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술 정치컨설팅 그룹 인뱅크코리아 대표

2010년 지방선거를 뜨겁게 달구었던 무상급식 이슈가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을 계기로 전면적으로 확대 시행되고 있다. 이러한 공짜밥 이슈는 교육감 선거에서 진보그룹 후보자들 역시 앞다투어 제시했고 많은 지지자들을 이끌어 내는 데 성공했던 사례다. 아이들의 문제가 정치적 선거 이슈로 활용된 사례는 비단 공짜밥뿐만은 아니지만 정치인들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아이들 문제를 주요 이슈로 다루는 것은 상당히 조심하게 접근해야 한다. 또한 교육에 대해 비전문가인 정치인들의 손에 놀아나서 아이들의 안전과 관련된 예산의 삭감이나 예방의 무(無)대책은 그깟 공짜밥 때문에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결과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제공하는 공짜밥과 아이들의 목숨 중 어느 것이 더 소중한지 어른들의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희생을 묵과하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최근 주요 이슈로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정봉주 전 의원의 구속, 한나라당 비대위 구성 문제 등이 언론을 장식하고 있다. 하지만 대구의 어느 중학생의 쓸쓸한 죽음을 가지고 논하는 기사는 그리 많지 않다. 우리에게 그 어떤 것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해야 할 사건이 자칫 주요 이슈에 가려져 무심코 지나가는 것은 아닌지 학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깝기까지 하다.

최근 대구의 한 중학생이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그 학생이 당한 상상하기조차 싫은 학교 내 폭력은 결국 그 학생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경찰이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복원한 결과 3개월간 무려 300통이 넘는 협박 문자가 쏟아져 나왔으며, 심지어 목숨을 끊기 전날 밤까지 ‘왜 문자를 안 받나, 죽을래’란 메시지가 이어졌다.

가해 학생들의 학대행위는 목검을 휘두르거나 이종격투기용 글러브를 끼고 피해 학생을 샌드백처럼 폭행했으며, 책을 빼앗거나 숙제를 대신 시키는 것은 물론 담배 피우기를 강요하고 용돈으로 고급 겨울 점퍼를 구입하도록 한 뒤 이를 빼앗는가 하면 시도 때도 없이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내 모든 생활에 간섭하며 ‘노예’ 부리듯 대했다. 심지어 물고문을 하겠다고 위협하고 전깃줄을 목에 감은 뒤 바닥에 떨어진 과자부스러기를 먹도록 강요하는 등 사람으로서 해서는 안 될 학대를 자행했다.

하지만 지금의 정치인들은 공짜밥 하나를 달성해 놓고 아이들에게 대단한 것을 해준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이 사건을 두고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은 ‘감사를 통해 책임 소재를 밝히겠다’며 교육청을 통해 폭력과 괴롭힘 실태 파악을 위한 학생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신고 시스템을 마련하는 등의 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러한 용두사미식 대책과 실효성조차 없는 비현실적 대안에 대해 가해 학생들은 코웃음 치는 게 일반적이다. 이러한 악순환은 결국 정치인들의 무관심과 비전문적 발상에서 기인된 것은 아닌지 짚어봐야 한다. 왜냐하면 폭력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을 대상으로 상담교육을 하는 ‘위(Wee) 프로그램’마저도 예산을 깎는 판이니 말이다.

미국 뉴저지 주는 올해 9월부터 학교마다 학생 폭력방지 전문가를 두고 핫라인을 설치해 친구를 괴롭히는 학생을 경찰에 익명으로 신고할 수 있도록 했다. 유치원생부터 6개 과정의 '친구 괴롭히지 않기' 수업을 하고, 고교에선 친구를 괴롭히는 학생을 보면 못하게 할 책임이 있다는 교육을 받는다. 지난해 럿거스대 신입생이 친구에게 괴롭힘을 당하다 자살하자 학교가 철저한 교육을 통해 똑같은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책임지는 ‘반(反)괴롭힘 법’을 도입했다. 북유럽에서도 초등학교 교실에 ‘우리는 친구를 괴롭히지 않는다.’ ‘괴롭힘당하는 친구를 보고만 있지 않는다’는 표어를 써 붙이고 철저히 실천하도록 지도한다. 학급별 학교별 개인별로 예방교육을 실시하면 학교폭력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 스웨덴 역시 2006년 한층 강화된 ‘반괴롭힘 법’을 시행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교육현실은 어떠한가! 그러한 법은 있지도 않거니와 기초 수준의 것들조차도 예산 타령과 제대로 된 대안조차 만들지 못하고 있는 실정 아니던가 말이다. 오로지 공짜밥이 전부인 것처럼 떠들어 대는 사이 아이들의 폭력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이 정치적 현실이다. 필자는 지금 공짜밥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공짜밥보다 아이들의 안전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아이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것이 아니라 무엇이 아이들을 위한 최선인지 처음부터 다시 짚어봐야 한다. 이 땅에 다시는 대구 중학생과 같은 아픔이 없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다는 말을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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