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이의준 왕릉답사가경기도 여주시 능서면에 자리한 영릉(寧陵)은 조선 제17대 효종과 인선왕후의 동원상하릉(봉분을 한 언덕에 앞뒤로 나란히 배치)이다. 세종(英陵)과 추존 진종(永陵)의 능호도 영릉이다.1659(효종 10)년 5월 4일 효종이 즉위 10년 만에 승하하니 건원릉 서쪽 산줄기에 묻혔다. 그러나 빗물이 스며든다하여 1673(현종 14)년 여주의 세종 영릉 동쪽에 자리를 마련해 옮기고자 능을 열어보니 침수 흔적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천장을 했다.다음해 인선왕후가 승하해 효종 왕릉 아래에 자리하니 조선왕릉 최초의 동
글, 사진 이정은 대한민국역사문화원 원장/ 3.1운동기념사업회 회장 고된 노동과 준비의 시간(1911~1918) 나라가 망하자 연해주 분위기가 일변했다. 홍범도 같은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은 러시아 당국의 감시받는 존재가 되었다. 러시아로서는 조선 독립운동가들의 독립운동이 일본을 자극할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1911년 홍범도를 비롯한 이상설 등 독립운동 지도자들이 정치적인 목적을 빼고, 생업을 장려한다는 ‘권업회’를 조직하게 된 것도 러시아 당국의 압박 때문에 취한 고육책이었다. 홍범도도 ‘권업’에 나섰다. 1912년 가을, 동지들과
최초 금속 활자부터 한지까지수준 높은 문화 가졌던 민족86아시아, 88올림픽 등으로‘아침의 나라’ 韓, 세계 관심↑BTS, 드라마 등 한류 문화전통을 알리는 또 하나의 계기[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세계 속으로 뻗어나가는 한국. ‘방탄소년단’ ‘한국드라마’ ‘축구열풍’ 등은 이를 증명하고 있었다. 세상은 한국의 다양한 문화에 점점 더 관심이 커지고 있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가 그야말로 반전 매력을 뽐내는 때이다.그런데 역사를 더 자세히 들어다보면, 작은 땅덩이의 문화가 주변 국가보다 더욱 우수한 사례가 많았다. 한민족의 우수한 D
글 이정은 대한민국역사문화원 원장, (사)3.1운동기념사업회 회장 님 웨일즈(Nym Wales)는 한국의 독립운동가 김산(본명 장지락)을 주인공으로 한 ‘아리랑’이란 책 저자로 한국 사회에 잘 알려진 미국의 여류 언론인이자 작가이다. 그녀의 남편 에드가 스노우(Edgar Snow)는 ‘중국의 붉은 별(1937)’이라는 책을 써서 서방세계에 처음으로 1930년대 중국 대륙에서 진행되고 있었던 공산혁명과 마오쩌둥(毛澤東, 1893~1976) 등 지도자들에 대해 알렸다.마오가 이끄는 혁명세력은 중국 남부 농촌지역에서 세력을 키워가다가 장
글 백은영, 사진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민영익민영익(1860~1914)은 조선 말기의 문신이자 개화 사상가로 명성황후의 친정 조카이기도 하다. 1881년에 통리기무아문의 12사 가운데 군무사 당상이 되어, 별기군의 교련소 당상관으로서 임오군란(1882년 7월)이 일어날 때까지 별기군의 실무책임자 역할을 했다.구식군대에 의해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최고책임자인 민겸호(閔謙鎬)가 피살당하고 민영익 역시 그 책임자로서 가옥이 파괴당하는 피해를 입었다. 군란 진압 후, 일본이 입은 피해에 대해 사죄사절로 박영효(朴泳孝)가
지나간 역사는 기록된다. 남겨진 유물은 그 당시 상황을 말해준다. 역사를 거울과 경계로 삼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역사는 미래를 바라볼 때 중요한 작용을 한다. 이 같은 역사적 기록과 유물을 보관하고 대중에게 알리는 장소가 박물관이다. 이와 관련, ‘이달에 만나본 박물관’을 통해 박물관이 담고 있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자.동해안 최북단, 금강산 길목위치전쟁의 아픔, 생명 동시에 공존DMZ 역사적 기록물 보존 힘써[천지일보=장수경 기자] 금강산 마지막 봉우리인 ‘구선봉’이 눈앞에 보였다. 그 앞으로 해금강이 펼쳐졌다. 손에 잡힐 듯
월미도 스캔한 ‘X-RAY 작전’병력·배치·지형 등 샅샅이 조사美정보국 통해 맥아더에게 송신붙잡히자 작전 탄로 우려해 자결적진에 침투한 비밀 부대 ‘켈로’인민군·민간인 위장해 임무 수행비정규군인, 유공자 인정 못받아[천지일보=이혜림 기자]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믿었던 인천상륙작전이 1950년 9월 9일 미국 합동참모본부로부터 최종 승인됐다.인천상륙에 앞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인천지역에 대한 정보수집이다. 항공이나 통신장비를 이용한 정보가 아닌 수로, 해안조건, 방파제, 북한군 등에 대해 사람이 직접 가서 보고 듣고 확인해야 하는
기념관 하나 없이 쓸쓸하게 생가터 표시석만 있어사철나무에 가려지고 각종 쓰레기로 표시석 존재가치 실종용산구 효창동·원효로 소재 2군데 생가터 복원 추진 중[천지일보=김현진 기자] 83년 전 1월 8일 일본인들이 신처럼 떠받드는 일왕을 제거하고 조선의 독립 의지를 천명하고자 죽음의 불구덩이로 뛰어들었던 이봉창 의사. 일본 도쿄 요요기 연병장에서 신년 관병식(觀兵式)을 마친 후 마차를 타고 돌아가는 일왕 히로히토를 향해 폭탄을 던졌으나 안타깝게도 실패로 끝난 도쿄의거. 이 의거는 비록 불발에 그쳤지만, 이는 훗날 윤봉길 의사의 의거(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