깨닫는다. 산을 오를 때의 모습과 평상시 제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불가(佛家)에서는 고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을 때 비로소 극락에 다다른다고 한다. 다시 말해 고행은 현재의 세계에서 더 나은 세계에 나가고자 할 때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두타산과 이웃한 청옥산은 산세가 비교적 부드럽다. 두타산이 고행이었다면 청옥산은 극락이다. 청옥이라는 이름은 나물 ‘청옥’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불경 ‘아미타경’에 나오는 극락을 상징하는 일곱 보석 중 하나도 청옥인지라 산은 고행의 길(두타산) 끝의 극락, 피안의 세계로 불린다. 그래서 산행하는 이들은 고행을 상징하는 험한 두타산을 넘어야만 완만한 청옥산, 곧 극락에 다다른다고 한다.

태백산령을 타고 나온 두 산이지만 박달령을 두고 서로 다른 모습이다. 조금 더 살피면 암릉과 절벽으로 이뤄진 두타산을 ‘골(骨)’, 능선으로 비교적 완만한 청옥산을 ‘육(肉)’으로 본다. 하지만 청옥산이 완만하다고 하지만 해발고도 1403m로 두타산보다 50m가량 높고 눈이 쌓인 터라 산행이 녹록하지만은 않다.

청옥산 능선을 따라 내려오는 길은 편안하다. 가족이 기다리고 따뜻한 집을 향한 발걸음은 가볍다. 올라갈 때 자연이 주는 신비로움의 설렘과 다르다. 안식의 설렘이다. 산자락에 청옥과 두타가 만나는 계곡이 있다.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무릉도원이 딱 이곳일까’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무릉계곡과 반석은 극락의 극치다. 두타산을 오를 때에도 봤지만 산행이 끝난 후에야 무릉세계의 참맛을 맛본다. 무릉계곡과 반석 뒤로 두타산과 청옥산의 설경이 함께 어우러져 장관이다. 고행과 극락이 하나이듯 두타와 청옥 역시 하나라는 게 단번 느껴진다.

산은 우리네 인생과 닮았다.

골짜기, 능선, 비탈길 등이 있어야 산의 구조가 갖춰진다. 좋든지 싫든지 사람은 홀로 살지 못하고 서로 유기적인 관계에 놓여 있다. 산 역시 흙, 물, 돌, 각종 동식물이 있기에 비로소 산다운 산이 된다.

산행은 인생을 살아가는 것과 같다. 인생에 희로애락이 있듯 산 굽이굽이마다 풍경이 각각 다르다. 비탈길을 오를 때는 힘들지만 천혜의 관경을 보면 즐겁다. 각각의 사연과 우여곡절이 이어져 한 사람의 이야기가 완성되듯 산행 역시 이야기다. 한 편의 드라마다. 극도로 즐겁거나 또는 평안한 상태는 어느 날 갑자기 오지 않는다. 고통과 인내의 과정을 겪어야 달고 단 열매를 맺는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이때 노력은 새것을 받아들이기 위한 연구도 있지만 자기를 부인하고 그 목표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때의 과정은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목적을 이뤘을 때엔 그 기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그렇게 산에서 삶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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