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지상 최대의 절대 권력자로 군림하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했다. 역사에 기록될 그 날은 2011년 12월 17일 오전 8시 30분이지만 발표되기는 그로부터 이틀이 지난 19일 낮 12시다. 그 이틀 동안 북한 문제를 샅샅이 꿰뚫고 있어야 할 남쪽에서도 그의 죽음을 새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김정일이 졸지에 저세상으로 간 것이나 그의 죽음을 남쪽에서 몰랐다는 사실은 놀랍기가 마찬가지다. 저 북쪽 사람들이 아무리 무엇을 감추는 데 천재적이라지만 이렇게 대북 정보망이 허술하다는 사실이 노출된 것은 국민을 불안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김정일은 69년을 살았다. 요즘 세상의 개념으로는 단명인 것이 분명하다. 지난 1994년 7월 8일 당시 김영삼 대통령과의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다가 82세로 묘향산 별장에서 심장마비로 죽은 그의 아버지 김일성보다도 훨씬 수명이 짧았다. 김정일의 사인은 ‘중증 급성 심근 경색과 심한 심장성 쇼크’로 평양 중앙TV에 의해 공식 발표됐다. 그러니까 그의 사인도 심장마비로 그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다. 심장마비가 그의 집안 내력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김정일은 그가 2012년을 목표로 한 이른바 강성대국 진입을 눈앞에 두고 죽었다. 봉건 왕조 체제가 지속된다는 것 말고는 누가 봐도 그 목표는 헛된 꿈이었다. 하루아침에 후진 폐쇄 경제가 호전될 리도 없거니와 인민의 배고픔과 인권이 개선될 것이라는 어떤 희망도 가질 수가 없었다. 이처럼 강성대국 진입이라는 것이 헛된 꿈, 속 빈 강정과 같은 것이라면 자칫 그것은 그의 의도처럼 그의 권력기반을 강성하게 해주기보다 도리어 권력기반을 뒤흔들어 놓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판사판 매달린 것이 핵보유였다. 그것이라도 인민 앞에 내밀어 체면치레를 하려 했던 것 같다.

하지만 핵을 보유하려는 야심은 세계 여러 나라에 불안감을 조성해놓은 것 이상으로 김정일 자신에게도 엄청난 스트레스가 됐을 것이다. 이 스트레스가 그의 건강을 해쳐 놓으면 놓았지 결코 도움은 안 됐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과연 그가 살아서 강성대국 진입의 목표연도인 내년을 맞았더라도 감당하기 어려운 국제적 저항을 견디고 핵보유국임을 천명하고 허장성세할 수 있었을 것인지도 알기 어렵다.

어떻든 김정일은 그의 아버지 김일성과 마찬가지로 핵보유 야심 때문에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죽었다. 그의 입장에서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핵을 포기하느냐 마느냐의 중대한 결단을 내려야 할 시기에 그는 사망한 것이다. 핵 포기가 김일성의 유훈이라면서도 김정일은 강대국들과 벼랑 끝에서 위험한 핵 게임, 핵 카드 놀이를 벌여왔다.

그의 핵 게임은 오히려 그의 아버지보다 더 능란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김일성은 미국의 가공할 항모 전단의 타격력이 북폭(北爆)을 위해 동해바다에 집결하자 지미 카터를 불러들여 미국과의 사이에 중재를 서게 하고 남북정상회담을 제의하면서 꼬리를 내렸다. 이에 비해 김정일은 협상 테이블에서 6자 회담 참가 강대국들을 어르고 구슬리고 농락하면서도 김일성과 같이 뜨거운 맛을 볼 순간을 맞이하지는 않았었다. 그렇다고 해서 핵보유국들의 ‘사다리 걷어차기’를 이겨내고 핵보유에 성공했을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분명한 것은 그가 핵 야심을 포기하지 않는 한 그의 고난의 길도 끝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일 것이다.

죽음은 누구도 비켜가지 못한다. 죽음은 하늘이 관장하는 불가항력의 영역이다. 사람은 태어나면 죽음이라는 종착역을 향해 달리는 인생 열차에 실린다. 김정일과 같은 신격화된 절대 권력자도 그 죽음을 향해 달리는 인생열차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오히려 그의 종착역은 가까이 있었다. 사실 그의 단명은 예견된 것이었다. 얼굴은 검버섯이 피며 검어지고 다리는 절고 동작은 부자연스러웠었다. 그것은 그가 겪은 2008년 뇌졸중 병력의 후유증이었다.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그의 인생은 ‘덤’이었다. 김정일을 치료한 프랑스 의사의 말이 그렇다. 김정일은 뇌졸중으로 쓰러졌을 때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그런 그를 프랑스 의료진이 긴급히 투입돼 평양 적십자 병원 집중 치료실에서 진료했었다. 그 덕분에 지금까지 살아남아 부자연스럽지만 비교적 활발히 활동을 할 수 있었다. 몸이 불편함에도 무리하게 보일 정도로 왕성하게 활동한 것으로 보아 아마 그는 자기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그는 일을 서둘렀다.

이제 더 이상 김정일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김정일이 없는 세상이 됐다. 그것이 얼핏 의미하는 것은 김정일이 없으므로 북도 남도 나머지 세상도 변화된 세상이 될 것이라는 것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김정일은 갔지만 김정은 후사(後嗣)로 이어지는 북한 왕조의 선군정치의 시스템과 정신이 변할 것 같지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정확히는 그것도 알 수 없다. 김정은은 통치 경력이 너무 일천하다. 권력투쟁을 예상할 수 있으며 그럴 때 극심한 혼란에 휩싸일 수도 있다. 북한의 새 권력 지형을 볼 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때까지는 외부의 눈도 혼란스러울 것이며 내부의 권력 엘리트들과 인민들도 불안하고 힘든 시간을 보낼 것이다.

김정일 사후의 북한을 바라보는 열강들의 움직임은 예상대로 부산하다. 미 중 일 러 정상들 간의 소통도 활발하다. 그들의 촉각은 북의 내부 동향 파악에 곤두서 있으며 시선은 남이 북을 보는 예민함에 조금도 덜하지 않다. 이것이 말해주는 것은 통일과 같은 우리 내부 숙원의 문제가 결코 우리 내부의 문제로만 그치지 않을 것임을 극명하게 시사한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로 우리가 저들 열강들의 소통의 채널에서 소외되면 안 되며 그들과 호흡, 맥박, 리듬을 같이하는 것은 물론 오히려 주도해나가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렇다고 상(喪) 중의 저들을 지나치게 자극하는 과잉 반응은 지양돼야 한다. 주변국들과 공조하는 차분하고 성숙한 자세를 보여주어야 하며 바람직하기로는 저들을 끌어안는 넓은 가슴과 연민의 마음을 보여줄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김정일의 죽음은 돌발 상황이다. 그의 돌연한 죽음은 절대 권위의 부재라는 혼돈을 낳았다. 그 같은 혼돈 속에서 또 다른 돌발 상황이 우려되기도 하지만 우리의 대응은 침착하고 적확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그의 죽음에 관한 정보를 놓친 것과 같은 실수는 되풀이하지 말아야 하면 북의 동태를 손금 보듯 읽어내어야만 할 것이다. 김정일이 없는 북은 여전히 남과 세계에 여전히 골치를 앓게 해줄 것 같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의 반쪽 북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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