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초나라가 망할 위기에 처하자 신포서는 진(秦)나라 애공을 찾아갔다. 그는 진왕에게 초나라 구원을 간곡히 요청했으나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정당에 선 채로 큰 소리로 울었다. 밤낮으로 7일 동안 그의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그 울음소리가 애공의 마음을 움직였다.

“초나라가 무도하기는 해도 이런 어진 신하가 있는 한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다.” 애공은 곧 병거 500대를 초나라 구원병으로 보냈다. 6월에 진나라군은 직 땅에서 오나라 군대를 쳐부수었다.

합려 10년 봄에 오왕은 나라의 도읍을 비워둔 채 아직도 초나라 수도 영에 머물고 있었다. 그 틈을 타서 오나라를 쳐들어 온 것은 월나라였다. 그러자 합려는 군사 일부를 수도로 귀국시켰다. 바로 그때 초나라의 원군인 진나라 군대가 초나라에 들어온 것이었다. 그 원인으로 오나라 군대는 패배를 맛보았다.

합려의 아우 부개는 왕이 계속해서 전쟁에서 패하고 더구나 초나라에서 물러가려는 기색이 엿보이자 자신의 임무를 저버리고 오나라로 먼저 돌아가 오왕이라 자처했다. 이 소식을 들은 합려는 부득이 초나라 영에서 철수하여 부개의 군대를 맹공격했다.

싸움에서 패한 부개는 초나라로 도망쳤다. 그 혼란으로 초나라 소왕은 9개월 만에 수도인 영에 돌아올 수 있었다. 소왕은 도망쳐온 부개에게 당계 땅을 다스리게 했다. 그가 바로 당계(堂谿)씨의 원조다.

그 이듬해에 합려는 태자인 부차에게 초나라를 공격하여 국토의 반을 점령했다. 겁을 집어 먹은 초나라는 수도를 영에서 약으로 옮겼다. 합려 15년에 노나라에서 공자(孔子)가 재상이 되었다. 19년 여름에 합려의 오나라 군사들이 월나라로 쳐들어갔다. 월나라 왕 구천은 그들을 추리에서 맞아 무찌르게 된다.

월왕 구천은 성왕인 우(禹)의 후손이다. 시조는 재소강(하나라를 중흥시킨 조상)의 서자로 회계 땅을 다스리라는 명을 받고 종묘의 제사를 받들었다. 몸에 먹으로 문신을 들이고 머리를 짧게 깎는 야릇한 풍습을 갖고 황무지를 개척해서 부락을 만들었다.

그로부터 20여 대를 거쳐 월나라는 윤상 대에 이르러서 오왕 합려와 서로 대립하게 되었다. 맞닿아 있는 오나라와 월나라는 세월이 흐를수록 서로 앙숙처럼 싸웠다. 윤상이 죽자 그의 아들 구천이 왕위에 올랐다. 그는 스스로 월나라 왕임을 자처했다.

월왕 구천 원년에 윤상의 죽음을 노려 오왕 합려가 월나라를 공격하게 된다. 구천은 군사를 이끌고 추리에서 그때 그들을 맞아 무찌르게 된 것이다. 그 전쟁에서 구천은 결사대를 셋으로 나누어 적의 간담을 서늘케 하는 기발한 전술을 폈었다.

우선 제1대가 오군의 진영에 접근하여 큰소리로 함성을 지르면서 일제히 스스로의 목을 베었다. 이어서 제2대, 제3대도 똑 같은 방법으로 적군 앞에서 자신들의 목을 스스로 베고 자결을 했다. 적군이 어리둥절하여 겁을 집어 먹고 우왕좌왕하고 있는 사이에 월나라 군대는 일제히 노도와 같이 함성을 지르며 총공격을 했다. 오나라 군사들은 대패하였고 오왕 합려조차도 화살에 부상을 입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