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 노동자 스트레스 ‘심각’
노동자 위한 정신 상담소 필요

[천지일보=이솜 기자] 지난달 21일, 철도노조에서 파업을 이끌었다가 해고된 허모 씨가 자살했다. 허 씨는 지난해부터 ‘해고로 인한 스트레스성 장애’를 정신과에서 진단받고 치료 중이었다.

쌍용자동차에서는 2009년부터 17명의 해고 노동자와 가족이 스트레스성 질환과 자살로 사망했다. KT노동인권센터에 따르면 올해 KT 지사 내에서 3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은평구 KT 지사에서 지난 7월 투신해 세상을 떠난 故 강모 씨의 처남은 “경찰조사 결과 갑작스러운 업무전환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자살의 원인이었다”고 말했다.

노동자들의 정신 건강 악화가 곳곳에서 보이고 있다. 특히 해고 노동자에 있어서는 심각한 상황이다.

지난 10월 전국금속노동조합이 파업을 벌이다 해고된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 71명을 상대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응답자의 92.7%가 정신 건강이 악화됐다고 답했다. 구체적 변화로는 ‘하루에도 수십 번 자살 충동을 느낀다’ ‘아파트 베란다에 서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고 답했으며 가정파탄, 이혼 직전, 별거 중, 아내 우울증 심각 등 심한 가정불화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8월에는 평택시와 평택대학교 등이 쌍용자동차 무급휴직자와 해직자 실태 조사를 벌였다. 조사 결과 자살 등의 극단적 충동을 느낀 경험이 ‘있다’는 응답자가 52.5%로 높게 나타났고 대부분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 놓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렇다면 왜 특히 해고 노동자들의 정신 건강이 악화되며 심지어는 극단적 선택까지 하게 되는 걸까.

임상혁 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장은 “자살할 때의 심리상태는 사회 환경적으로 영향을 받는다”며 “그들에게 있어 가장 크게 영향을 받은 사건이 바로 ‘해고’였고 그것으로 인해 환경적으로 받는 스트레스가 자살까지 가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현재 우리나라에는 지역 자체로 정신보건센터가 있긴 하지만 노동자를 위한 전문성이 부족하다”며 “유럽만 봐도 대기업이라면 회사 내에 노동자들의 정신 건강을 도와주는 센터가 있으며 경제적 여건이 안 되는 중소기업은 정부가 운영하는 센터에서 관리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회사나 정부 모두가 노동자를 위한 정신 상담소를 설립하지 않는다”며 안타까워했다.

앞서 쌍용차 해직자 실태조사에서 해고 노동자들은 복직에 대한 희망이 81.2%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돼 회사로 돌아가고 싶은 열망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쌍용차 관계자는 “굉장히 안타까운 일이지만, 아직 이들을 복직시킬 만한 생산량이 부족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KT 관계자는 “다른 회사와 비교해 볼 때 KT 내 직원 사망률은 낮은 편”이라고 말했으며 철도공사도 아직 故 허 씨의 자살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남아 있는 해고 노동자들의 정신 건강은 누가 책임질 수 있을까.

지난 1일 전국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와 전국철도노조, KT공동대책위원회는 청와대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멈추지 않는 자살을 사회와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호소했다. 회사도 가족도 막을 수 없는 죽음. 이제는 정부와 사회의 적극적인 해결 노력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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