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흙과 먹으로만 그림을 그리는 윤현식 화가의 ‘생명의 어울림-흙 30호’ 작품이다. 한지에 수묵채색. 그는 작품에 사인을 하지 않고 낙관만 찍는 것이 특징이다. (사진제공: 명품갤러리)

독특한 재료·표현기법 개발… 불규칙함 속 자유로움 표현

[천지일보=박선혜 기자] 모든 자연과 대화하고 생명이 있는 것을 아낄 줄 알았던 시인 윤동주. 그 정신을 화폭 속에 담은 한 남자가 있으니, 흙과 먹으로만 그림을 그리는 화가 윤현식이다.

지난 12일 서울시 종로구 청운동 윤동주문학관에 마련된 ‘생명의 어울림’ 전시에서 흙빛 양복을 차려입고, 전시를 찾은 손님들에게 일일이 작품 설명에 여념이 없는 윤현식 화가를 만났다.

이날 전시 개관을 위해 고향 목포에서 부지런히 상경한 탓에 분주할 법도 한데 차분히 자신의 이름을 내건 작품 하나하나를 설명해 갔다.

그가 이렇게 자부심을 가지고 작품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자신만의 독특한 표현 기법으로 흙과 먹만을 사용해 ‘생명의 어울림’을 화폭에 담았기 때문이었으리라.

▲ ‘생명의 어울림’ 윤현식 화가 ⓒ천지일보(뉴스천지)
― 의미 있는 장소에서 ‘생명의 어울림’이라는 주제로 작품을 전시했다.

윤동주 선생은 생전 자유로움과 생명의식을 항상 생각해 온 문학 시인이었다. 생명의식이라는 것은 한마디로 어울림이다. 모든 우주 속에는 생명이 있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 즉 어울림, 사람과 다른 생명체, 즉 자연 세계와의 어우러짐 등 이 모든 것이 ‘생명의 어울림’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그림 속을 들여다봤을 때 보이는 것이다.

― 특별한 표현기법으로 작품 창작 활동을 펼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어려서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장남으로서 가장 역할을 해왔다. 동생들이 훌쩍 커버리자 어느 순간 외로움이 찾아 왔다. 누구나 어느 시점이 되면 외로움을 느끼는 때가 온다. 한 곳에 너무 매달리다보면 언젠가 매달렸던 끈이 삵을 수 있기 마련이다. 그때가 그림을 그리게 된 동기라고 생각이 든다.

표현은 15년간의 연구 결과 나만의 기법으로 개발한 것이다. 흙을 소재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흙을 재료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드물다.

스승인 박항환 선생은 항상 “따라서 그리려 하지 말고, 창조해 나만의 그림을 그리라”고 하셨다. 여러 수집을 통해 다양한 그림을 접하면서 나만의 그림을 창조해 나갔다.

흙은 거칠다. 반면 다양한 색을 뽑아 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거친 흙은 물과 희석해 그물망에 거르면 흙물 바닥에 남게 되는 앙금이 재료가 된다. 이 과정은 시간깨나 걸린다.

내 작품에는 규칙이 없다. 불규칙 속에서 자유로움을 표현하고, 주제인 생명의 어울림을 담아내는 것이다.

― 그림 활동에 있어서 특별히 영향을 받은 작가가 있는가.

김환기 선생이 예전에 피카소를 보고 ‘이 시대의 다재다능하고 타고난 예술가’라 말한 적이 있다. 그는 외국을 돌아다니다 보니 낙서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으며, (나에게 한 말은 아니지만) 낙서에서 한없는 사고가 만들어진다고 말한 적이 있다. 김환기 선생은 건질 것이 많은 낙서를 해보라고 했었다. 그 말에 공감한다. 낙서는 끝이 없으니까.

또한 현대미술로 유명한 장 미셀 바스키아(미국, 흑인화가)와 장 뒤뷔페(프랑스, 화가․조각가)에게서도 영향을 받았다. 비구상적(추상적)인 것을 좋아한다. ‘고전 속에서 새로움을 발견하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 고전 속의 현대 모더니즘을 표현한다.

사람들이 작품을 보고 ‘오래된 벽화 같다’고 말을 하는데 그 느낌이 맞다. 벽화를 벽화로만 그리면 재현이지만 벽화같이 보이는 것을 창작한 것이 고전 속의 현대 모더니즘을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또 작품을 보는 관람객들이 그렇게 느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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