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익 정치평론가
한미 FTA의 국회인준을 둘러싸고 여야의 힘겨루기가 막장을 향해 달리고 있다. 한나라당은 FTA 재협상의 결과를 받아들이자는 입장이고, 민주당을 비롯한 민노당과 진보시민세력은 절대불가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 내 온건파 의원들의 타협안이 대두되면서 야권은 국회인준 절대불가의 입장이 도전받고 있는 상황이다.

한나라당 내에서도 온건파들은 무리한 국회통과 대신에 타협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어 보인다. 한미 FTA는 지난 노무현 정권 때 한나라당의 지원을 받아서 국회비준을 통과시킬 수 있었으나 미국의 태도가 불분명하여 미국의 입장이 정리되면 차후에 우리 국회에서 통과시키겠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그러나 미국 측의 재협상 요구에 물러서지 않겠다고 다짐한 정부는 재협상 요구에 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자동차산업을 포함한 기계분야는 FTA 체결에 만족했던 분위기였으며, 농업 등 1차산업에 종사하는 국민들은 한미 FTA를 극력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재협상의 뇌관은 미국 자동차산업의 막대한 피해를 느끼는 미국 자동차 노조였음이 드러났다. 미국의 자동차산업이 불경기에 접어들면서 자동차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요구에 미국 정부는 굽힐 수밖에 없었다. 재협상 결과로 우리는 자동차분야에서 미국의 요구사항을 일부 수용했고 의약분야와 돼지고기 등의 육류분야에서 일부 양보를 얻어냈다.

한미 FTA의 쟁점은 ISD(투자자국가소송제도)라고 보인다. ISD가 지금에 와서 문제가 된 이유는 야당 측의 주장에 의하면 “당시에는 위험한지 몰랐다(민주당 정동영 최고위원)” “자동차 협상 등에서 많은 이익을 얻으니깐 ISD는 들어 있어도 괜찮지 않겠냐고 생각해 넘어간 것(민주당 김진표 원내대표)”이라고 어설픈 변명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가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ISD를 인식하지 못하고 FTA를 추진한 것은 아니었다. 노무현 정권 당시 협상이 체결된 2007년 4월 2일 전후 이 ISD 문제로 당시 언론에서 비판을 한 바 있다. 이에 노무현 정부는 한미 FTA 협정이 체결되기 약 2개월 전인 2007년 2월 7일자 국정브리핑을 통해 “투자자-국가 제소권, FTA 깰 독소조항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때의 반론을 지금 이명박 정부가 그대로 이어받아 같은 반론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당시 비서실장은 “참여정부 때 추진되고 타결됐지만 지금 현 상태에서 비준하는 것은 결단코 반대한다”고 말했다. 문 이사장은 “참여정부 때 타결했던 그 상황과 너무나 많이 달라졌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재협상을 통한 추가 양보가 너무 컸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확인해 본 결과에 의하면 재협상을 통한 추가 양보가 컸다는 것은 자동차산업에 관한 부분적인 양보에 불과하다. 자동차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한미 FTA의 재협상 결과에 대해서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미 FTA의 재협상 결과에 대한 손익계산서를 놓고 볼 때 우리가 일방적으로 당했다거나 밀렸다고는 보지 않는다. 어차피 한미 FTA가 국회를 통과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있을 것이라고 예견은 했지만 ISD가 발목을 잡을 줄은 예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야권의 주장은 재재협상을 요구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정치공세일 뿐이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 미국도 정치상황에 따라서 재협상을 시도했고 그것이 자동차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불만을 누그러뜨리는 계기가 된 것처럼 표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야당의 투쟁과 반대가 필요했을 것이다. 미국의 정권교체가 한미 FTA의 영향이 있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한국에서도 한미 FTA가 정권교체의 영향을 기대하는 야권의 전략이 숨어 있을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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