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이의준 왕릉답사가 구리 동구릉에 들어서면 왼쪽 끝자락에 조선 제18대 현종과 명성왕후 김씨의 숭릉이 있다. 1674년 현종의 숭릉이 조성됐고 1684년 명성왕후가 옆에 묻혀 쌍릉이 됐다. 현종은 1641(인조 19)년 아버지 봉림대군(훗날 효종)과 어머니 장씨(훗날 인선왕후) 사이에서 태어난 외아들이다. 아버지 효종이 청나라에 볼모로 가있을 때 심양관사에서 태어나 조선왕 유일한 외국 태생이다. 명성왕후 김씨(고종은 명성왕후 민씨)와 결혼했으며 계비나 후궁이 없는 유일한 왕이었다. 조선의 가장 정통성을 지닌 왕이 되어 15년
글·사진 이의준 왕릉답사가 구리시 동구릉의 휘릉은 조선 16대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 조씨의 능이다. 첫 왕비 인열왕후가 1635년 김포 장릉에 묻히고 인조가 1645년에 승하하니 함께 합장했다. 인조는 병자호란이 끝나고 1637년 12살의 장렬왕후 조씨(양주인 한원부원군 조창원과 완산부부인 최씨의 딸)를 계비로 맞이했다. 29세나 어린 왕후였다. 그러나 장렬왕후는 자식이 없었고 후궁 조씨에 밀려 별다른 존재감이 없었다. 인조에서 숙종까지 4대에 걸쳐 왕후, 대비와 대왕대비를 지냈고 1688(숙종 14)년에 세상을 뜨니 동구릉 휘릉에
글ㆍ사진 이의준 왕릉답사가경기도 남양주에는 왕릉 4기(광릉·홍릉·유릉·사릉)가 있다. 모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조선 왕릉이다. 그런데 또 하나의 왕의 무덤이 있으니, 바로 조선 제15대 국왕 ‘광해군 묘’다. 조선의 두 번째 폐왕 광해군의 묘는 1623년 강화도에서 죽은 부인 류씨(문성군부인)의 무덤이었다. 18년 후 광해군이 제주에서 세상을 뜨니 군부인 옆에 쌍분으로 자리했다. 광해군은 임진왜란이 일자 세자가 되어 아버지 선조와 역할을 나눠 나라를 살폈고 왕이 되어서는 개혁정치를 펼치며 명나라와 후금사이에서 중립외교로 나라
글, 사진. 허북구 나주시천연염색재단 운영국장 춥디추운 겨울에 꽃을 피우는 과일나무가 있다. 겨울철 꽃이라면 눈이 내리는 중에 핀 매화라는 설중매(雪中梅)를 떠올리기 쉬우나 매화는 이른 봄에 꽃을 피운다. 겨울에 꽃을 피우는 과일나무는 의외로 남국의 과일나무라 일컫는 비파나무이다.비파나무는 11월부터 1월까지 꽃을 피운다. 한겨울에 눈처럼 하얀 꽃을 피우는 비파나무는 장미과의 상록교목이다. 원산지는 동남아시아의 온대, 아열대 지방으로 따뜻한 곳이다. 우리나라 남부 지방 및 제주도와 중국, 일본, 필리핀 등지에서 과수 또는 정원수로
글, 사진 이정은 대한민국역사문화원 원장/ 3.1운동기념사업회 회장 해녀들의 항일운동 3.1운동 후 일제는 무단통치를 철회하고 조금 완화된 문화정치로 후퇴했다 하더라도 사찰과 통제가 완화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경찰력을 증강하여 더욱 주밀하게 감시하고 통제했다. 이 때문에 192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합법공간의 청년운동, 노동운동, 농민운동 등 대부분의 운동이 거의 존립기반을 상실했다. 이에 적색농민조합운동, 적색노동조합운동 등으로 사회주의적 조직화와 지하화를 통해 농민운동, 노동운동을 혁명화하고자 하였으나 큰 변화를 가져오지
글, 사진 이정은 대한민국역사문화원 원장/ 3.1운동기념사업회 회장 공산당 재건운동과 고경흠, 강문석 제4차 공산당 사건으로 괴멸적 타격을 받은 조선공산당은 국제공산당(코민테른)의 국제적 승인이 취소되어 해방될 때까지 당 재건 운동이 전개되었다. 당 재건운동에서 제주도 출신의 고경흠(高景欽)이 크게 활약했다. 고경흠은 1927년 일본으로 유학 가서 동경에서 이북만(李北滿) 등과 ‘제3전선사(戰線社)’를 조직하여 사회주의 잡지 을 발행했으며,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KAFF) 동경지부에서도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1929년
글, 사진 이정은 대한민국역사문화원 원장/ 3.1운동기념사업회 회장 사회주의 운동 3.1운동은 거대한 독립운동이었다. 3.1운동으로 인하여 일제의 무단통치에 질식해 가던 독립정신에 새 생명을 불어넣었다. 젊은이들은 만주로, 상해로 달려가 독립군과 임시정부 등 독립운동에 합류했다. 독립운동이 새로운 활기를 띠었고 이후 독립운동가들은 3.1운동을 기념하며 결의를 재다짐했다. 3.1운동은 일제로 하여금 무단통치를 문화정치로 전환하게 만들었다. 그 제한된 자유의 틈새에서 조선일보, 동아일보의 민족 언론이 출범했고 국어·국사 등의 국학운동과
글, 사진 이정은 대한민국역사문화원 원장/ 3.1운동기념사업회 회장 3.1운동에 앞선 법정사 항일운동 1919년 3월 1일 서울 인사동 태화관과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과 함께 독립만세시위운동이 시작되어 서울 전역과 전국에 퍼져나갔다. 민족 최고 최대의 3.1독립운동의 시작이었다. 그 5개월 12일 전에 제주도에서 법정사 항일투쟁이 일어났다. (* 법정사 항일운동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연구가 있다. 김광식, 「법정사 항일운동의 불교사적 의의」, 『한국민족운동사연구』 59, 한국민족운동사학회, 2009 김광식, 「법정사 항일운동의 근대
글, 사진 이정은 대한민국역사문화원 원장/ 3.1운동기념사업회 회장 바람이 먼저 부는 곳 지난 30년 동안 매년 평균 25.6개의 태풍이 발생했는데, 그중에서 평균 3.1개가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쳤다. 2019년에는 20개의 태풍이 발생했는데, 그중에서 우리나라에 영향을 끼친 것이 7개나 되었다. (기상청, 태풍발생현황통계, 1981-2010 및 2019) 태풍이 불어올 때마다 뉴스에 제일 먼저 제주도가 이야기된다. 제주도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태풍을 맞는다. 역사의 태풍도 비슷한 것 같다. 제주도는 목포에서 약 100㎞나 떨어
글, 사진 이정은 대한민국역사문화원 원장/ 3.1운동기념사업회 회장 제주도는 삼다도(三多島). 돌, 바람, 여자가 많다. 돌과 바람이 많아서 척박한 땅이다. 오죽 땅이 척박했으면, 여성들이 바다에서 물질하며 삶을 개척해야 했을까. 제주의 독립운동사도 돌, 바람, 여자의 키워드로 풀어볼 수 있다. 필자는 불과 14년쯤 전에 처음 제주도에 갔는데, 그때 조천의 제주돌문화공원에 가보고는 깜짝 놀랐다. 육지에서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다양한 생활용구, 건축부재들에 돌을 사용하여 온 것을 볼 수 있었다. 돌문화공원을 보고 내린 결론은 이것이
오랜 옛날, 동해 용왕이 장가를 들었다. 신부는 서해 용왕의 딸 용녀였다. 동해 용왕 부부는 금슬이 좋았지만 한 가지 걱정거리가 있었다. 서른을 지나 마흔이 가깝도록 아이가 없는 것이었다. 용왕 부부는 아이를 갖고 싶어 관음사라는 유명한 절을 찾아가 100일 기도를 했다. 그리고 얼마 뒤에 용왕 부인에게 아기가 생겼는데, 낳고 보니 어여쁜 딸이었다. 용왕 부부는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귀하게 얻은 딸이 어찌나 귀여운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았다. 그런데 귀엽다고 오냐, 오냐 하며 키운 탓인지, 딸아이는 커가면서 버릇이 없어졌다.
지역사 이야기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역 곳곳의 역사를 재조명하고자 합니다. 흔하게 역사 교과서 등에서 볼 수 있는 주제가 아닌, 내가 발 딛고 살아가는 이 지역을 지켜줬던 과거의 흔적들을 찾아보는 시간이 됩니다. 이 글을 통해 과거의 역사를 알고 이곳에서 우리가 살아갈 수 있음을 다시금 감사하는 시간이 됐으면 합니다.◆ 여몽연합군 vs 삼별초진도로 내려온 삼별초는 용장성(龍藏城)을 거점으로 삼고 자신들이 고려의 정통임을 주장했다. 용장성은 둘레 13㎞의 산성으로 개경의 궁궐과 비슷한 모습을 갖췄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원종을
잠원 한강공원 그라스정원 가을에 피는 꽃 ‘핑크뮬리’정원 옆에 한강도 함께 감상인생 샷 찍기 안성맞춤 장소 핑크뮬리, 10월~11월 절정기미국서 들어온 외래종 식물생태계 교란종 지정될 경우시간 지나면 보기 힘들 수도[천지일보=홍수영 기자] ‘핑크’라는 색을 떠올리면 보통 봄을 연상하기 쉽다. 전국 거리를 가득 메운 분홍빛 벚꽃을 떠올리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라스정원’에 가면 가을에도 핑크색 물결을 만나볼 수 있다. 분홍빛 가득한 광경을 만들어내는 주인공은 바로 ‘핑크뮬리’라는 가을 꽃이다.핑크뮬리의 온전한 이름
평양 전도사(1900)흰 한복에 갓을 쓰고 전도하러 다니는 모습니다. 당시에는 전도하러 다니는 사람들을 권서인(colporteur)이라고도 불렀는데, 영어의 뜻은 ‘서적 행상인’이다. 한자로는 권할 권(勸)자를 써서 성경책을 권하는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복음을 전하는 사람, 즉 전도인으로 보는 것이 적합하다. 우리나라에서 권서가 시작된 것은 1882년 만주에서 복음서들이 한글로 번역돼 반입될 무렵으로 초기에는 무거운 ‘복음 궤짝’을 들고 삼천리 방방곡곡을 다녔다. 권서인들의 임무는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
역사는 기록된다. 남겨진 유물은 그 당시 상황을 말해 주며 후대에 전해진다. 역사는 미래를 바라볼 때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 같은 역사적 기록과 유물을 보관하고 대중에게 알리는 장소가 박물관이다. 이와 관련, `이달에 만나본 박물관' 연재 기사를 통해 박물관이 담고 있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자.반죽을 ‘방금’ 눌러 뽑은 국수농촌서 특별한 손님에게 대접동치미에 마는 방식 북한 동일[천지일보=장수경 기자] “막국수의 ‘막’은 ‘방금’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반죽을 방금 눌러 뽑은 국수가 막국수죠.”주위에서 자주 볼 수 있고
서복 흔적 남아있는 서귀포전시관람·공원산책 서복10경[천지일보=김현진 기자] 천혜관광명소가 많은 제주도 서귀포시. 약 2200년 전 중국대륙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의 명을 받고 불로초를 찾으러 왔던 서복 일행이 여기서 머물다 서쪽으로 돌아간 포구라는 의미로 지어진 지명이름 서귀포(西歸浦)다.서귀포 일대는 ‘70리로 표현’할 만큼 해양을 향해 해안절벽이 솟아있는 데다 절벽을 따라 정방·천지연·천제연 등의 폭포가 집중 분포해 제주도 관광지역의 중심을 이룬다. 특히 정방폭포에는 서복의 흔적이 남아 있고, 그 입구에는 서복전시관이 있다.
18~19세기부터 ‘팽이’라 불려‘뺑이·삥딩’ 등 지역 이름 달라아이들 함께 모여 겨루기도 해[천지일보=장수경 기자] 겨울철 놀이하면 빠질 수 없는 민속놀이가 ‘팽이치기’다. 1960년대 후반 사람들은 어린 시절 농촌은 물론이고 도회지에서도 팽이치기를 했다. 하천에 얼음이 얼면 강추위에도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나와 팽이를 치며 함께 즐겼다. 원뿔모양으로 깎아 만든 팽이는 채로 쳐서 빙빙 돌리는 놀이였다.◆팽이 어원은?팽이는 도는 모양을 나타낸 의성·의태어인 ‘팽’과 접미사 ‘이’로 이루어진 말이다. 곧 ‘팽팽 도는 것’이라는 뜻
[천지일보=김예슬 기자] 가을의 끝자락, 거제도를 찾았다. 들쑥날쑥한 리아스식 해안, 거친 바람과 물살. 거제도를 둘러싼 크고 작은 섬들과 해안가 자갈들은 이러한 악조건을 견뎌낸 까닭인지 더 이상 손 볼 데 없는 완성품 같았다. 거제도는 거센 물살을 이겨내고 몽돌이 된 자갈 같이, 시련과 위기를 극복한 사람들의 흔적도 많은 곳이다.여행 목적을 정해도 제주도 다음으로 큰 섬 거제도를 하루 만에 돌아보기란 불가능. 고심 끝에 거제해저터널과 매미성, 칠천량해전공원을 둘러보기로 하고 서울에서 출발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배를 타야 하나
내 고장 문화재를 아는가. 각 지역마다 선조들의 삶이 지명과 문화재 등을 통해 잘 남아 있다. 하지만 너무 가까이 있어 역사적 가치를 덜 인지할 수 있다. 이에 각 지역에 남아있는 문화와 역사의 소중함을 알아보는 내 고향 역사탐방을 함께 떠나보려 한다.강화평화전망대서 느낀 한민족 역사강 건너 연백평야 노란 물결 출렁예성강 어구, 고려시대에 무역 활발송나라뿐 아니라 일본과도 무역20년전 北서 온 ‘평화의 소’도 연상[천지일보=장수경 기자] 남한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북한 땅을 볼 수 있는 곳. 인천 강화도 양사면에 있는 ‘강화평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