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최근 대입 수능 성적이 발표되면서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돈을 많이 들여 공부를 시킨 아이들이 수능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살림살이가 넉넉지 않은 부모들과 아이들 가슴이 무너지고 있다. 학원들만 신바람이 나서 입시설명회다 뭐다 해서 야단법석이고 그나마 그것마저 형편 되는 사람들 이야기다.

학교라는 게 정의를 가르치고 올바른 삶을 살아가기 위한 평생의 가치를 다지도록 해 주어야 하는 것이지만, 우리네 현실은 정반대다. 돈 있는 집 아이들이 공부도 잘하고 좋은 대학 가서 좋은 자리 차지하고 잘 먹고 잘살 수 있다는 끔찍한 현실을 체득시킬 뿐이다. 농어촌 아이들을 위한 특례 입학이 위장전입한 도시아이들 차지가 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학입시에 목을 매는 이 사회 풍조도 문제지만, 자율고다 특목고다 해서 학교 서열을 정해 결국 돈 있는 아이들이 혜택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드는 나라 정책이 더 큰 문제다. 이 정권 들어서 하는 일이라는 게 매사 이런 식이다. 잘 먹고 잘사는 사람들을 위한 생각에만 골몰할 뿐, 없는 사람들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그러면서도 그런 줄, 모른다.

얼마 전 공부를 잘 못한다고 닦달하는 엄마를 살해한 고교생의 이야기는 대학 입시에 목을 매는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린다. 패륜을 논하기에 앞서 자식 키우는 부모로서 너무 가슴이 아프다. 엄마를 제 손으로 숨지게 한 그 아이는 가해자이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피해자다. 눈만 뜨면 공부하라고 다그치고 성적이 좋지 않다고 매질을 해대는 엄마가 얼마나 끔찍했을까.

엄마 노릇도 쉽지 않다. 옆집 남편은 돈도 잘 벌어오고 폼도 난다는데 우리 집 남편은 꼴이 말이 아니고 자식들 공부는 어디 가서 말도 섞지 못할 지경이라며 가슴을 콩콩 찧는 엄마들이 엄청 많다. 그래, 남자들은 ‘옆집 남편’ 신드롬에 시달리고 아이들은 ‘엄친아’ 때문에 속을 태운다. 아이들 공부시키겠다고 노래방 아르바이트 나가는 엄마들 심정을 현대판 맹자 엄마의 마음이라며 아름답게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20여 년 전에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영화가 나왔을 때, 맞는 말이라며 아이들이 열광했다. 그 아이들이 자라 엄마가 되고 아버지가 된 다음에는 “행복은 성적순”이라며 아이들을 몰아세운다. 행복이 분명 성적순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아이들한테는 그렇게 한다. 희한한 일이다.

인식의 문제다. 어느 분야에서 특출하게 두각을 드러내고 훌륭한 성과를 내고서도 마음 한구석 좋은 대학을 나오지 못했다는 불편함이 있거나, 사실은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는 것이다. 소위 일류 대학이라는 곳을 나오면 평생 행세하고 거들먹거리는 게 우리 현실 아닌가.

서울대, 그중에서도 법대가 얼마나 좋으면 박원순 변호사도 서울대 법대 입학 여부를 놓고 논란을 일으켰을까. 시민운동 한다는 그 순수한 열정으로 치자면 가당찮다 싶은데도, 아무튼 그렇게 서울대 법대에 목을 매는 것을 보면 그게 분명 효과가 있기는 한 모양이다.

얼마 전 한나라당이 이미지를 쇄신한다며 새로운 인물을 영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을 때 막노동을 하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변호사가 된 아무개 씨가 후보에 올랐는데, 그 사람들 생각으로는 아무튼 서울대 법대 정도는 나와 주어야 그 사람들 편이 될 자격이 있다고 여기는 모양이다.

이번에도 학교마다 거리마다 대입 성과를 알리는 현수막이 내걸릴 것이다. 우리 마음 속 촌스러운 현수막은 언제쯤 걷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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