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천고등학교 박인준 교장. ⓒ천지일보(뉴스천지)

부산 동천고등학교 박인준 교장 인터뷰

[천지일보=이길상 기자]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동에 가면 푸르고 맑은 하늘과 맞닿은 한 폭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한 고등학교가 자리 잡고 있다. 이 학교는 동학·천도교 사상과 3.1운동 정신을 계승하고 인내천 사상을 널리 심어 민족정기를 바로 잡을 인재를 육성한다는 취지로 1980년 개교했다. 그래서 학교의 이름을 동학(東學)의 ‘동(東)’과 천도교(天道敎)의 ‘천(天)’을 따서 동천(東天)이라고 지었다.

동천고등학교는 그리 긴 역사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부산 사학의 명문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는 동학·천도교 사상을 바탕으로 인간 존중의 생활 자세를 확립해 21C의 지식기반 사회를 주도해 나갈 건강하고 실력 있는 민주시민을 육성한다는 교육목표를 실천하려는 교직원들의 노력의 결실이다.

동천고는 성(誠)·경(敬)·신(信) 즉 정성·공경·믿음이라는 교훈으로 도덕적이고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인간교육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교직원과 학생들에게 최고의 교육환경을 만들어 주려고 애쓰고 있는 박인준 교장선생님을 만났다.

▲ 맑은 하늘과 맞닿은 동천고등학교. ⓒ천지일보(뉴스천지)

◆동천고, 천도교 정신 실천
동천고 안광성 초대 이사장의 부친 고(故) 안찬복(1879~1945) 선생은 천도교의 종법사이자 독립운동가다.
독실한 천도교인이었던 안찬복 선생은 평양에서 독립운동 중 일본 경찰에게 붙잡혀 투옥생활을 하다 감옥에서 순국했다. 6.25 때 월남한 고(故)안광성 이사장은 사업이 번창해 재산이 늘어나자 그의 부친 안찬복 선생의 유지를 받들어 육영사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그는 동천고를 설립했다.

박 교장은 동학‧천도교와 민족정신을 선양하는 데 힘을 쏟았던 안 이사장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안 이사장님이 늘 하시던 말씀이 ‘학생을 늘 한울님처럼 대하라’였다. 체벌을 해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해월신사(최시형)께서도 ‘아이를 때리지 말라, 아이를 때리는 것은 한울님을 때리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며 동천고는 천도교 정신으로 사람을 섬기는 교육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동천고는 종학실을 통해 천도교 교육의 핵심적인 부분을 다루고 있다고 박 교장은 말한다. 천도교 정신으로 학교 교육을 해나가는 구체적인 아이디어와 방법을 종학실을 통해 만들고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동천고 성화실(기도실)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 희망하는 학생들이 모여 천도교 의식을 치른다. 장소는 비좁지만 학생들이 많이 모인다고 한다. 이 시간이 학생들에게 유익한 시간이 된다고 박 교장은 얘기한다. 그는 “요즘 청소년 비행 문제가 많이 일어나는데 비해 천도교 의식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선량하고 목표가 뚜렷하며 생각이 깊다. 또한 학교생활에서도 모범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종학실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에게 좋은 것을 많이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다.

▲ 동천고등학교의 교훈이 적혀 있는 돌.ⓒ천지일보(뉴스천지)

◆“종교 초월하는 게 민족”

동천고는 천도교 이념으로 설립된 학교지만 교사 채용 시 교사의 종교를 따지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투명하고 객관적인 방법을 통해 실력 있는 선생님을 뽑는다는 것이다. 박 교장은 “안 이사장님께서 ‘학교가 바로 서려면 교사 채용에 비리가 없어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다”며 “동천고는 교사 채용에 어떠한 비리가 없으며 공정한 절차에 의해 교사를 채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동천고 교사들은 종교가 달라도 학교의 설립취지를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학교 내 종교 갈등이나 차별적인 요소는 없다고 한다. 박 교장은 “천도교가 우리나라 근현대사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는 사실을 선생님들이 동의하고 있다”며 “종교를 초월할 수 있는 게 ‘민족’이라고 생각한다. 천도교는 종교적인 색채보다는 늘 ‘민족’을 생각하기 때문에 선생님들이 천도교를 귀하게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에서 천도교 정신으로 운영하는 고등학교는 ‘동천고’가 유일하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들이 동천고에 근무하는 것을 귀하고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고 박 교장은 말한다. 그래서 선생님들은 자신을 선각자로 생각하고 있으며 자부심도 강하다는 것이다. 박 교장은 “그러한 자부심이 교육의 열기로 이어지고 부산 사학의 명문이라는 칭송을 얻게 된 이유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동천고는 부산에서 비교적 큰 규모의 학교에 속하기 때문에 졸업생을 많이 배출했다. 박 교장은 “동천고 졸업생들은 대학 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으며 사회 각 분야에서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 이유는 ‘민족과 국가를 생각하자’는 교육의 영향이라고 생각한다. 졸업생들이 민족정신을 배워 나갔기 때문에 자신감과 자존감이 강하다”며 “졸업생들에게 ‘모교와 후배를 생각하기에 앞서 국가와 민족을 먼저 생각하라’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종교 강요하지 않는 학교
박 교장에게 우리나라 교육제도의 문제점과 교육의 발전방안에 대해 물었다. 그는 입시제도를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점수 위주의 선발제도를 고쳐야한다. 성적과 인성 문제의 접점을 찾아야 한다. 또한 교육이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분위기를 만들어 줘야 한다. 사회적으로 성적 좋은 사람들을 우대할 것이 아니라 심성이 좋고 도덕적인 사람을 우대하는 분위가 형성돼야 국가도 성적위주의 교육의 틀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는 “다른 학교는 지식 일변도로 가는데 우리 학교는 심성적인 것을 많이 보충해주기 때문에 경쟁력도 있고 사회에 나가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학교에 재량권을 많이 부여해야 하는 교육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박 교장은 덧붙였다.

종립학교의 정신을 살리려면 다양한 종교인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고 박 교장은 말한다. 그는 “교사를 채용할 때 종교를 고려해서는 안된다. 학교는 교육기관이지 종교기관은 아니다. 교사나 학생들에게 절대로 종교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자기 종교에 대해서만 가르칠 것이 아니라 타 종교에 대한 부분도 가르쳐 학생들에게 종교 선택의 폭을 넓혀주고 자율성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교장은 교육자이자 종교인이다. 매우 어려운 자리일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종교와 교육에 있어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분명히 알고 있는 것 같다. 수학과 영어 점수로 사람을 평가하는 세상이 아닌 인성이 갖춰진 사람이 존경받을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박 교장은 기도하고 있다. 박 교장의 바람대로 우리 자녀들이 맑고 깨끗한 심성을 갖고 살아갈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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