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사진 이정은 대한민국역사문화원 원장/ 3.1운동기념사업회 회장 홍범도는 1868년 음력 8월 27일 평양 보통문(서문) 안 문열사 앞마당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홍윤식(洪允植)은 머슴, 어머니는 태어난 지 7일 만에 출산 후유증으로 사망하여 홍범도는 홀아버지 밑에서 동네 젖을 먹고 자라야 했다. 그가 태어나기 2년 전 평양에는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가 대동강을 따라 평양까지 와서 통상을 요구하며 행패를 부리다가 평양감사 박규수를 비롯한 관민의 분노를 사서 불 공격을 받고 침몰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홍범도의 생애가 나라의
안창모 경기대 교수일제강점기부터 경제개발 시대 아우르는 역사(驛舍) [천지일보=김지윤 기자] 1970~1980년대만 하더라도 자가용은 흔치 않았지만 서울역으로 모든 길이 통했다. 특히 민족의 명절인 설과 추석 연휴에 서울역의 진가를 발휘했다. 오랜만에 뵐 부모님 생각에 들뜬 사람들이 선물을 한 아름 안고 고향행 기차를 기다린다. 또한 서울역은 ‘서울드림’을 꿈꾸는 관문이기도 했다. 경제개발이 한창이던 때 성공이란 꿈을 안고 상경했던 사람들에게 서울역은 자신의 이상에 한 발짝 다가서는 장소이기도 했다. 고속철도(KTX) 신설로 어느덧
일제강점기 부산·신의주역보다 관심 덜 받아 [천지일보=김지윤 기자] 30여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상경하려면 주로 기차를 이용했다. 부푼 꿈을 안고 몸을 기차에 실은 승객들은 이른바 ‘성공’을 꿈꾸며 상경했다. 하지만 현재 서울역은 ‘꿈’보다 단순 업무나 여행으로 오가는 승객의 수가 더 많다. 이처럼 시간이 흐르면서 서울역의 위상은 예전만큼 크지 않지만 늘 승객들로 붐빈다. 현재 서울역의 모태인 경성역이 식민지 시대의 잔재물이기 때문에 곱지 않는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있지만 역은 예나지금이나 서민들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고 있다. 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