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이의준 왕릉답사가숙종의 왕비는 4명이었다. 첫 왕비 인경왕후 김씨는 세상을 뜨고 1681(숙종 7)년에 경릉(추존 덕종) 근처의 '익릉'에 자리 잡았다. 13살에 왕비가 되어 후사도 없이 19살에 세상을 떴고 나홀로 능에 묻혔다. 후궁으로써 첫 왕자를 낳고 왕비에 올랐던 장희빈의 묘도 주변에 자리했다.첫 왕비 인경왕후와 마지막 왕비 인원왕후는 비교적 평안한 세월을 보냈다. 그러나 두 번째 부인 인현왕후와 세 번째 왕비였던 희빈장씨는 정치의 영향을 받아 왕비 책봉과 폐비가 되는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결국 두명은 숙종과 명
글, 사진. 허북구 나주시천연염색재단 운영국장 제비쑥떡은 떡쑥으로 만든 떡이다. 떡쑥이 떡에 이용된 역사는 중국과 일본 모두 1000년 이상 되었다. 중국과 대만에서는 지금도 떡쑥을 서국초(鼠麴草)라 부르며, 중요한 떡 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모자초(母子草, ハハコグサ)로 불리며, 삼짇날에 떡에 이용했고, 7가지 봄풀의 하나로 이용되는 문화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60~70년 전까지만 해도 전라도, 경상도 각지에서 귀한 떡 재료로 이용되었다. 귀하디귀한 떡 재료였지만 농경지 정리와 제초제 사용 증가로 채취가 어렵게 되면
글․사진 서상진 세계잡지연구소장 1960년대 최고의 동인지 전주는 예로부터 예향(禮鄕), 문향(文鄕)이었다. 그 점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 ‘완판본의 고장’이라는 말이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 일반 대중들도 한글로 된 책들을 읽기 시작했는데, 필사본은 그런 대중의 독서 열망을 쉬 만족시키지 못하였다. 이때 태인(현 정읍) 지방에서 손기조 등의 아전 출신 인사들이 영리를 목적으로 방각본(坊刻本)을 발행·판매하기 시작하였다. 여기에는 방각을 위한 판재나 각수가 많이 있었던 것도 일조를 하였겠으나 무엇보다도 전주는 한지(
김개남1853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난 김개남(1853~1895)은 1890년경 동학을 믿기 시작해 1891년에는 동학의 지역 책임자인 접주가 됐으며, 1893년 보은 집회 후에는 대접주가 됐다.전봉주, 손화중과 함께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을 때 농민군을 이끈 지도자로 조선 조정이 전주화약(全州和約: 1894년 동학 농민 운동 당시 농민군이 전주를 점령하고 정부와 맺은 조약)에서 약속한 것을 지키지 않아 봉기했다가 처형당한 인물이다.농민군 지도자로서 양반 지배층을 응징하는 데 가장 적극적이었던 인물로 한양으로 호송되지도 않은
정권의 대변인을 자처했던 한국교회 대표 연합기구 한기총‧한교연이 최근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이후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등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설립 당시부터 정권과 하나 돼 움직였던 한국교회가 대통령이 힘을 잃자 일찌감치 새로운 권력을 찾아 나선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고(故) 최태민 목사로부터 시작된 한국교회와 박근혜 대통령과의 남다른 인연을 조명하고 한기총 등의 최근 행보를 정리했다.[정치와교회-④역사 속 신종교 탄압]일제, 천도교 대종교 등 탄압 속내는 민족혼 말살보천교 등 조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