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이의준 왕릉답사가숙종의 왕비는 4명이었다. 첫 왕비 인경왕후 김씨는 세상을 뜨고 1681(숙종 7)년에 경릉(추존 덕종) 근처의 '익릉'에 자리 잡았다. 13살에 왕비가 되어 후사도 없이 19살에 세상을 떴고 나홀로 능에 묻혔다. 후궁으로써 첫 왕자를 낳고 왕비에 올랐던 장희빈의 묘도 주변에 자리했다.첫 왕비 인경왕후와 마지막 왕비 인원왕후는 비교적 평안한 세월을 보냈다. 그러나 두 번째 부인 인현왕후와 세 번째 왕비였던 희빈장씨는 정치의 영향을 받아 왕비 책봉과 폐비가 되는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결국 두명은 숙종과 명
글·사진 이의준 왕릉답사가 구리 동구릉에 들어서면 왼쪽 끝자락에 조선 제18대 현종과 명성왕후 김씨의 숭릉이 있다. 1674년 현종의 숭릉이 조성됐고 1684년 명성왕후가 옆에 묻혀 쌍릉이 됐다. 현종은 1641(인조 19)년 아버지 봉림대군(훗날 효종)과 어머니 장씨(훗날 인선왕후) 사이에서 태어난 외아들이다. 아버지 효종이 청나라에 볼모로 가있을 때 심양관사에서 태어나 조선왕 유일한 외국 태생이다. 명성왕후 김씨(고종은 명성왕후 민씨)와 결혼했으며 계비나 후궁이 없는 유일한 왕이었다. 조선의 가장 정통성을 지닌 왕이 되어 15년
글ㆍ사진 이의준 왕릉답사가경기도 남양주에는 왕릉 4기(광릉·홍릉·유릉·사릉)가 있다. 모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조선 왕릉이다. 그런데 또 하나의 왕의 무덤이 있으니, 바로 조선 제15대 국왕 ‘광해군 묘’다. 조선의 두 번째 폐왕 광해군의 묘는 1623년 강화도에서 죽은 부인 류씨(문성군부인)의 무덤이었다. 18년 후 광해군이 제주에서 세상을 뜨니 군부인 옆에 쌍분으로 자리했다. 광해군은 임진왜란이 일자 세자가 되어 아버지 선조와 역할을 나눠 나라를 살폈고 왕이 되어서는 개혁정치를 펼치며 명나라와 후금사이에서 중립외교로 나라
글·사진 이의준 왕릉답사가고양 서삼릉의 효릉에는 인종과 인성왕후가 묻혀있다. 이웃에 모후(장경왕후)의 희릉이 있으니 조선왕릉 최초로 어머니와 아들부부가 함께 했다. 인종은 단종과 더불어 가장 불쌍한 조선왕이다. 단종은 출생 하루 만에, 인종은 엿새 만에 모후를 잃었다. 6세에 세자가 돼 24년의 모진 세월 끝에 1544년 30살에 왕이 됐다. 인종은 ‘기묘사화(己卯士禍)’로 유명무실해진 현량과(과거시험이 아닌 경전과 행실을 보고 논술시험으로 인재선발)를 복구하고, 조광조를 복권시키도록 했다. 그러나 1545년 즉위 7개월 11일만에
글·사진 이의준 왕릉답사가조선 왕릉에는 두 개의 정릉, 신덕왕후(貞陵)와 중종(靖陵)의 능이 있다. 중종의 정릉은 강남구 선정릉에 선릉(부모인 성종과 정현왕후)과 함께 하고 있다. 중종이 여기에 묻히기까지는 사연이 많다. 1544(중종 29)년 중종이 세상을 뜨고 이듬해 장경왕후가 묻혀있던 고양의 희릉 서쪽에 능을 조성하며 묘호를 정릉으로 바꿔 정했다. 그런데 1562(명종 17)년 세 번째 왕후 문정왕후가 중종의 무덤을 정릉에서 서초동 현 위치로 천장하고 본래 능은 다시 희릉으로 되돌렸다. 문정왕후는 사후 중종과 함께 묻히려 했으
대모산 기슭 헌릉(서초구 내곡동)은 제3대 태종과 원경왕후의 능이다. 타고난 정치적 기질과 승부수로 ‘왕의 자리’를 차지한 태종과 그가 머뭇거리면 등 떠밀고 위험을 모면토록 ‘코칭’하던 원경왕후가 나란히 자리한 곳이다. 부부는 왕좌에 이르고자 의기투합했으나 많은 부부 갈등을 겪었다. 특히 왕후는 많은 후궁이 들며 심한 고통을 겪었다. 부부는 세상을 뜬 지 600년이 지난 지금 후궁 없는 이곳에서 오붓한 부부의 정을 나누고 있다. 하지만 강력한 군주 태종의 위세와 달리 헌릉은 옛날의 흔적이 많이 사라져 주변의 능지는 잘려 나갔고 제실
관동팔경 중 으뜸 ‘제일루’ 꼽혀유일하게 석양 감상, 국가 보물보는 각도에 다른 풍경 감상 매력[천지일보=김현진 기자] 강원 동해안 명승지의 상징인 ‘관동팔경’. 이들 팔경은 정자나 누대가 있어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풍류를 즐기고 빼어난 경치를 노래로 읊었다. 조선 선조 때 문인이자 시인인 송강 정철(鄭澈)이 ‘관동별곡’에서 관동팔경의 경치를 노래해 사람들한테 익히 알려졌다.강원 삼척시에 위치한 죽서루(竹西樓)는 관동팔경 중에서 제일 큰 누각이고 유일하게 강을 끼고 있다. 나머지 칠경이 동해바다를 끼고 있어 일출을 감상하는 곳이라면
서울근교 가을나들이 명소 행주산성시원하게 뻗은 한강·북한산보며 힐링주변 ‘행주산성역사공원’은 야경명소가을밤 한강보며 잔디밭서 치맥파티[천지일보=이승연 기자] 높고 깊어진 짙푸른 하늘, 선선하게 불어오는 가을바람, 가슴이 뻥 뚫릴 듯 시원하게 뻗은 한강, 한눈에 담기는 웅장한 북한산, 이 모든 것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가을 최고의 나들이 명소이자 가을 힐링포인트 ‘행주산성’을 찾았다.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에 자리한 행주산성은 1593년(선조26) 임진왜란 3대 대첩 중의 하나인 행주대첩을 치른 역사적 현장이다. 권율 장군의 불퇴
‘지붕 없는 박물관’ 강화도 신미양요 격전지 ‘광성보’51명의 무명용사 무덤서외세에 맞선 선조 넋 기려 섬 중에 섬 ‘석모도’강화 석모도미네랄 온천서뜨끈한 온천으로 몸 녹이고붉은 석양으로 마음 녹인다[천지일보=박혜옥, 백민섭 기자] “조선의 수비병은 아무런 두려움 없이 호랑이처럼 용감하게 싸우면서 그들의 진지를 사수하다가 죽어갔다. 민족과 국가를 위해 이보다 더 장렬하게 싸운 군인들을 다시는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1871년 신미양요 전투에 참가했던 미군 장교가 훗날 남긴 글.우리나라에서 4번째로 큰 섬 강화도에는 특별한 무덤
명소 즐비한 한탄강 지질공원 자연·생태·문화·고고학 보고전곡리 유적 등 역사자료 풍성화산활동의 흔적, 주상절리로[천지일보=임문식, 이성애 기자] 굽이굽이 흐르는 한탄강과 임진강 줄기를 따라 늘어선 주상절리. 그 옛날 격렬했던 화산 활동은 우리에게 천혜의 자연 경관을 남겼다.웅장하면서도 화려하게 펼쳐진 풍광 앞에선 누구나 압도를 당한다. 수천만년에서 수십만년에 이르는 과거 지질 역사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인간의 역사는 너무나 짧다. 거대한 자연 앞에 숙연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다.한탄강 국가지질공원은 그런 곳이다. 2015년 말 국
쉼표 탐방 안산 대부해솔길 (1코스)깨끗한 바다와 시원한 바람마음 편안케 해주는 걷기길대부도 전체 두른 일곱 코스각종 볼거리·체험거리 가득수려한 풍경에 사진찍기 좋아[천지일보=정현경, 김정자 기자] 가끔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아름다운 자연 속을 유유자적 걷고 싶을 때가 있다. 그렇게 트레킹은 일상생활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힐링의 시간으로 다가온다. 주말을 이용해 서울에서 가까운 트레킹 코스를 찾아 즐거운 추억을 쌓고 싶다면 깨끗한 서해바다와 넓은 갯벌, 다양한 볼거리·체험거리가 가득한 안산 대부해솔길을 추천한다.◆하루 종일 걷고 싶
내 고장 문화재를 아는가. 지역마다 선조들의 삶이 지명과 문화재 등을 통해 잘 남아 있다. 하지만 너무 가까이 있어 역사적 가치를 덜 인지할 수 있다. 이에 각 지역에 남아있는 문화와 역사의 소중함을 알아보는 내 고향 역사탐방을 함께 떠나보려 한다.[천지일보=장수경 기자] 한반도 역사상 마지막으로 조성된 왕릉이자 유일한 황릉인 ‘홍유릉(洪裕陵)’. 경기도 남양주에 위치해 있어 서울에서도 찾아가기 쉽다. 홍유릉은 홍릉과 유릉을 합쳐서 부른 말이다. 이곳은 조선의 쇠망과 근대 격동기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 잠들어 있는 조선왕릉이다.◆고종
국내 최초 호수순환 레일바이크반짝이는 옥빛 호수 초록 나무청둥오리, 백로 등 철새 관찰서울 근교 지하철 1시간 거리생태습지·테마과학관 교육의 장[천지일보=강병용 기자] 푸른 새싹이 돋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봄. 지난 7일 서울역에서 지하철로 40여분 남짓 만에 목적지인 서울 근교 경기도 의왕레일파크에 도착했다. 수도권임에도 꽤나 규모 있는 자연생태습지가 자리해 있는 이곳은 미세먼지와 황사가 심한 시내에서 벗어나 잘 보존된 자연경관을 만날 수 있다. 관광과 생태학습교육장으로도 각광받는 곳인 의왕레일파크. ◆호수변 따라 순환하는 레일바
조선 제4대 임금 세종대왕 영릉(英陵)조선왕릉 최초의 합장릉세종대왕 위대한 정신 기려학생·가족 등 발길 이어져[천지일보=박준성 기자] 대한민국 한글(훈민정음), 세계인이 찬사를 아끼지 않는 우리나라의 자랑스런 문화유산이다. 한글하면 떠오르는 분이 바로 세종대왕(1397∼1450년)이다. 수많은 위인전 인물 가운데서도 단연 돋보이는 위인은 세종대왕이다. 서울 광화문광장 중앙에 위풍당당 근엄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세종대왕 동상과 지하 전시 공간은 세종대왕과 한글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도심에서도 세종대왕에 대한 자료를 찾을 수
“한 작가님, 우리 목욕합시다.”양평에 거의 도착했을 때 그가 또 뜬금없이 말했다. 동네 목욕탕조차 다니지 않는 한한국으로서는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거기다가 어젯밤에 처음 만난 사람이 아닌가.“저이는 절대 안 갈 거예요.”“왜요? 좋은 데가 있습니다.”보다 못한 아내가 거들어 주었지만 그는 오히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한 작가님! 몸 풀어야 해요. 유황온천이 억수로 몸에 좋다니까요! 내 친구가 합니다!”그러더니 다시 전화를 걸어 “친구야, 나데이! 세계평화작가가 가니 준비 잘 하그레이!” 하고 단단히 부탁을 하니 한
그날부터 한한국은 산속의 절과 도시의 교회를 찾아다니며 새로운 서도(書道)를 깨치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꿈속에서 본 그런 글씨는 좀체 써지지 않았다. 그는 엉뚱하게 검객처럼 검도에도 빠져 칼을 붓처럼 휘둘러대기도 했다.“이 무거운 칼은 칼이 아니다! 이건 가벼운 붓이다! 이 칼이 붓처럼 날렵해질 때 새로운 글씨가 탄생할 거야!”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돌아다니며 수련을 계속하던 어느 날, 그는 마침내 새로운 수련법을 찾아냈다. 살을 에는 듯한 추운 날씨였다. 거의 자신의 키만 한 몽둥이를 붓 대신 들고서, 부산 해운대 모래사장 위에 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