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새해, 기념교육관 건립 추진선구적 연구, 민족사관 정립언론인으로서 애국계몽운동[천지일보 대전=김지현 기자]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 대전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 단재(丹齋) 신채호 선생이 남긴 유명한 말이다.대전 어남동에 있는 그의 생가를 찾아 그 얼을 더듬어봤다. 단재의 육체는 우리 곁에 없지만 그의 정신은 그 삶이 처절했던 만큼 아직 우리 후손들의 가슴에 강하게 남아 꿈틀거리고 있다. 손톱이 뽑히며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인간으로서 견디기 힘든 고문을 받으면서도 일제의 유혹에 한 순간도 굽히
‘주도적 참여하는 민주시민’“휴식과 여가는 청소년 권리”[천지일보 세종=김지현 기자] 세종시교육청이 주최하고 세종학생회연합회(한울)가 주관한 ‘2019 세종학생축제, 꿈수~ 얼수~ 오늘은 놀기 좋은 날’이 13일 성황리에 열렸다.정부세종컨벤션센터 2층 기획전시장에서 2000여명의 학생, 학부모, 시민이 참여했다. 휴식과 여가를 즐기는 것은 아동, 청소년들이 누려야 할 권리이며, 한 해 동안 학교생활과 학업에 지친 청소년들이 친구 및 선생님들과 함께 미래의 꿈을 위한 재충전의 시간을 갖기 위해 마련된 이번 축제는 올해로 6회를 맞이했
“왜곡사실, 일본에 바로 알려야”‘일본에서 찾아낸 일제강점기 대전의 모습’대전시립박물관, 日자료조사11월 29일부터 일반공개일제강점기 대전중앙로 사진대전수비대·대전도시계획지도[천지일보 대전=김지현 기자] “한일관계가 경색될수록 학술과 문화의 교류는 지속되어야 합니다.” 대전시립박물관 류용환 관장의 말이다.대전시립박물관은 국외에 있는 대전의 역사자료를 수집해 일반인에게 공개하기로 했다. 대전시립박물관은 지난 13일부터 15일까지 3일간 일본 교토에 있는 리츠메이칸대학교 국제평화뮤지엄을 찾아 일제강점기 대전의 역사자료 약 40여점에 대
LH측, 3년전 연수원 강제철거“2년 유예 묵살, 하룻 새 철거”“어른들 잘못 용서받고자 투쟁”“일기박물관 건립, 사과” 요구[천지일보=김지현 기자] “100만명 아이들의 일기장을 유네스코 기록문화유산으로 등록하려던 차에 LH로부터 강제철거를 당했습니다.”9일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인추협) 고진광 대표가 3년 전 연수원 철거 당시를 회상하며 말을 이었다.고 대표는 세종시 금남면 사랑의일기연수원 터 콘테이너 박스에서 LH를 상대로 3년 째 투쟁중이다. 2016년 연수원 철거 직전 인추협은 연수원에 보관 중인 일기장을 유네스코 기록유
2019 이응노미술관 기획전 ‘감각의 교감’7월 16일(화)부터 9월 29일까지 소통 기회오감으로 만나는 예술… 관객의 참여로 완성군상·문자 추상·미디어 설치 작품·기타 체험KAIST 문화기술대학원 미디어아트팀과 협업대전방문의 해, 전국에 알리는 시너지 효과[천지일보 대전=김지현 기자] 고암(顧菴) 이응노가 현대 대전에서 관객들의 오감 속에 살아움직이고 있다. 고암 작품의 현대적인 재해석으로 미이어아트와의 만남이 관객의 참여로 완성되는 독특한 전시회다.고암 작품을 현대적 맥락에서 볼 때, 그의 작품 속 인간 및 글자에서 발견되는 ‘
‘목숨 살려 주겠다는 회유에 웃음 지을 뿐’세조를 ‘상감’이라 안하고 ‘나으리’라 불러“임향한 일편단심이야 변할 줄이 있으랴”[천지일보 대전=김지현 기자] 절개와 충의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린 박팽년, 600년의 숨결을 되살린다.“까마귀 눈비 맞아 희는 듯 검노매라, 야광명월이야 밤인들 어두우랴, 임향한 일편단심이야 변할 줄이 있으랴” 박팽년이 옥중에서 지은 그 유명한 시조다.대전시가 올 가을, 고장의 인물로 조선전기 대표적 명현(名賢)이자 절의(節義) 정신의 상징적인 인물인 취금헌 박팽년(醉琴軒 朴彭年, 1417~1456)의 탄
[천지일보=김지현 기자] 대전시가 중구 중촌동 옛 대전형무소 자리(중구 목중로 34, 현 자유총연맹 대전시지부)에 역사교육관광자원화 사업을 추진한다. 현재 8998㎡, 건물 2985㎡ 면적(1984년 당초 4만 7600㎡)에 해당되는 이곳엔 형무소 망루, 우물, 왕버들나무, 반공애국지사 추모탑, 자유회관 등이 있다. 대전형무소는 1919년 5월 3.1운동 후 ‘대전감옥’이란 명칭으로 개소했으며 안창호 선생, 여운형 지사 등 독립운동가와 애국지사가 수감되었던 곳이다. 이후 1923년 ‘대전형무소’로 개칭되어 1939년 대규모 시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