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편에 이어서◆기운생동 소나무, 만사형통을 기원하다“소나무, 늘 푸른 게 청청하니 좋잖아요?” 소나무에 대한 안 작가의 첫 느낌은 그랬다. 사시사철 푸른 것이 우리 민족의 절개를 닮았고, 가지의 휨은 우리 민족의 질곡을 담아낸 듯했다. 처음에는 소나무의 강인한 겉모습을 보고 반했다면, 이후 작가는 소나무가 가진 내면의 힘, 우리 민족과의 떼려야 뗄 수 없는 상징성에 푹 빠지고 말았다.“소나무를 엄청 사랑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소나무의 겉모습이 이루어내는 조형성에 빠졌다가 그릴수록 그 안에 내재된 깊은 의미를 되새기게 됐지요.
청도 곳곳에는 해학적인 산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비슬산을 뿌리로 두고 동편에 자리한 ‘풍산(노인봉, 장군봉)’의 모습이 제일 청도와 어울려 흥을 돋운다.풍산은 풍수지리적으로는 ‘동쪽’ ‘바람’을 상징하는 이름을 지닌 산이다. 이 산을 동쪽이라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이 되는 산은 바로 비슬산이다. 즉 비슬산 없이는 의미가 없다 할 정도로 이름에서부터 비슬산과 밀접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그 모양새는 마치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이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고 있는 모습이다. 사연은 이렇다.전쟁에 출격했다가 비슬산의 정기를 받아 승리를
쌍사자석등을 지금까지 제자리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은 가회면 주민들 덕이다. 1933년 주민들은 석등을 면사무소에 숨겼다.일제강점기가 한창인 시절 곳곳에 있는 우리 유산을 가져가던 일본인들이 이 석등 역시 벼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 눈치챈 주민들은 먼저 석등을 숨겨놓고 1959년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사자 두 마리가 서 있는 곳은 참 특이하다. 영암사지에서도 높은 곳에 위치한 곳인데 무지개계단(虹霓段)을 조심스레 올라야 석탑을 바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발딛는 계단의 너비를 보니 크기를 보나 양옆 무지개계단은 장식용인 듯하다.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