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임진(壬辰)년, 2012년은 60년 만에 오는 흑룡(黑龍)의 해란다. 임진년의 임(任)은 육십갑자에서 ‘검은 색’을 의미하고 진(辰)은 ‘용’을 뜻하므로 임진년이 흑룡의 해라는 것이다. 더구나 그 흑룡은 사람에게 만사형통을 가져다주는 여의주를 물고 있다 해서 일찍부터 많은 사람들이 설렘을 억누르지 못하는 것 같다. 여의주란 불교의 불법이나 불덕의 공덕을 상징하는 여의보주(如意寶珠)를 말하는 것으로 고타마 싯다르타의 사리가 변해서 된 것이라는 등의 여러 설들이 있다.

바라건대, 정말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 여의주를 손에 넣어 순조롭게 나름대로의 꿈과 뜻을 이루어주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아귀다툼과 같은 세상은 다소는 더 평화로워져 숨 막히게 사는 사람들의 생활이 좀 더 편안해질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역시나 국가의 일도 그렇게 여의주를 손에 쥔 사람이 다스려 막히고 뒤틀리는 데 없이 술술 풀려나갔으면 좋겠다. 개인의 운명과 국가의 운명은 따로따로가 아니라 불가분(不可分)이어서 항상 엮이어 같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불행한 국가의 국민들이 행복할 수 없고 불행한 국민의 나라가 잘 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는 민생이 피폐해지지 않도록 돌보는 것을 가장 중요한 국가적 과업으로 삼아야 하며 개인은 혼자만의 이기심을 충족하기 위해서만 살 것이 아니라 국가라는 공동체를 위해 이기심을 희생할 줄도 알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불행한 이웃들이 많아서는 내 삶이 절대로 안전하고 편안하며 행복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이웃을 위해 베풀고 이웃을 따뜻하게 배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1909년 만주 하얼빈역에서 일제의 이토 히로부미에 의분의 총격을 가한 안중근(安重根) 의사는 말했다. ‘눈앞의 이익을 보거든 의를 생각하고 나라가 위태로울 때는 목숨을 던져라(견리사의 견위수명/見利思義 見危授命)’. 모든 사람들이 안중근 의사의 그것과 똑같은 삶을 살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얼핏 생각할 때 태평양의 수량(水量)보다도 더 클 것 같은 개인의 이기심에서 한 종지만큼씩이라도 희생해 국가와 공동체 그리고 이웃을 위해 퍼내어 보탠다면 국가와 국가 구성원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다.

미국 월스트리트(Wall Street) 금융인들의 극단적인 탐욕이 세계 최강 국가 미국의 위상을 흔들리게 하고 부를 독점한 1퍼센트에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낀 가난한 99퍼센트로 하여금 반감을 드러내 행동에 나서게 한 소요 사태가 피안(彼岸)의 불일 수는 없다. 그것은 자유와 창의에 바탕을 둔 개인의 이기심은 자본주의 사회 발전의 원동력인 것은 분명하지만 자본주의에 대한 자해(自害)의 사악한 힘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더 부강한 나라를 지향해나가는 우리는 마땅히 그 같은 사태에서 큰 교훈을 얻어 국운 융성의 길에 장애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말하자면 극소수에 부가 집중되어 특권적인 삶을 향유하게 하고 고비용 사회화의 경향에서 대부분 사람들의 삶은 자꾸만 후진하는 오리지널(Original) 자본주의의 결함을 고쳐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이제는 개인에게는 그림의 떡에 불과해 그 과실이 공정하게 돌아가지 않는 경제발전이나 국가발전을 위해 국민의 피와 땀을 강요하거나 동참을 이끌어낼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갔다. 대신 개인의 구매력을 높여주는 적정한 분배가 이루어져야 원활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이 이루어지는 시대가 왔다. 그것은 굳이 유럽이나 브라질의 예를 들 것도 없이 이미 세계적인 추세로 자리 잡았다.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의 기조를 벗어난 경제 번영은 생각할 수 없는 것이므로 그 결함을 고쳐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의 건강한 번영을 꾀하고 사회를 평화롭게 해야 하는 것이다.

어떻든 사람들은 해가 바뀔 때마다 크고 작은 뜻을 세우고 소원을 빌며 부푼 꿈을 꾼다. 하지만 그러면서 맞는 한 해 한 해는 연말이 되면 용두사미가 되어 사람들에게 허탈감을 안기고 과거로 꼬리를 빼기 마련이다. 그 허탈감이 비록 아무리 크고 매해 되풀이되는 것이라 해도 사람들은 가파른 산 위에 바위를 굴려 올려야 하는 벌을 받은 시지프스(Sisiphus)처럼 새해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으며 집요하게 ‘성취’의 고지에 오르려 한다.

그것은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의 특징이며 더구나 인간에게는 엄숙하게 주어진 거역할 수 없는 숙명이다. 흑룡의 해인 2012년, 임진년 역시 우리에게 부과된 무거운 숙제들이 많다. 다른 해보다 어려운 일들이 더 많으면 많았지 결코 적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드디어 시지프스가 가파른 산 위에 바위를 굴려 올림으로써 성공을 거두는 해, 나라와 개인들이 여의주를 입에 문, 용의 등을 타고 비상하는 특별한 해가 됐으면 하는 것이 모두의 바람일 것이다.

세계의 시선이 한반도에 집중되고 있다. 김정일이 죽고 김정은이 권력을 세습한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단순한 호기심의 시선이 아니다. 미 중 소 일 등 열강들의 시선은 자신들의 이익을 한반도에서 지켜내려는 핏발 선 시선이다. 통일은 남북 모두의 숙원이며 우리 자신의 문제이지만 통일의 주체가 돼야 할 우리가 오히려 그 같은 외부 세력의 눈치를 봐야 하는 처지가 불쾌하고 슬프다.

그들의 개입이 가능한 것은 무엇보다 남북 분단이다. 남북 분단이 해소가 되지 않는 한 그들의 개입은 계속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북한의 폐쇄성과 고립, 그 가운데서 추구되는 핵무장이 또한 그들이 오불관언할 수 없는 문제이므로 개입의 빌미가 돼주고 있다. 이 같은 열강들이 개입할 빌미들을 우리는 남북이 힘을 합쳐 조속히 해소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안고 있는 절박한 민족적 현안이며 도전이고 숙제다.

그러자면 싸울 때 싸웠을망정 금방 화해하고 손잡을 때 손을 잡아 열강들에게 이용당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오래 합쳐져 있으면 반드시 나뉘고 오래 떨어져 있으면 반드시 합치게 된다’고 했다. 그러니까 남북통일은 필연적으로 이루어진다. 임진년 흑룡의 해는 남북이 그 같은 공감을 가지고 민족화해와 통일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새롭게 시작하는 해가 돼야 한다.

김정일이 죽은 뒤 우리는 열강들의 부산한 움직임을 예민하게 지켜보았다. 어쩌면 그들은 남북이 모르는 귓속말을 주고받았을 수도 있다. 당연히 한반도의 문제라면 우리가 중심이 돼야 하는 것임에도 북한과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인 중국이 중심인 것처럼 보였다. 우리와 조율하지 않은 한반도 관련 얘기들을 그들은 쏟아내었다. 전율이 느껴졌다. 과연 이 같은 상황을 그대로 놔두어도 되는 것인가 우리는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여의주를 입에 문 흑룡의 해에 우리는 한반도의 주인으로서 중심위치를 확고하게 다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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