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 보스턴 주재기자

친구를 만나야 하더라도 자신의 남편이나 아내를 대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혼자 술집에 가거나 밖으로 도는 경우는 거의 있을 수 없다. 집으로 돌아가 식구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TV를 함께 보면서 이야기를 하거나, 차를 수리하거나, 잔디를 깎거나 집안에 보수할 부분을 고치거나, 운동을 하거나, 개인 취미생활을 하거나, 조용히 술 한 잔을 가족끼리 하며 가정사를 논하거나 하는 것이 보통 미국가정의 모습이다.

밤마다 술자리를 옮겨 다니며 밤늦은 시간까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가족이 모를 상황이 발생할경우란 미국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든 이야기다. 그런 일이 계속해서 한두 번 이상 있게 되면 가정의 불화 내지는 이혼까지도 각오해야 하니 그만큼 미국의 남편들은 가정중심적 문화를 매우 중요시 여기고 실천에 옮긴다. 사회가 또한 술 문화를 통제해가며 가정으로 돌아가도록 함께 도와주고 있다 보니 미국 남자들이 가정적으로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된다.

우리나라에서처럼 대학교 기숙사나 수련모임 같은 곳에서 술을 마시는 건 미국에서는 아예 불법으로 간주된다. 한 번은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는 한 한국인 건축학도생이 외국인 학생들과 그야말로 잘 어울리고 학교생활도 좀 잘 해보겠다고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술에 취해있는 것을 보았는데, 매우 씁쓸한 광경이었다. 여기까지 와서 꼭 술을 마시고 망가진 모습을 보이는 것만이 마치 친구를 잘 사귀고 사회생활을 잘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술을 통해 내 사람들로 만들 수 있다는 착각은 정말 지극히 자신만의 생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보다 나이가 어려서 여러 번 충고를 해주었지만, 한국에서 하던 그 술버릇 그대로 미국에까지 와서 술로 관계와 정을 만들고 쌓아보겠다고 하는 모습이 참 답답하게 보였다. 미국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생기는 현상이라 참 안타깝다는 생각마저 들었었다. 결국 다른 나라, 다른 문화에 있으면서 미국인들이 자신이 하는 행동으로 인해 결국 한국인들을 내심 어떤 눈으로 바라볼 것인지에 대해 정작 본인은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해보았을까? 한국인이 미국에 와서 그들 문화를 이해하려고 술을 자제하는 그 노력의 자세가 오히려 그들에게는 더 신뢰와 친구 관계를 돈독히 쌓는 좋은 모습이 아닐까?

한국에서 미국으로 오는 많은 유학생이 거의 대부분 술과 친해져 있어서 폭탄주를 마시거나 술을 강요당해서 마시거나 2, 3차까지 가서 술을 쓰러질 때까지 마시는 한국문화를 그대로 미국에까지 와서 미국인들에게 자랑이나 하듯 보여주고 때로는 그들에게 전파하기까지 한다. 술을 더 잘 마시는 것이 자랑은 아니다. 그것이 남자다움도 아니다. 그것이 사회생활을 잘한다는 상징도 아니다. 술을 사회생활하는 도구로, 혹은 밑바닥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다 표출하려는 도구로 혹은 관계를 형성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모습은 정말 비겁하고 불건전한 방법이 아닐까? 이런 방법을 쓰는 이들은 정신적으로 이미 약하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인간관계가 얼마나 오래갈까 싶다.

한국은 여자건 남자건 간에 가릴 것 없이 술을 너무나 잘 마신다. 미국인들은 이미 한국인을 말할 때 술 잘마시는 나라 사람들이란 말을 서슴지 않고 한다. 마치 모든 한국인이 술을 너무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는 것인데, 사실 우리나라는 술을 마시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정착돼 있어서 술을 마시지 못하는 사람이 오히려 바보 병신 소리를 듣고, 사회생활 똑바로 못한다는 소리를 선배에게 또는 직장 상사에게 한 번쯤은 들을 정도니 미국인들이 우리를 이렇게 바라보는 데는 우리가 반성하고 고쳐가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의 원조 술 문화는 점잖게 적당히 즐기는 좋은 문화였다. 몸과 정신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마시는 문화가 아니었는데 어쩌다가 이런 저질 술 문화가 자리가 잡힌 건지 참으로 안타깝기까지 하다. 필자가 대학 졸업반이었을 때 회사 입사 시험을 볼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S사의 마지막 인터뷰 질문이 “주량은 얼마나 되는가?”였다. 이 황당한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까 생각하다가 솔직하게 술을 전혀 못한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나서 드는 생각이 술을 못 마시면 이 회사에서는 정말 살아남기 힘들겠다는 것이어서 처음부터 불안해해야 했다. 다른 S사와 인터뷰를 할 때는 바보 같은 질문이긴 했지만, 먼저 용기를 내어 “이 회사에서 일하려면 꼭 술을 마실 줄 알아야 하나요?” 하고 질문했고, 술을 못 마셔도 된다는 확답을 듣고 나서야 그 회사 입사 결정을 내렸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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