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단지 뒤로 난 고지대를 오르면 불규칙하게 깎인 절벽 앞에 위태로워 보이는 판자촌이 눈에 들어온다. 큰 천막 아래로 11가구가 빼곡하게 모여 있다. 이들 가구 중 기초생활수급자(수급자) 가구는 단 2곳뿐이다. 전기가 들어오긴 하지만 화장실은 공동화장실을 이용하고 있다.
공중화장실 뒤편으로도 덩그러니 1가구가 더 있다. 무심코 지나면 눈에 띄지 않을 법한 이곳에 거주하고 있는 김창숙(가명, 74) 씨. 그는 비수급자이다. 수급자가 되려면 근로능력, 부양의무자 유무, 소득기준 등의 요건을 충족해야 매달 43만 6000원을 받을 수 있는데, 김 씨는 자식들 때문에 제외됐다.
그러나 실제로 그는 부양받기는커녕 그가 책임져야 할 연년생 손자 둘과 함께 살고 있다. 첫째 아들의 결혼 실패로 맡겨진 손자들이다. 청계천 복원사업 전까지는 포장마차를 차려 근근이 생활했고 그 이후엔 길바닥에 고무 대야를 놓고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팔았다. 손자들 때문에 입에 풀칠은 해야겠다는 일념으로 버텼다.
“생각만큼 벌이는 안 되는 거예요.” 김 씨는 당시가 떠올랐는지 눈시울을 붉혔다. 벽 한쪽에 활짝 웃고 있는 사진 속 손자에 대해 묻자 그는 눈 속에 맺혔던 눈물을 이내 훔쳤다.
“첫째 손자가 작년에 (대학) 입학은 했는데 등록금 낼 돈이 없어서 한 학기만 다녔어요. 이걸 본 둘째 애가 자기는 돈 벌어서 형 등록금 마련해주겠다고 하는 거예요.”
김 씨의 딸도 생활하기 버거운 것은 마찬가지지만 그나마 수급자 대상자인 딸은 지원받은 쌀을 어머니에게 나눠줬다. 추운 겨울철이면 그는 불에 탈 만한 것들을 모아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간신히 몸을 녹일 정도의 온기다. 김 씨는 생각 끝에 손자들을 꽉 끌어안고 이불을 덮어 서로의 온기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는 사람들이 오가는 앞쪽 판자촌을 바라보며 상대적 박탈감에 사로잡혔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이남희(가명, 92) 씨. 일본군 강제위안부에 끌려갈까봐 서둘러 식을 올렸다고 한다. 하지만 남편의 방황으로 인해 이 씨는 시어머니를 비롯한 14명 가족의 생활을 홀로 감당해야 했다. 고령인 이 씨는 이날 인추협에서 선물한 내복을 받아들고는 아이처럼 기뻐했다. 이 씨는 “이런 호강이 어디 있느냐”며 어깨춤을 췄다. 그러면서 이 씨는 다른 집도 내복을 챙겨달라고 했다.
판자촌은 아니지만 이 근처에서 살고 있는 김순이(가명, 84) 씨의 형편도 별반 다를게 없다. 김 씨는 아들 둘이 있어 수급자 대상자에서 제외됐다. 한 아들은 척추를 다쳐 돈벌이를 더 이상 할 수 없게 됐고 또 다른 아들은 직장 퇴직 후 이혼까지 하면서 삶의 의욕을 잃은 듯했다.
김 씨는 속상했는지 말을 더 이상 잇지 못하고 손으로 가슴을 탁탁 쳤다. 5만 원 사글세에 혼자 살고 있는 김 씨는 “방이 얼면 돈이 더 든다”며 “잠깐 몸만 녹이고 이불을 뒤집어쓰면 된다”고 말했다. 그에게도 겨울나기가 만만치 않다. 게다가 김 씨는 몸이 성치 않아 약을 달고 산다.
“예전엔 애들이 약값이나 용돈 줄 형편은 됐는데….”
이처럼 제도권 바로 밖의 계층과 수급자의 소득수준을 보면 별반 다를 게 없지만 혜택은 큰 차이를 보인다. 한정된 복지예산으로 인해 수급자에게만 혜택이 돌아가기 때문이다.
정부가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위한 지원 사업을 추진하고는 있지만 이들에 대한 지원은 아직 미흡하다. 차상위계층이 단 1만 원이라도 최저생계비보다 더 벌고 있다는 이유로 수급자와 지원받는 혜택의 차이는 크다. 수급자가 최저생계비뿐만 아니라 주거·의료·교육비 등 각종 지원 혜택을 받는 것에 비하면 차상위계층의 생활고가 심한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