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지난 주말 오후 TV를 켰다. 1일 개국한 종합편성채널에서 어떤 프로그램이 방영되는지 궁금해서였다. 평소 뉴스 빼고는 TV를 잘 보지 않았으나 종편채널이 새로운 미디어시장의 변화를 이끌 가능성이 큰 매체로 그 성공 여부가 사회적 관심사로 떠올라 오래전부터 흥미가 많았다.

종편의 여러 프로그램을 두 자리 번호인 4개의 채널을 번갈아 가며 관심 있게 살펴봤다. JTBC, TV조선, 채널 A, MBN 등 4개 방송은 모든 것이 낯설었다. 형식은 케이블 방송이었지만 기존 공중파 방송과 포맷, 내용이 아주 달랐다. 예전 홈쇼핑 채널 번호들을 모두 종편에서 차지해 새로운 채널로 선보였고 프로그램도 새로웠으며 사람들도 새로웠다. 기존 공중파 방송들보다 예능, 다큐멘터리를 더욱 중점적으로 방영하는 것이 눈에 띄었다. 연예인, 소설가, 변호사 등 유명세를 타고 있는 스타들을 내세워 연예, 자연 및 인간 다큐, 생활
에피소드 등을 다룬 프로그램들은 어느 정도 차별화, 전문화된 듯했다.

개국 홍보 프로그램에는 많은 인사가 직접 출연하거나 축하 멘트를 하는 모습도 보였다. 박원순 서울시장,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가수 인순이․소녀시대 등이 축하 멘트와 인터뷰를 했다. 스포츠계에서는 피겨 스케이팅 요정 김연아가 TV 조선에 ‘깜짝 앵커’로 출연했고, 잉글랜드 리거 박지성이 축하 인터뷰를 했다. 한국 스포츠가 낳은 세계적 스타인 둘의 지명도와 인기를 배려한 것이었다. 김연아는 자신의 근황을 소개하고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달라는 멘트와 함께 스포츠에 애정을 가져달라고 밝혔다. 박지성도 한국축구의 발전상을 소개하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많이 소개해달라는 요청을 하기도 했다.

허나 정작 스포츠 콘텐츠는 새 종편채널에 없었다. 둘의 완곡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이번 개국 종편 프로그램에선 스포츠 콘텐츠가 전무하다시피 해 아쉬웠다. 스포츠 콘텐츠를 너무 등한시 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종편에서 기존 방송과 거리감을 두고 다양한 포맷을 구성할 수 있는 것이 스포츠 콘텐츠이기도 한데 말이다.

스포츠 콘텐츠가 새로운 방송시장에서 얼마나 경쟁력이 있는 것인가를 미국 방송시장에서 폭스 TV가 성공한 예를 들어 살펴보겠다. 폭스 TV는 지난 1990년대 ABC, NBC, CBS 3대 방송사가 주도했던 미국 방송시장에 뒤늦게 뛰어들었다. 현재는 세계 미디어의 최대 거물이 된 루퍼트 머독은 당시 기존 3대 네트워크에 도전하는 것이 결코 만만치 않은 일임을 절감했다. 어설프게 했다가는 계란으로 바위치기와 같이 실패로 돌아갈 가능성이 컸다.

머독이 기존 방송에 강력한 도전장을 띄운 것은 바로 스포츠 콘텐츠 분야였다. 머독은 기존의 3대 방송 독과점 구조를 깨기 위해서는 스포츠를 ‘벽을 부수는 추(Battering Ram)’로 삼는 과감한 전략을 채택했다. 미국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미식축구의 TV 중계권을 기존 방송사보다 높은 가격으로 사들였다.

1998년 미국 미식축구와 2005년까지 44억 달러의 파격적인 금액으로 중계권 계약에 성공, 기존 방송사를 깜짝 놀라게 했다.

처음 수년간은 적자를 보기도 했지만 폭스 TV의 미식축구 중계는 방송사 인지도를 높이며 시청률 상승에 크게 기여했다. 머독은 더 나아가 프로야구 LA 다저스 구단도 2억 5천만 달러에 인수해 스포츠 콘텐츠 프로바이더로서의 위치를 탄탄하게 구축했다. 머독의 이러한 시도는 광고시장에서 적극적인 관심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고, 폭스 TV는 2000년대 들어 상당한 흑자재정으로 돌아서면서 바야흐로 4대 네트워크에 진입할 수 있었다.

국내 종편채널이 반드시 미국의 폭스 TV 성공 모델을 따르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프로 스포츠가 크게 성행하고 있는 미국의 방송시장을 벤치마킹해 국내 스포츠에 접목시켜 한국식 스포츠 콘텐츠를 육성, 발전시키면 좋을 법하다. 대부분의 시청자는 기존 방송사들이 프로야구, 프로축구 등을 중계방식으로 운영하는 것에 대해 상당히 식상해하고 있다. 1990년대 초반 SBS가 개국 초기 골프를 특화시켜 성공했던 것과 같은 차별화된 스포츠 콘텐츠를 다양하게 개발해 시청자들의 갈증을 풀어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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