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균우 왕인문학회 회장 소설가

아무리 어려워도 다 다닌 중학교는 졸업해야 되겠고 또 투자 중에 좋은 투자가 공부밖에 없으며 또 성적이 우수하니 성공이 환하게 보이는 확고한 투자가 아니냐고 말했다. 온갖 지혜를 다 짜내서 설득을 해 보았으나 그 다음 날도 결석이고 또 그 다음 날도 결석이다. 또 가정방문을 해서 설득을 했다.

“선생님, 학비를 댈 수 없는 것이 분명한데 학교에 가서 무엇합니까. 이왕 못 다닐 바에야 빨리 그만두는 것이 상책이 아닌가요?” 필자가 가진 능력으로는 설득이 되지 않았다. 역시 다음 날도 결석을 했다.

할 수 없이 당시의 납부금 1만 7천 원을 서무과에 납부하고 영수증을 받아 가지고 다시 가정방문을 해서 전달하고 학교에 꼭 나오도록 당부하고 귀가했다. 그리해서 유 양은 다시 학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

또 시간은 흘러서 고등학교 입학시기가 도래했다. 지금은 산업체 부설학교가 많아서 심지어 회사에서 값싼 노동력을 구하려고 학교를 방문하여 사정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으나 그때는 산업발전이 극히 미약했고 가난하던 시절이라 마산에 있는 한일합섬 외에는 고등학교를 부설한 경우가 없었다. 그런데 당시 필자의 반이었던 우태순, 한기례 두 학생이 원서를 구해와서 그 학교에 가겠으니 원서를 써달라고 했다. 두 사람 다 공부는 잘하지만 건강상태가 좋은 편이 아니었다. 살기가 어려우니 잘 먹지를 못해서 그랬던 것이다.

“산업체 부설학교는 일을 해가면서 공부를 해야 하기 때문에 대단히 어려워서 건강해야 하며 결심이 대단해야 하는데 각오가 돼 있나?”
“예, 문제없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내 써주기는 써주겠다만 내가 보기에는 너희 둘은 다 몸이 약하니까 신체검사에서 떨어질 염려가 있으니 서산여고에도 원서를 쓰도록 하자.”
“어차피 진학을 못할 텐데 원서를 써서 무엇합니까?”

강제로 원서를 써서 서산여고에 응시케 했다. 그 결과 우태순 양은 전체 수석, 한기례는 전체 9위였다. 합격했지만 학비가 문제였다. 전체 수석을 했으니 등록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집안 사정이 극히 어려워, 궁리 끝에 필자의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사람인 김세윤 사장을 찾아가서 사정을 말하고 도움을 청했다. 그는 선뜻 응해주었다. 입학 등록금 전부를 납부해 주었던 것이다. 어찌나 고마운지 그때의 심정은 정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였다.

물론 당사자인 우태순 양에게도 당부했다. 찾아가서 고맙다는 인사를 반드시 드려야 하고 또 고마움에 보답하기 위해서는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한다고 격려했다.

그리고 난 후 며칠 뒤였다. 그 당시 새마을운동이 시작된 지가 얼마 안 된 시기였는데 마침 군청에서 새마을장학금 추천 의뢰가 왔다. 그간 있었던 일은 감추고 그 장학금을 또 지급받도록 적극 나서서 거듭 두 가지 장학금을 받도록 했다. 그 후 우태순 양은 공부를 열심히 해 서산여고를 졸업한 후 서울교육대학을 나와서 현재는 서울 시내 초등학교에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이 무렵에는 학생들의 마음을 바르게 이끌고 정서를 순화시켜 참다운 학생이 되게 하고 서로 화목하고 협동하는 풍토를 조성하겠다는 생각으로 학급 급가를 작사·작곡까지 해서 종례시간에 부르게 해다.
역시 장학사의 장학지도를 통해 급가 부르기가 이웃학교로 번져서 안면중학교에서는 매년 급가 부르기 경창대회를 열었다.

-3학년 2반 급가
1. 아름다운 마음들이 모이는 곳엔 명랑한 웃음소리 솟아오르고/ 언제나 사랑이 넘쳐흐른다./ 우리는 서로 돕는 3학년 2반.
2. 부지런한 마음들이 모이는 곳엔 활기찬 미래가활짝 열리고/ 언제나 기쁨이 넘쳐흐른다./ 우리는 서로 돕는 3학년 2반.
3. 희망찬 마음들이 모이는 곳엔 활기찬 미래가 활짝 열리고/ 언제나 꽃동네가 이루어진다./ 우리는 서로 돕는 3학년 2반.
후렴- 협동하며 살아가자 3학년 2반/ 웃으면서 살아가자 3학년 2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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