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북한 김정은은 할아버지 김일성의 외모와 흡사하다. 김일성의 후광을 업고 있다는 걸 과시하기 위해 성형수술을 했다는 소문도 있다. 턱살이 두툼하고 볼 살이 통실통실한 데다 헤어스타일도 할아버지 판박이다. 할아버지가 즐겨 입었던 검은 색 인민복 차림을 한 모습을 보면, 역시 그 핏줄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북한 주민들은 오랜 세월 동안 외부세계와 단절된 채 살아온 탓인지, 많은 면에서 우리와 다른 모습을 보여 준다. 세월이 많이 흘렀음에도 오래전 사고방식과 가치가 변하지 않고 이어져 내려오기도 한다. 사람의 외모에 대한 기준도 그렇다. 

풍족하게 먹지 못하던 시절에는 배가 불뚝하고 살이 통통하게 올라야 출세한 남자, 성공한 남자란 대접을 받았다. 100년 전 신문에 등장한 약 광고에도 몸집이 크고 배가 불룩 나온 사람은 건강하고 성공한 반면, 비쩍 마른 사람은 허약하고 출세하지도 못한 못난이로 묘사된다. 약을 사다 먹으면 홀쭉이도 뚱뚱이가 될 수 있다고 선전한다. 일종의 영양제, 정력제다. 뚱뚱이와 홀쭉이 두 남자의 그림을 그려 비교해 놓고 있는데, 마치 지금의 김정은과 북한 인민의 모습처럼 보인다.

북한 주민들이 살이 오른 김정은의 모습에 마냥 찬사를 보내지는 않는 모양이다. 주민들은 못 먹고 못 입어 시들시들한데, 혼자 잘 먹고 잘 입어 살이 오른 것 아니냐며 볼멘소리를 하거나 곰 세 마리 노래로 조롱하기도 한다고 한다.

우리들도 20, 30년 전만 해도 남자란 살집이 두둑하고 배가 쑤욱 나와 주어야 사장님 소리 듣고 출세한 사람이라고 부러워했다. 그 시절만 해도 배불뚝이 구경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제 그것도 다 옛날이야기다. 요즘은 어른 아이, 남자 여자 가릴 것 없이 다들 불어 오른 살 때문에 난리들이다.      

‘살아 살아 내 살들아~’ 하며 살을 원망하는가 하면, 살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죽기 살기로 살빼기 작전에 정신을 놓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사람이 한 점의 살이라도 더 털어내겠다며 주린 배를 움켜쥐고 있거나, 콩죽 같은 땀을 흘리며 역기를 들어 올리고 러닝머신이 부서져라 달리고 또 달리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병원에 드러누워 뱃가죽과 허벅지에 쇠파이프를 쑤셔 넣고 기름기를 뽑아내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또 정체불명의 다이어트 식품을 들이켜며 에스라인 몸매를 상상할 것이고, 또 누군가는 기상천외한 다이어트 비법을 찾겠다며 방황하고 있을 것이다.

여름철이 다가오면 너도나도 ‘식스 팩’을 만들겠다며 낑낑거리고, 개그맨들이 ‘식스 팩’ 몸매를 드러내고 포효하면, 나도 ‘몸짱’이 될 수 있다며 청춘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지른다. 살이 찐 모습은 게으르고 미련할 뿐 아니라 자기 관리가 되지 않는 덜떨어진 사람이란 소리를 듣게 만든다.

아무리 외모가 아니라 내면의 아름다움이 중요하다고 침을 튀겨보아야, 하품 나는 소리라며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성형 수술을 쇼핑하듯 하고, 성형 수술 사실을 숨기기는커녕 대놓고 자랑을 하는 세상이다. 뚱뚱한 것도 마찬가지다. 돈을 들여서라도 살을 빼야 훌륭하다 소리 듣는다.

최근 외신에 따르면, 속옷과 수영복 모델로 활동하는 미국의 어느 슈퍼모델은 몸매를 잘 관리하려면 “자신의 몸을 보면서 식사하면 된다”고 말했다. 뚱뚱해진 자신의 몸매를 보면 식욕이 달아날 것이란 얘기다.

올해도 며칠 남지 않았다. 올해 이루지 못한 ‘식스 팩’과 ‘에스라인’의 꿈을 내년에는 반드시 이루리라, 다짐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와 같은 열망으로 내년에도 열심히 살 일이다. 내년에도 ‘식스 팩’과 ‘에스라인’의 꿈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상관없다. 다음 내년이 또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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