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초나라 왕은 장생이 찾아와 국가 재난 설을 말하자 그의 의견에 따라 덕을 베풀기 위해 재물이 든 창고부터 봉인을 했다. 왕의 그런 명령이 떨어지자 대신들이 술렁댔다. 그중에 범려의 큰아들에게서 황금을 받은 조정 실력자 하나가 당황해서 그에게 정보를 알려 주었다. “여보게, 대사령이 있을 것 같네.”
그 말을 들은 범려 큰아들이 다그쳐 물었다. “어떤 일로 그럽니까?”
“대사령이 있기 전에는 반드시 먼저 부고가 봉인되게 되네. 그래서 왕께서 봉인을 하도록 명을 내린 것 같네.”

범려의 큰아들이 가만히 생각해보니 ‘대사령이라면 동생이 석방된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큰돈을 장생에게 주다니 정말 괜한 짓을 했구나’ 하고 후회를 했다. 그는 장생에게로 달려갔다.

장생은 집으로 갑자기 들이닥친 범려의 아들을 보자 깜짝 놀랐다.
“어쩐 일인가. 아직도 이곳에 있다니?” 장생의 반문에 큰아들은 “예, 아우를 구하러 왔으니까요. 이젠 당신의 손을 빌리지 않아도 아우가 사면되게 되었어요. 그래서 달려온 것입니다.”
황금을 돌려달라는 상대의 의중을 읽었기 때문에 장생은 담담히 말했다. “황금은 안에 보관해 두었네, 가져가게나.” 큰아들은 금을 챙겨 가지고 재빨리 밖으로 사라져 버렸다.

장생은 살인을 저질러 감옥에 갇혀 있는 범려의 둘째 아들을 살리기 위한 조치로 왕을 만났었다. 왕으로부터 대사령을 내리게 만든 장생은 집에서 갑자기 들이닥친 범려의 큰아들에게 어이없는 수치를 당했다. 그는 당장 궁중으로 들어갔다.

장생은 왕을 만나 아뢰었다. “엊그제 별이 불길하게 움직인다고 말씀드렸더니 왕께서는 급히 덕을 베푸시어 이에 대처하는 조치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묘한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그것은 도나라 부호인 주공의 아들이 사람을 죽이고 초나라 감옥에 갇혀 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공이 많은 황금을 뿌리면서 중신들에게 일을 꾸민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대사령이란 즉, 주공의 아들을 살리게 되는 빌미지 왕께서는 특별히 초나라 사람들에게 덕을 베푸시는 게 아니라고 수군대고 있습니다.”

왕은 그 말을 듣자 몹시 화를 냈다. “아무리 내가 부덕하기로서니 주공의 아들을 위해서 대사령을 베풀 수는 없소.” 왕은 곧장 명령해서 범려의 둘째아들을 죽이고 그 이튿날 대사령을 내렸다. 범려의 큰아들은 동생의 시체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집에 도착하자 어머니와 마을 사람들이 몹시 한탄하며 슬퍼했으나 아버지 범려만이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결과가 벌어질 것을 나는 예측하고 있었다. 저 녀석이 동생을 생각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저 녀석은 어릴 때부터 나와 함께 가난을 체험했기 때문에 좀처럼 돈을 손에서 내놓지 않는다. 거기에 비하면 막내는 태어나면서부터 부유한 혜택을 받고 자랐기 때문에 돈을 모으는 고통을 모르고 자랐다. 그래서 돈을 잘 쓴다. 내가 처음에 막내를 보내려고 한 것은 막내라면 그곳에서 마음껏 돈을 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큰아들은 그렇지 못해서 결국 둘째를 죽이게 된 셈이지. 그렇다고 슬프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나는 처음부터 큰애가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을 때부터 둘째가 죽어서 돌아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범려는 세 번을 이사해서 천하의 명사가 되었다. 그는 가는 곳마다 큰 재물을 모으고 명사가 되었던 것이다. 범려는 어렵게 모은 재물이지만 아끼지 않고 항상 가난한 이웃이나 친구들에게 많이 나누어 주었다. 그는 도나라에서 죽었고 도주공의 이름으로 지금까지도 세상에 널리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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