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강진에서 만난 다산 정약용◆이치를 좇는 일, 선비와 스님의 길 다를 바 없었다‘사람들은 나를 역병에 걸린 환자를 보듯 피했다.’강진 사람들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부모도, 나라 임금도 몰라보는 천주학쟁이’ 혐의를 받은 죄인에게 따뜻한 눈길을 기대할 수 있었으랴. 특히나 그를 밀착 감시하기 위해 강진현감으로 노론벽파의 골수 이안묵이 부임했을 정도인데 말이다.하지만 죽으란 법은 없는 것. 강진읍 동문 앞에서 음식과 술을 팔던 주막 ‘동문매반가’의 주모 할머니가 좁은 골방 한 자락을 내주었다. 이곳이 낯설고 물 설은 강진에서 정약용
더 이상 국경의 의미가 없어진 오늘날. 길을 걷다 보면 피부색이 다른 외국인들을 쉽게 만나게 된다. 이제 더 이상 신기하거나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그중에서도 한국에 정착해서 매일 생활하는 외국인들은 한국 문화를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그들이 생활하면서 느끼는 긍정적, 부정적, 충돌하는 부분은 무엇일까. 한국에는 러시아·프랑스·영국·인도·중국·일본·필리핀·미국 등 다양한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다. 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의 문화를 들어보고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3명의 중국인에게 한국 문화에 대해 물었다.
▶ [운주사④] 편에 이어서만약 운주사의 석탑들이 밤하늘의 별자리를 땅에 구현해 놓은 하나의 천문도였다는 주장이 맞아떨어졌다면 이는 정말 우리나라의 역사, 문화, 종교사에 경종을 울릴만한 대 발견이었을 것이다. 예부터 하늘을 이 지상으로 항상 가까이 내리려고했던 우리 선조들의 민족성이 또 한 번 증명되는 일이 되니까 말이다.그런데 우리 선조들은 왜 그토록 하늘에 관심이 많았을까. ‘하늘의 별따기’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하늘 높은 줄 모른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찐다’ ‘하늘이
▶ [운주사③] 편에 이어서“옳고 그름보다 문화현상을 이해하는 맥락이 중요”운주사의 석탑들이 밤하늘의 별자리를 땅에 구현해놓은 하나의 천문도라는 주장이 제기되어 일대 파장을 몰고 온 적이 있었다. 1999년 4월에 방영된 KBS 역사스페셜 ‘새롭게 밝혀지는 운주사 천불천탑의 비밀’에서 운주사의 탑 배치가 일등성 별의 배치와 닮아있다는 주장을 펼쳤던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이 방송을 통해 알려진 후 운주사를 찾는 주말 관광객은 2천여 명에 달했고, 광주 전남 언론들이 앞 다투어 재차 보도할 만큼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하지만 같은 해 7
▶ [운주사①] 편에 이어서운주사는 황석영의 소설 ‘장길산’에서 길산이 새 세상을 꿈꾸며 천불천탑을 세우려다 실패한 장소로 묘사되며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그 후에도 수많은 소설과 시에서 새 세상의 염원을 간직한 장소로 그려왔다. 실제 1980년 5월 광주민주항쟁 직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운주사에서 울분을 삭이기도 했다. 운주사의 돌부처들은 불평등하고 좌절된 현실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말없이 위로해주었다.역사문헌에서는 운주사를 어떻게 기록하고 있을까. 조선 중종 25년(1530년)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천불산은 능성현
음력 4월 8일(양력 5월 17일), 석가탄신일 2557돌을 맞아 거리 곳곳에 형형색색의 연등이 걸려 있다. 다종교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불교는 전통문화에 고스란히 담겼다. 하나의 종교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문화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21세기 불교가 어떻게 대중과 호흡하는지 그 모습을 살펴보자.이제 더는 템플스테이가 낯설지 않다. 푸른 눈의 서양인이 공양드리는 모습도 새롭지 않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열린 해에 생긴 템플스테이가 널리 알려지면서, 사찰 체험문화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다른 종교에서 신앙하는 이들에게도 템플스
◆이 시대의 멘토가 되다“옛날에는 강연을 정말 많이 했어요. 갓피플 조한상 대표가 저와 이야기를 몇 번 나누더니 젊은이들에게 멘토가 되어달라는 거예요. 그래서 3시간 씩 5일을 강의했어요. 50명 정도 되는 청년들을 매끼 밥을 사주면서 말이죠. 1박 2일은 MT를 갔어요. 그곳에서 아이들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게 됐죠. 이 과정에서 나온 게 라는 책이에요. 그 책으로 제가 기독교 쪽에서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어요.”목사에서 카페 마담이 된 그의 독특한 이력과 기독교 정신을 근간으로 세워진 카페 민들
◆한민족의 문화는 머리에서부터“우리 한민족(韓民族)은 머리에서부터 모든 문화가 이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여. 일생을 살아가면서 공식적으로 바뀌는 머리가 세 번이야. 미혼일 때 댕기머리, 혼인하면 상투 틀고 쪽머리를 하잖아. 저승 갈 때 또 머리가 바뀌어. 염할 때 머리를 풀잖아. 그렇게 저승 가는 머리가 따로 있다는 거지.”이 명인은 한민족에게서 두발문화를 빼고 나면 다른 문화가 없다며, 머리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일제가 우리 민족을 일본화하려고 애썼지만 정신까지는 잘 안 됐잖아. 그래서 가만히 보니까 한국은 ‘상투만 자르면
모산재 무지개터에 이어 영암사지 역시 휑하다. 물론 겉으로 볼 때만 그럴 뿐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둘러본다면 많은 것이 마음에 담긴다. 부처의 나라로 인도한다는 가릉빈가, 화사석(火舍石)을 천 년간 들어 올리고 있는 사자 두 마리, 삽살개를 닮은 사자, 우두커니 서 있는 삼층석탑, 만들어진 시기는 다르지만 대웅전 격인 금당을 오래 지킨 거북이 두 마리. 찬찬히 그네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곳이 바로 영암사지다.아침 햇살을 받은 폐사지는 새롭다. 터만 덩그러니 남았을 뿐인데도, 비었기 때문에 가득 찬 느낌이
유턴금지표지판에 ‘윤회금지(NO SAMSARA)’란 글씨가 어우러져 있다. 원래 존재하는 것인 양 자리를 지키는 ‘엉뚱한’ 표지판이 실소를 자아내지만 이내 ‘윤회를 금한다’는 짧은 문자와 그림이 주는 압도적인 뜻에 ‘나’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언뜻 작가가 불자가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친(親) 불교적이다. 작가는 거의 매일 명상에 잠기고 초기경전을 열독하면서 자아성찰에 매진한다.내면에 집중하는 삶을 십수 년간 살아온 까닭인지 얼굴엔 온화한 향이 가득하다. 상대방에게도 평온한 향을 전하는 그는 끊임없이 부처의 가르침에
◆느림의 미학, 내 마음의 힐링(healing)을 찾아서‘느바기’가 그려진 곳을 따라 걸으면 그 길이 바로 국제슬로시티 전주의 또 하나의 자랑 ‘아름다운 순례길’이 된다. 전주를 맛의 고장, 예향의 도시, 전주국제영화제, 소리축제 등으로만 기억한다면 아직 전주를 다 돌아보지 못한 것이나 마찬가지다.전주는 또한 개신교, 천주교, 원불교, 불교, 민족종교의 풍부한 종교문화유산을 간직한 지역으로 이 ‘아름다운 순례길’은 바로 이러한 종교 성지를 둘러볼 수 있는 코스로 되어 있다.일행이 택한 코스는 제1코스로 한옥마을에서 송광사까지의 순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