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의 미국체험기] 다이아몬드의 크기 = 사랑과 성공의 크기?(2)
[이진의 미국체험기] 다이아몬드의 크기 = 사랑과 성공의 크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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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보스턴 주재기자

미국에서는 평균 2~3개월의 봉급을 저축해서 약혼반지에 몽땅 털어 넣는 게 보통이라고 하니, 남자들도 이 약혼반지에 얼마나 그 정성과 열정을 쏟아 붓는지를 엿볼 수 있겠다. 약혼반지의 가격도 다양해서 평균적으로는 4000불이 넘는 다이아몬드 반지를 받게 되며 이것은 마치 미국의 관례로 여겨지기도 한다. 돈이 부족한 사람들은 가짜 다이아몬드를 사기도 할 것이고, 좀 낮은 품질의 다이아몬드를 고르는 경우도 생길 것이다.

참 재미있는 사실은 미국에서 다이아 반지를 약혼반지로 끼어주는 이 문화가 사실 그 원조가 유럽에서 왔다는 점이다. 이 문화가 미국에 정착된 지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그래서 그 유래를 잠시 요약해보자면, 다이아몬드 약혼반지의 기원은 원래 1477년 오스트리아의 아크두크 막시밀리안(Archduke Maximilian)이 약혼녀에게 처음 주면서 이 전통이 500년 넘게 계속 지속되어 온 것이다. 이후 세계적으로 이 전통이 퍼져나가 부와 명예를 가진 사람들의 하나의 패션으로 여겨져 몇백 년 동안 부유층과 귀족들에게만 한정되었던 특권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다 1870년 남아프리카에서 다이아몬드 광석이 여럿 발견되면서 다이아몬드를 일반인들도 합리적인 가격에 살 수 있도록 대중적으로 만들면서 미국의 약혼반지로서 더욱 그 자리를 굳혀갔다고 할 수 있다.

이와는 좀 다르게 미국의 식민지 시절에는 철저한 청교도 정신에 따라 모든 종류의 보석 사용이 금해져 반지 대신에 실용적인 금속 골무를 선물했다고 하는데, 결혼 이후에는 골무의 밑 부분을 반지의 형태로 만들어 사용했다는 흥미로운 역사적 배경사실도 있었다.

2차 세계 대전 이전까지인 1930년대 후기에는 미국이 고급 다이아몬드 시장으로 형성되면서 미국의 다이아몬드 약혼반지는 보편화된 문화로서 자리 잡을 수 있었고, 민간인 사이에서 다이아몬드 약혼반지가 제대로 유행하게 된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라 할 수 있다. 특히 1952년 세계최대 다이아몬드 회사인 드비어스(De Beers)가 샐러리맨의 3개월치 월급에 해당하는 결혼반지를 미국의 잡지 광고에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는 문구로 다이아몬드의 영원성과 약혼․결혼 반지로서의 가치를 결부시켜 마케팅했다. 이와 함께 다이아몬드반지의 유행이 전 세계에 보급화되면서 더욱 많은 사람이 다이아몬드 반지를 영원한 사랑의 상징인 약혼반지로서 찾게 됐다.

2008년 재임스 그린(James Greene)이 이진 아티클즈(Ezine Articles)에 쓴 기사에서는, 2008년 미국 내 사람들이 평균적으로 다이아몬드를 고르는 캐럿수는 0.38이었지만, 이것은 다이아몬드의 크기를 고르는 것도 지역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어서, 보스톤이나 필라델피아, 뉴욕과 같은 대도시에서는 1.6캐럿 정도가 일반적이며, 종교적인 남부 지역 같은 곳은 0.25~0.4캐럿, 알라바마는 0.5캐럿, 캘리포니아는 1캐럿이 넘는 것이 평균적이라고 전했다.

또한 캘리포니아 중에서도 라호야(La Jolla)․델마(Del Mar) 같은 지역은 2.75캐럿으로 좀 다르고, 미국의 이러한 현상과 비교해 유럽의 평균은 0.3캐럿으로 약혼반지로 다이아몬드가 아닌 다른 원석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 보고가 있다.

우리가 잘 아는 대형 할인상점인 미국의 코스코(Costco)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코스코에서도 고급 다이아몬드 반지를 진열해 놓은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코스코에서 이렇게 비싼 가격의 다이아몬드를 취급하리라고는 전혀 상상을 못했었는데, 조사를 해보니 적은 수의 다아이몬드를 파는 것만이 아닌 온라인으로도 대중적으로 활발히 판매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매우 흥미롭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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