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2년 1월 8일 미야자와 전 일본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시작된 서울 일본대사관 앞 수요집회가 14일 1000회를 맞는다. 수요 집회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참여로 이어져왔다. 일제에 의해 꽃다운 청춘을 짓밟히고 인권을 유린당한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미해결 상태다.

위안부의 실체가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91년 김학순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자임을 공개하면서부터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일본군위안부의 진상을 규명해줄 것과 전쟁범죄를 인정하고 공식 사죄할 것, 전범자 처벌, 추모비와 사료관 건립, 피해자들에게 배상할 것, 역사교과서에 기록할 것 등 7대 요구사항을 관철하기 위해 증언 집회가 시작됐다.

어쩌면 감추고 싶었을 위안부 문제를 공개하기까지 위안부 할머니들은 참으로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용기를 낸 그들에게 돌아온 건 또 다른 상처였다. 20년이라는 긴 세월을 일본정부와 맞서 싸워왔지만 공식적인 사과는커녕 자신들은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듯 발뺌만 하고 있다. 그들이 책정한 보상비(강제노역보상비)는 99엔이었다. 1000원이 조금 넘는 돈이다. 이는 위안부 할머니는 물론 우리 정부와 우리 국민 전체를 우롱한 일이다. 더욱 답답하고 안타까운 것은 우리 정부의 대응 역시 미온하기는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이며, 무엇이 두렵단 말인가. 정작 두려워해야 할 것은 역사 앞에 당당하지 못한 모습이다. 역사 앞에서 거짓은 반드시 드러나기 마련이다. 일제가 저지른 만행 앞에 나약한 모습은 그들의 사기를 진작시키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며, 그에 합당한 사과를 받아야 한다.

이제 생존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63명으로 줄었다. 수요 집회 1000회를 이틀 앞둔 12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가운데 최고령인 박서운 할머니가 중국에서 별세했으며, 하루 앞둔 13일에는 김요지 할머니가 87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지난 20년 동안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한 할머니 170여 명이 끝내 일본 정부의 사죄를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떴다. 더 이상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우리 정부는 더 늦기 전에 일본정부의 사죄를 받기 위해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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