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4회 시의 날’ 행사에서 서울비보이클럽이 ‘시여 영원하라’는 제목으로 공연을 선보였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시인·독자 간 소통의 장… 사전 홍보의 아쉬움도

[천지일보=김지윤 기자] 1일 시(詩)를 사랑하는 이들의 발걸음이 운현궁으로 향했다. 가을이 한창인데도 포근한 날씨 덕에 궁의 야외무대에 모인 사람들의 옷차림이 예년보다 가볍다. 이들은 서로 안부를 물으며 마련된 하얀색 플라스틱 의자에 앉기 시작했다.

이날은 바로 ‘제24회 시의 날’이다. 올해 행사는 11월 1일을 ‘시의 날’로 제정한 뒤 처음으로 야외에서 이뤄졌다. 지난해까지는 시인들끼리 모여 기념식을 진행했으나 올해부터 ‘시인과 독자의 소통’을 내세워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계획한 것이다.

이건청 (사)한국시인협회장을 비롯, 유승우 (사)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장, 김남조·문덕수·허영자 등 원로 시인들도 함께했다.

▲ 1일 제24회 시의 날 행사장(서울 종로구 운현궁)에서 허영자 시인이 노란 손수건에 사인을 하고 있다.ⓒ천지일보(뉴스천지)
사람들은 운현궁 입구에서 받은 주황빛 표지로 싸인 프로그램과 노란색 손수건을 챙겼다. 프로그램엔 식순과 시 8편이 실려 있다. 작품들은 가을, 별과 같이 자연부터 시어머니,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다니는 312번 신설동행 버스 등 다양한 소재로 눈과 귀를 즐겁게 했다.

행사에 온전히 참여한 수는 40명 남짓했다. 하지만 운현궁을 오가는 관람객은 울려 퍼지는 시 낭독에 잠시 발걸음을 멈춰 그 의미를 음미했다.

운현궁에 들렀다가 우연히 자리에 행사에 참석한 김명희(33, 경기도 광주) 씨는 “시는 늘 어려운 존재였다. 나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시를 잘 보지 않는 편”이라며 “시인 8명이 각자 자작시를 직접 낭독한 것을 들으니 시가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오감으로 느끼는 경험을 했다. 앞으로 시를 자주 접할 것”이라고 말했다.

▲ 감태준 시인이 노란 손수건에 사인을 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관객의 눈을 사로잡은 무대는 ‘시를 위한 퍼포먼스’였다. 이상(김해경, 1910~1937) 시인의 ‘오감도’ 중 시제1호와 시제15호를 주제로 낭독과 함께 퍼포먼스가 이뤄졌다. 검은색 풍선 다발을 손에 쥐고 있는 남자, 끈으로 얼굴을 칭칭 감은 남자, 그리고 눈이 그려진 큰 현수막에 빨간 털실로 바느질하는 여자. 멀찍이 떨어져 이상 시인의 ‘오감도’를 낭독하는 여자. 관객은 숨을 죽이고 무대를 바라볼 뿐이다. 난해하기로 소문난 시 ‘오감도’를 어떻게 퍼포먼스로 표현할지 궁금한 눈치다.

정훈(47, 서울 강남구 개포동) 씨는 “이상 시인의 ‘오감도’는 어렵다. 하지만 무대를 보니 이미지화할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시낭송이 끝난 후 서울비보이클럽이 ‘시여 영원하라’는 제목으로 공연을 선보였다. 행사에 참석한 자들이 대부분 어르신이기 때문에 열광적인 호응은 아니었으나 그들의 무대에 아낌없이 박수를 보냈다.

모든 순서가 끝난 후 시인과 독자가 함께하는 ‘삼삼오오 대화 한마당’이 펼쳐졌다. 사람들은 입장할 때 받은 노란 손수건에 시인의 사인을 받기에 여념 없다. 특히 허영자 시인에게 많은 사람이 모였다. 그는 단순 사인만 하지 않고 ‘어여쁨이야 어찌 꽃뿐이랴’ 등 여러 개의 자작시 제목 또박또박 적어 내려갔다.

김수형(35, 서울 중랑구 묵동) 씨는 “야외에서 시를 음미하고 감수성을 자극할 수 있어 좋았다”며 “다만 유익한 행사인 만큼 사전 홍보를 철저히 해서 많은 사람이 함께했으면 한다”고 아쉬워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