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직 교장들이 뜻을 모아 마련한 ‘도전! 타고난 적성스타’ 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한 박상아 양이 친구들과 기쁨을 함께 나누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성적 아닌 ‘적성’ 찾아 나선 청소년들

[천지일보=장요한 기자] 지난달 수능 시험 이후 입시설명회마다 몰려든 인파로 북적거린다. 이와는 반대로 학생 개개인의 성적이 아닌 ‘적성’을 보고 장학금 1000만 원을 지원하겠다는 특별한 대회가 열려 관심을 모았다.

‘붕어빵식 입시교육’에 찌든 학생 개개인의 적성을 찾아주기 위해 퇴직 교장들이 뭉쳐 ‘도전! 타고난 적성스타 T: 1000만 원을 잡아라’는 대회를 마련한 것. 지난 5일 열린 이 대회에는 9~25세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사연을 접수한 결과 100여 명의 지원자가 나왔다.

1, 2차 심사를 거쳐 선발된 11명의 청소년들은 이날 KBS라디오홀 무대에서 숨겨왔던 자신의 끼를 맘껏 발산했다. 이들은 작곡가, 배우, 격투기 선수, 개그맨, 일러스트레이터, 댄스 스포츠 등 다양한 꿈을 펼쳐 보였다.

특히 자신의 적성을 찾아 사회에 진출하고 싶지만 현실의 벽에 맞닥뜨린 이들의 도전 과정이 소개돼 감동을 선사했다.

일러스트레이터를 꿈꾸는 김진경(명지대 1학년) 씨는 이번 대회를 준비하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했다. 그는 “여기까지 올 줄 몰랐다”며 “나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고 내 적성을 인정해주셔서 자신감이 생겼다”고 기뻐했다.

김 씨는 또 “공부가 다는 아닌 것 같다”며 “상위 0.1%만을 위한 입시교육이 아니라 학생 개개인의 차이를 인정해줬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고여정(미림여자정보과학고 2학년) 양은 외고 준비를 위해 초등학교 때 말레이시아로 유학을 떠났지만 우울증과 향수병에 시달려 결국 중1 때 한국으로 돌아왔다. 고 양은 한국 진도를 따라잡지 못해 어려움이 컸다.

고 양의 부모님도 심각성을 느끼고 평소 관심이 있던 디자인 분야 고등학교를 입학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는 “모든 컴퓨터를 켜면 내가 만든 게임이 깔려 있는 날이 왔으면 한다”며 ‘게임기획자’에 대한 자신의 비전을 소개했다.

최근 그는 부모님과 심한 마찰을 빚고 있다. 게임을 취미 정도로만 여기는 게 아니라 직업으로까지 생각하니 심한 반대에 부딪힌 것. “하지만 절대 굽히지 않을 것”이라며 고 양은 확고한 의지를 보였다.

이번 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한 박상아(영신간호고 2학년) 양은 한부모 가정이 되면서 형편이 급격히 안 좋아졌다. 그래서 비싼 돈을 들여 댄스 스포츠 학원에 다닐 수 없었다. 박 양은 춤을 출 수 없게 되자 우울증까지 왔었다고 했다.

이번 대회를 위해 모든 열정을 쏟은 그는 무대 의상을 갖춰 입고, 직접 짠 안무와 음악에 맞춰 댄스 스포츠를 즐겼다.

“다시 내 꿈을 찾았다”며 눈물을 보인 박 양은 “이번 기회를 토대로 멋진 ‘라틴 프로 댄서’가 될 것”이라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 지난 달 교육과학기술부 주최, 평생교육진흥원 전국학부모지원센터 주관으로 열린 ‘전국학부모지원센터 진로·진학설명회’자리. (연합)
학부모 인식 변화가 전환점 될 수 있어

이날 대회에 참석한 청소년들은 모두들 자신의 꿈을 당당히 소개하고 또 자신의 색다른 모습까지도 내비쳤다. 그러나 많은 청소년들에게 “장래희망 혹은 꿈이 무엇이냐”고 질문하면 대부분 자신 있게 대답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청소년들을 탓할 수만 없는 것이 현재 진로 교육이 대학 진학을 목표로 두고 상담을 하는 형태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미래를 고민하면서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자유롭게 탐색하고 준비해 나갈 수 있도록 돕는 진로 교육이 절실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미약하게나마 교육과학기술부(교과부)나 일부 교육청에서 진로 교육의 필요성을 인식, 변화의 노력을 보이고 있다.

교과부는 1년 전 진로교육과가 신설되기 전까지만 해도 진로교육 업무에 사무관 한 사람을 뒀다. 하지만 올해 진로진학상담교사 1500명을 전국 고등학교에 배치했다. 또 2014년까지 5300여 개의 모든 중·고교 진학상담교사를 배치해 학생의 적성과 소질을 고려한 진로진학 지도를 지원한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7~9일 북서울중학교 3학년 303명을 대상으로 ‘직업체험’을 시범적으로 운영했다. 담당자 윤여복 장학관은 “중학생이 어떻게 직업체험을 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도 있었지만 다양한 직종의 직업인들과 만난 아이들의 자세는 진지했다”며 “막연했던 직업관에 대한 궁금증도 풀고 자신의 적성도 모색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학부모의 인식 변화가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고등학생과 대학생 자녀를 둔 정지혜(48, 서울북부교육청 소속 상담사) 씨는 학부형 대상 상담봉사에 자원해 벌써 6년째 이 일을 해오고 있다.

정 씨는 “아이들이 자기 적성과 꿈에 대한 생각 없이 단지 부모 말 잘 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정 씨는 “상담을 하면서 내 아이를 이해하게 돼 다른 학부모에게도 권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한상금 박사는 “입시 교육에서는 학생들이 자신의 적성과 흥미를 탐색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없는 것이 당연하지만 학부모의 인식 전환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 박사는 “학생들은 학부모의 반대에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면서 “학부모 인식 전환을 위한 프로그램이 운영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근 퇴직 교육자들과 타고난 적성 찾기 국민 실천본부를 만든 강지원 변호사도 “명문대를 진학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잘못된 사회 풍토를 깨야 한다”며 “이를 위해 학생과 학부모가 용기를 내줘야 한다”고 말했다.

강 변호사는 “모든 교육의 목표는 청소년들이 타고난 적성을 발견하는데 맞춰 교과 과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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