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통춤과 사랑에 빠진 ‘춤꾼’ 재일교포 출신

한국전통춤과 사랑에 빠진 ‘춤꾼’재일교포 출신 성애순 씨. 성 씨는 22일 홍대 포스트극장에서 자신의 세 번째 솔로 춤공연 ‘달궁’을 앞두고 있다. 사진은 장구춤 공연을 선보이고 있는 모습 ⓒ천지일보(뉴스천지)

전통춤의 뿌리 찾고자 한국 국적 취득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이수자
3번째 솔로 춤공연 ‘달궁’ 22일 개막

[천지일보=김현진 기자] “한국의 전통춤은 한(恨)의 감정까지 호흡에 나타나고, 내면의 깊은 정서가 묻어나는 자유로운 몸동작이 자연의 이치를 따르듯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흥을 느끼게 해요.”

한국전통춤에 푹 빠진 성애순 씨는 오는 22일 홍대 포스트극장에서 자신의 세 번째 솔로 춤공연 ‘달궁’을 앞두고 꼭두새벽까지 연습에 한창이다. 연습실에서 만난 성 씨는 몸이 제법 힘들 법한데, 자신이 표현하는 한국전통춤으로 관객들과 호흡한다는 생각에 그의 표정에는 즐거움이 가득하다.

재일교포 3세인 성 씨는 한국전통춤을 ‘진짜 전통춤’이라 여기고 그 뿌리를 찾기 위해 이곳으로 건너와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는 특이한 이력이 눈에 띈다.

일제시대 때 진주에서 살던 조부모가 일본으로 터전을 옮겨오면서 교토시에서 태어난 성 씨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한국도 북한도 아닌 ‘조선’이라는 존재하지도 않는 국적을 갖고 살아가야하는 운명을 안게 됐다. 9살 때부터 조총련계인 강휘선 조선무용소에 들어가 북한의 전통춤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그는 춤이 인생의 전부가 되는 삶을 살게 된다.

이런 그가 한국전통춤과 사랑에 빠지는 계기가 된 것은 20대인 1995년. 춤을 배우면서도 무언가 채울 수 없는 목마름을 느끼며 항상 고민한 그가 한국 전통무용인들의 춤을 보고 큰 충격을 받게 되면서부터다.

당시 본 춤이 승무였는데, 그는 “장단과 호흡은 전혀 낯설지가 않았는데, 알 수 없는 움직임과 멈추지 않는 에너지, 관객을 의식하지 않는 시선 등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전율을 느꼈다”며 이를 배워보기로 했다는 것.

비디오를 보면서 독학으로 해본 결과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정서와 문화를 알아야 몸짓이 나온다는 것을 깨닫고는 한국에 직접 가서 배우기로 결심하게 된다. 그러나 시작부터 과정이 쉽지 않았다.

오로지 한국의 전통춤을 배워야겠단 일념으로 임시여권을 받아 왔지만, 조선이란 국적으로 인해 제약이 있었다. 결국 국적 변경을 위해 출생신고부터 다시 해야 하는 고충을 겪었고 무려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린 끝에 한국 국적을 얻게 된다.

오직 춤밖에 몰랐던 성 씨는 2002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무용과에 입학해 그토록 원하던 한국전통춤을 정식으로 배우기 시작했고, 치열하게 춤과 학업에 몰두하면서 3번의 전액장학금을 포함해 매학기 장학금을 받았을 정도로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 그에겐 한국전통춤을 배우고 할 수 있다는 자체가 행복이었다.

하지만 성 씨는 자신의 춤에서 나오는 분위기가 북한과 일본풍이 섞였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으면서 힘든 시간도 함께 보내야만 했다.

“이는 아직까지도 듣고 있고, 풀리지 않는 한계에요. 자라온 환경은 어쩔 수 없고 그대로 몸짓에 나타나니 당연한 거죠. 몸짓이라는 게 솔직하니까요”라며 체념한 듯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제는 너무 전통적인 것을 닮으려고 고집하기보다 나만의 호흡을 의식하려고 한다”며 마음을 비우니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즐겁다고 한다. 그래서 그가 이번에 선보이는 공연도 전통춤을 베이스로 하는 창착춤이 포함돼 있다.

▲ 연습 중인 모습 ⓒ천지일보(뉴스천지)

지금껏 북한, 일본, 한국의 전통춤을 모두 접해 본 그가 이들 3개국의 전통춤에 대해 느끼는 차이가 무엇일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에 말에 따르면 북한춤은 발레와 같은 느낌으로 추기에 시원스럽다. 관객들을 순식간에 사로잡을 수는 있지만 수명이 짧고 신체적 기능이 좋은 젊은 사람 위주라는 점이 특징이다.

일본춤은 이성적이고 절제하면서 형식미를 기본으로 한다. 자기감정을 솔직히 드러내면 천박하다 해 철저하게 절제하면서 계획적이고 준비된 동작만을 한다.

반면 한국춤은 정해진 동작일지라도 자유롭고 즉흥적인 표현을 하기 때문에 같은 공연이라도 매번 느낌이나 동작들이 다르니 늘 신명난다는 것.

한국전통춤의 이러한 매력 때문에 성 씨가 좋아하게 된 것이다. 그는 내년 11월 일본에서 처음으로 솔로 공연을 계획하고 있다. 재일교포라는 태생적 한계에도 불구 자신이 느끼고 익혀 사랑하게 된 한국전통춤을 일본인들에도 직접 알려주기 위함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한민족 내면의 깊은 정서를 물 흐르듯이 표현해내기 위해선 평생 수행해야 할 과제인 것 같다”며 목숨이 다할 때까지 한국전통춤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갈 것이라 말했다.

앞으로 그만의 한국전통춤으로 한일문화 교류와 나아가 남북문화 교류에 있어 가교 역할을 할 그의 춤사위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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