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역대 남북한 최고 지도자 가운데 스포츠 분야에서 가장 많은 노력과 활동을 한 이는 최근 죽은 북한의 김정일과 남한의 전두환 전 대통령일 것이다. 두 사람이 스포츠에서 중요한 많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둘의 공통점은 정치세계에서는 철권통치를 휘둘렀지만 스포츠세계에서는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가진 스포츠맨이라는 사실이다. 전두환(1930년생) 전 대통령이 김정일(1942년생)보다 나이가 많고, 최고 국가수반으로 활동을 하던 시대는 달랐지만 두 사람은 남북한 스포츠인에게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인물로 기억된다.

육사시절 축구 골키퍼로도 활약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은 정권을 장악한 1980년대 국민들의 불만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스포츠를 적극 활용했다. 서울올림픽 유치에 성공하고 프로야구, 프로축구 등 프로 종목 시대를 활짝 열며 스포츠 공화국의 입지를 다졌다. 광주 항쟁 등으로 공포와 허무에 압도된 국민들에게 스포츠라는 탈출구를 열어주었던 것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실제로 스포츠에 직접적으로 많은 관심을 보였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프로복싱 세계 타이틀전 경기 도중 긴급 전화로 선수 매니저를 불러내 ‘세컨지시’를 내리기도 했고, 대표팀 축구 경기 하프타임 때 가까운 사이인 박종환 대표팀 감독에게 ‘즉석 작전’ 지휘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스포츠 실력도 상당하다. 골프는 아직도 드라이버 비거리가 220야드 정도 날리는 등 50대 못지않은 체력과 솜씨를 자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분의 골프 스윙은 파워가 넘칩니다. 80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에이지 슈트(18홀을 자신의 나이와 같거나, 적은 스코어로 마치는 것)를 기록할 수 있을 정도로 골프실력과 건강이 빼어납니다. 스포츠에 대한 열정도 대단해 김연아, 박지성, 추신수 등 요즘 젊은 세대 최고의 스타들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최근 골프를 쳤다는 한 인사의 말이다. 대부분의 국내 스포츠 관계자들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통치하던 1980년대가 최고의 스포츠 흥행기였다고 회고한다.

대범한 실천성과 행동주의를 보인 전두환 전 대통령과 달리 김정일은 스포츠에서 독특한 개인우상화 정책에 따른 신비주의 속성을 보였다. 짧고 둥근 약간 굽 높은 여자구두에 선글라스를 낀 터벅머리의 김정일은 스포츠에서도 ‘친애하는 지도자’였다. 김정일과 관련된 스포츠 이야기는 서방세계 사람들에게는 황당하기까지 할 정도로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그는 모든 운동경기에서 경이적인 스코어를 기록했다고 조선중앙통신 등 국영언론들이 늘 보도했기 때문이다. 난생 처음 한 볼링경기에서는 300점 만점, 퍼펙트를 기록했고 골프 라운드에서 11개의 홀인원을 잡으며 세계 최고기록인 38언더파를 쳤다는 것 등이 이를 말해준다.

폐쇄사회인 북한과 같은 나라에서 사실과 거짓을 분간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아마도 김정일의 이 같은 경이적인 기록은 북한식 집계에 의해 가능했을 법하다. ‘친애하는 지도자’로 절대적인 위치에 있는 김정일이 직접 하는 스포츠의 의미는 서방세계에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다를 수 있다. 볼링도 범퍼가 올려진 상황에서 하면 만점이 나올 수 있을 것이고 골프의 홀도 깔때기 그린도 있고, 스코어 카드를 일반적으로 작성하는 것과 달리 마이너스 개념을 사용하면 가능할 일들이다. 외부 세계와 교류가 차단된 채 절대지도자인 김정일의 개인우상화 정책이 정치뿐 아니라 스포츠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사회라는 점을 감안하면 말이다.

스포츠에서 행해지는 김정일의 신비주의화는 선수나 코칭스태프들의 말을 통해서도 확인됐다. 1999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여자 마라톤에서 우승한 정성옥은 기자회견에서 “달리면서 장군님만 생각했다. 장군님의 힘으로 우승을 할 수 있었다”고 말한 뒤 영웅칭호를 받고 벤츠 자동차와 아파트를 선물로 받았다. 또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 북한 축구대표팀 감독 김정훈은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을 거절한 적이 있다. 당시 질문 중 하나가 바로 김정일이 직접 제작했다는 ‘보이지 않는 전화기’였다. 김 감독은 “경기마다 통상적으로 ‘맨눈에는 보이지 않는(invisible) 휴대전화’를 통해 김정일 위원장으로부터 직접 전술 조언을 받고 있다”고 했었다.

스포츠에 열정이 컸던 전두환 전 대통령, 북한 스포츠에 개인우상화 정책을 동원해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김정일은 스포츠맨으로서 크게 대비될 만한 남북한 최고 지도자였다. 김정일이 세상을 떠난 뒤 마이클 조단을 신봉하는 농구광으로 알려진 그의 셋째 아들 김정은에게 최고 권력이 넘어가면서 앞으로 스포츠에서 어떤 새로운 개인우상화 그림이 그려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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