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접 언어순화활동을 펼치는 동아리 학생들이 ‘우리말 행동강령’과 포스터를 제작해 학교 교실에 게시하자 또래 학생들의 관심을 받았다. (사진제공: 경희여중 너나들이 동아리)
교원단체·유관기관 힘 합치니 현장서 조금씩 교육효과 나타나

[천지일보=장요한 기자] “솔직히 처음엔 ‘욕 쓰는 게 뭐 어때’라는 가벼운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욕은 칼보다 무서운 흉기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육두문자가 오가는 것이 일상화된 청소년 욕설문화의 심각성은 매년 회자돼 왔던 사안이다. 실제로 이를 뒷받침해주는 통계자료는 꾸준히 나오고 있다.

KBS한국어진흥원과 국립국어원이 지난 9월 전국 14~19세 청소년 1518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평소 욕설을 하는 청소년 10명 중 7명은 초등학교 때부터 욕설을 시작했다. 욕설을 접하는 시기가 점차 어려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청소년의 절반은 습관적으로 욕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 86.8%가 욕설을 하지 않거나 줄일 생각이 있다고 했지만 이 중 절반에 못 미치는 42.2%만이 실행에 옮기겠다고 했다. 나머지는 ‘습관이 돼서 고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또래 학생 권유에 욕 사용 줄어

청소년의 잘못된 언어습관은 가정과 학교에서 방치돼 왔다. 그러다 최근 교원단체와 유관기관 및 단체, 일선 학교에서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문제 해결을 위해 발 벗고 나선 일부 학교엔 변화의 움이 텄다. 충북 청원중학교는 학생들의 언어순화를 위해 지난 9월부터 석 달간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청원중 문수미 국어 교사는 “한순간에 모든 것이 바뀔 수는 없겠지만 학교 전체가 노력하니까 긍정적인 변화가 조금씩 나타난 것 같다”며 “아이들의 반응도 좋아 내년에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원중에서는 먼저 학생들이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도록 비디오와 설문조사 등을 통해 학생들이 토론하고 협의하는 과정을 거치도록 했다.

특히 매월 11일을 ‘세움의 날’로 지정해 학교의 모든 구성원이 핀 버튼을 착용하고 높임과 존경의 언어를 사용하도록 했다.

또 교과 교실제의 장점을 살린 한글날 특별 프로그램도 운영했다. 국어1~7실을 활용해 우리말 퀴즈대회, 외래어·비속어 쓰지 않고 예쁜 엽서 쓰기, 열쇠고리 자모 디자인하기, 한글사랑 티 디자인하기, 모둠별 노래 개사하기 등의 다양한 한글체험 공간을 만들었다.

이밖에 UCC나 동아리별 표어 박람회, 예쁜 글씨 쓰기 대회, 대학 연계 언어순화 강연 등을 진행했다.

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학교 변화를 이끈 사례도 있다. 이예림(서울 경희중 3학년) 양은 올 2학기부터 ‘너나들이’라는 동아리 활동을 해왔다.

이 양은 “욕의 어원 등을 자세히 알게 되면서 이를 친구들에게 알리고 욕을 안 쓰는 방법을 고민하게 됐다”면서 “선생님 말씀은 훈화로 여기는데 (또래)친구들의 말은 받아들이는 거 같다”고 말했다.

‘너나들이’ 동아리에서는 ‘비속어·순화어 사전’과 ‘언어순화 홍보물’ ‘바른말 고운말 사용 행동강령’ ‘UCC’ 등을 제작했다. 이 양은 “국어 선생님께서 반마다 수업시간에 우리가 만든 동영상이나 자료를 많이 홍보해주셔서 도움이 많이 됐다”고 전했다.

▲ 왼쪽 사진은 ‘너나들이 동아리’ 학생들이 영화의 한 장면과 자신들의 일상생활을 비교해 만든 포스터이고, 오른쪽 사진은 ‘착한 댓글 달아요’ 헬로우 선플 캠페인에 참석한 한 학생 모습.
사회 전반의 참여 여론도 중요

학교 내 바람직한 언어생활지도가 불충분하다는 현장 목소리를 수용한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에서는 지난 5월 ‘학생 언어문화 개선 선포식’을 시작으로 민관 합동 캠페인, 선도학교 및 선도교실 운영, UCC 공모전, 교육자료 제작 등 학생 언어문화 개선 사업을 추진해오고 있다.

지난달 30일 교총이 주관한 ‘학생 욕설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열린 컨퍼런스에서 전문가들은 대안으로 체계적인 학교 프로그램과 사회적인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고 제시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장근영 박사는 “우리나라 어린이와 청소년의 주관적 행복지수가 OECD 23개국 중 가장 낮다”며 “청소년의 욕설문화는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열악한 삶을 반영하는 증상”이라고 진단했다. 장 박사는 “현실을 바꾸지 않고 욕설만 금지하려 들면 청소년들의 현실은 더 열악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장 박사의 진단에 대해 홍대부고 조기석(18) 군은 “입시 위주의 교육현실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근본 원인”이라며 정부에서 마땅한 대안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장 박사는 “큰 틀을 바꾸기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마냥 기다릴 수는 없다”며 “실질적으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또 경인교대 박인기 교수는 “범국민적 교육차원에서 욕설현상 관련 각종 지표(욕설사용지수, 욕설태도지표, 감정조절지표, 분노지수 등)를 개발해 적용, 일반화 할 때”라고 제안했다.

박 교수는 “그동안 청소년 언어순화를 위한 캠페인은 많이 해왔지만 실효적이지는 않았다”며 “국가적 차원에서 ‘국민언어문화진흥기본법(가칭)’과 같은 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추가 의견을 내놓았다.

경희여중 강용철 교사는 “언어예절, 인성교육 내용이 교과과정으로 명시돼야 한다”며 다양한 교육자료 개발과 유관 기관의 협조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선플달기국민운동본부(선플운동)는 청소년을 중심으로 사회 전반에 긍정적인 언어를 전파해 눈에 보이는 성과도 거뒀다. 선플운동은 지난 2007년 건국대 민병철 교수가 한 여자 가수가 인터넷 악플에 괴로워하다 자살한 뉴스를 본 뒤 자신이 가르치던 대학생들에게 연예인 관련 사이트에 선플을 남기라는 과제를 내주면서 시작됐다.

현재 전국 2500여 개 학교와 단체가 참여하는 국민참여운동으로 확대됐으며, 11월까지 선플운동 홈페이지의 선플은 200만 개를 돌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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