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초교파신문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정론지가 되기 위해 노력해왔다. 2005년 9월 창간된 본지는 ‘초교파’라는 제호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교단과 교파를 초월해서 정보를 공유하고,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내부적으로는 개혁을 추구하며 외부적으로는 사회와 소통하고 화합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또 중도개혁 언론으로 편파편견에 흔들리지 않고 중립을 지키며 균형 잡힌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힘써왔다.특히 기독교언론으로서 기독교와 세상을 바르게 만들어가는 신앙인의 대변지가 되고자 했으며, ‘머리로 생각하고 발로 뛰며 가슴으로
일본에 남겨진 백제왕 후손, 1400년 만에 조상을 방문하다 “1400년의 역사 속에서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족보를 통해,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한국이 그리워졌습니다. 이 같은 감정을 느끼면서 조상님께 반드시 성묘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지난 8일 KBS ‘역사추적’은 자신들을 백제왕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한 일본인 부부의 한국 방문 이야기를 다뤘다. 지난 4월17일 백제의 옛 땅인 익산시를 방문한 이 일본인 부부는 오우치 기미오(69, 남편)와 오우치 다카꼬(65, 부인)씨. 이들은 1400년 전 일본으로 건너
지난달 29일, SBS 뉴스추적에서 ‘93세 조 할머니, 700억원의 전쟁’ 편을 방영했다.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확인된 사실은 토지의 기증자인 조관실(93) 권사가 1984년 5월9일 소유하고 있던 약 33만㎡(10만평)에 달하는 토지를 충현교회(김창인 목사)에 증여했고, 김창인 목사는 증여재산으로 사단법인 북한선교원(현 한민족세계선교원)을 설립, 초대이사장에 취임해 북한선교와 통일을 위해 일을 시작했다. SBS 방송에 따르면 현 이사장 조준상 목사는 취임 이후 증여재산을 개인적으로 착복하고, 그린벨트였던 증여 토지를 훼손했을 뿐만
볼 수 없게 영으로 오시는 것을 의미함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 이지연 강사 이는 예수님께서 영으로 오시는 것을 예고하신 말씀이다. 구약의 하나님께서 빠른 구름을 타고 애굽(육체)에 오실 것을 예언하셨고(사 19:1), 실상은 그 때로부터 약 7백년이 지나 육체인 예수님께 영으로 오셨다(요 1:32).다시 오시는 예수님은 환난 후 해와 달이 어두워지고 별들이 떨어져 밤이 된 그 때, 천사들과 함께 번개같이 오시어 택한 성도들을 동서남북에서 모으신다고 하셨다(마 24:29~31). 이러므로 누가복음 17장과 요한복음 16장에는 인자의
지난해 연말부터 최근까지 이어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가자지구 전쟁은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 기독교연합단체, 교회, 기독교인들도 이스라엘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관심을 가지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는 2000년 전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고 활동한 곳이며, 기독교의 성지이기에 관심을 갖고 민감한 반응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성지는 종교적 또는 전승적(傳承的)으로 신성시되는 구역을 말한다. 이슬람교도들은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예언자 마호메트가 태어난 곳인 사우디아라비아 서부에 있는 도시 메카를 제1의
우리나라는 일제치하에서 벗어난 광복의 기쁨도 잠시, 남북으로 나뉘어 땅을 지키기 위한 전쟁을 치러야 했다. 전쟁의 현장과 전쟁 이후 폐허의 땅을 회복하는 곳곳에는 국군이 함께 했다. 지금 이 나라가 이렇게 발전한 데에는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킨 군인들의 공로를 무시할 수 없다. 올해 건군 60주년을 맞아 국군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자 한다.국군의 필요성 국군의 창설은 1907년 대한제국 군대 해산 이후 의병, 독립군, 광복군의 맥을 계승해 전개된 항일민족운동의 유산에 뿌리를 둔다. 광복군 출신들은 “광복군이 국군의 모
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시절 300만명 이상의 북한 주민들이 굶어 죽었다. 이 ‘고난의 행군’이 재현될 조짐 보이고 있다. 북한이 최근 심각한 식량난과 경제난을 겪고 있는 것.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북한의 지난해(2007) 곡물 생산량은 전년도 대비 50여만 톤이 감소했다. 특히, 두 차례 발생한 홍수와 가뭄에 따른 흉작으로 비료 공급량이 줄어들었다. 이 때문에 주식인 쌀 생산량이 급감했다. 끼니를 거르는 정도가 아니라 대규모 아사(餓死) 직전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북한 주민들은 심각한 기근과 각종 전염
세계유일의 분단국가라는 불명예를 안고 살아온 지 6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대한민국은 1945년 일제로부터 조국의 독립을 맞았으나 8·15해방 전 3·8선이 그어지는 과정에서 미·소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따른 외적요인과 우리민족 내부의 좌우이념 갈등이라는 내적요인으로 조국독립 3년 만에 분단의 아픔을 겪게 된다. 그리고 21세기를 맞은 지금까지 분단의 슬픔은 계속되고 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현재 서른이 넘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과거 초등학교시절에 반공포스터 그리기 및 반공표어 만들기 등 반공교육을 받은 기억이 있을 것이다. 6·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였던 코리아, 그 등불 다시 한 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무한히 퍼져 나가는 생각과 행동으로 우리들의 마음이 인도 되는 곳, 그러한 자유의 천국으로 내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소서.’이 글은 ‘동방의 등불’이란 타고르의 시이다. 타고르는 우리 문화의 우수성과 강인하고도 유연한 민족성을 ‘동방의 밝은 빛’으로 표현하면서 극찬했다. 이런 타고르의 표현 외에도 코리아, 대한민국, 동방예의지국, 백의민족, 배달민족, 무궁화 겨레 등 우리나라와 민족을 호칭하는 여러
‘동북공정’은 중국 국무원 산하 사회과학원 직속 ‘변강사지연구중심’에서 주관하는 국가적 프로젝트로 2002년 2월부터 ‘동북변강의 역사와 현상에 대한 연속 연구공정’을 추진해 5년을 계획한 국가중심의 프로젝트이다. ‘동북공정’에서 다루는 것들 중 고구려를 비롯한 고조선, 발해 등 한국 고대사와 관련된 문제들이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고 있어 한국의 정부와 학계, 언론 및 국민들에게 이슈가 되고 있다.중국은 1990년대 이후 일부학자들 또는 연구기관들이 주축이 되어 ‘고구려 사(史)’를 중국 소수민족의 지방정권, 즉 중국사의 일부라고 주
한국기독교 120년 역사한국기독교는 어느덧 120여년의 역사를 갖게 됐다. 성경의 역사에 비하면 짧은 시간이지만 빠른 성장과 하나님에 대한 열심은 유래가 없을 정도다. 이 나라에 복음이 전해지고 한국기독교가 지금처럼 성장하기까지에는 분명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성령의 역사가 함께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지금의 한국기독교는 많은 비판과 질타 속에 위기를 맞고 있다. 이 시점에서 한국기독교 120년 역사를 되짚어보는 것은 지난날의 죄와 변질된 모습을 회개하고 다시 처음의 사랑을 회복하고자 하는 데 의미가 있다. 한 알의 밀이 떨어져한국에
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있었던 평양대부흥의 여파로 한국교회는 3년 정도의 짧은 시간에 전체 기독교인이 3.5배 정도 증가하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했다. 하지만 그렇게 강력한 부흥이 있었던 평양은 현재 가장 심각한 기독교 박해국가의 중심지가 됐으며, 한국은 남북분단과 전쟁의 비극을 겪어야 했다. 한국교회의 장자교단임을 자처하는 장로교는 해방 후 3차에 걸쳐 큰 분열을 일으키게 됐고, 이후 사분오열(四分五裂)을 거듭하여 지금은 수많은 교단과 교파로 나뉘게 됐다. 이와 같은 결과를 초래한 근본원인에 신사참배의 아픈 역사가 자리잡고
본지는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양대 산맥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CCK)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의 태동과정과 그동안 성명서를 통해 밝힌 양 단체의 입장을 간단히 정리해봤다. 또한 이들 단체가 위기를 맞은 한국교회를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이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조명해봤다. 한국교회는 1984년 선교100주년을 맞아 교파를 초월해 성대한 기념행사를 치렀다. 이후 대회에 참석했던 교계 원로들은 진보와 보수를 아울러 한목소리를 낼 수 있는 단체가 필요함을 인식하게 됐다. 이러한 교계의 분위기 속에 1989년 1월2일 교
은둔의 나라에 복음의 빛을 비춰 잠자던 영성을 깨운 감리교단은 한국교회사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감당했다. 우리는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의 태동과 변천사를 살펴보며 그동안 많은 발전을 이루어 2007년 현재 교회수가 5,825개에 이르고 교역자 8,930명 그리고 153만여명의 성도로 성장하게 된 배경을 조명해 보고자 한다.기독교대한감리회의 태동 1870∼1880년대 새로운 사상과 종교를 갈망하는 한국인들은 만주와 일본에서 기독교 복음을 접하고 성서를 우리말로 번역하였다. 이들이 해외에서 출판한 한글 성서들은 매서인을 통해 국내에 들여
한국은 19세기 말에서야 복음이 전해진 예수님이 오신지 2000년이 가깝도록 이방이라는 어두운 지역이었다. 이렇듯 개신교의 한국전래가 늦어진 배경을 놓고 말들이 많지만 결국 정치적, 문화적 이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불가해한 섭리를 들 수 있다.사실 개신교 이전에 천주교가 먼저 실학사상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처음으로 서학이라는 이유로 수용됐지만 이는 종교라는 의미보다 서양의 학문을 사모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실학자 중에 처음으로 가톨릭 신자가 된 사람은 이승훈으로 한국에 개신교가 들어오기 100년 전인 북경에
은둔의 나라에 복음의 빛을 비춰 잠자던 영성을 깨운 감리교단은 한국교회사에 있어 중추적인 역할을 감당했다. 우리는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의 태동과 변천사를 살펴보며 그동안 많은 발전을 이루어 2007년 현재 교회수가 5,825개에 이르고 교역자 8,930명 그리고 153만여명의 성도로 성장하게 된 배경을 조명해 보고자 한다.기독교대한감리회의 태동 1870∼1880년대 새로운 사상과 종교를 갈망하는 한국인들은 만주와 일본에서 기독교 복음을 접하고 성서를 우리말로 번역하였다. 이들이 해외에서 출판한 한글 성서들은 매서인을 통해 국내에
개성은 고려 도읍지로 ‘새로운 수도’라는 뜻으로 불렸다. 소나무와 바위가 많은 산이라 하여 송악 이라 불렸으며, 근 500년 존재했던 옛 도시의 모습과 현재 도시의 모습이 함께 어울려 있는 도시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려청자 고려인삼의 원산지이기 하다. 특히 2002년 11월 북한이 을 발표하면서 주목 받고 있는 지역이다. 개성공업지구는 북한이 2003년 개성직할시를 개성특급시와 개풍군, 장단군으로 개편하여 황해북도에 소속시켰다. 이후 개성특급시와 판문군은 합쳐 개성공업지구로 신설했다. 현재 이곳 개성시 개성공업지구내
일제 식민지 아래 있을 때 조국의 독립을 염원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우리 민족 모두는 하루라도 빨리 주권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孤軍奮鬪)했으며, 남녀노소(男女老少), 지위고하(地位高下), 신분의 차이를 떠나 하나 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그 노력의 일환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3.1운동이었다. 3.1운동은 처음에는 종교단체와 학생들에 의해 각각 독자적으로 추진되었다. 일제의 무단정치로 인해 국내의 사회단체 대부분이 해체되었던 까닭도 있었으나 종교단체 및 교육기관은 다른 단체들에 비해 비교적 활동이 자유롭고 조직이 가능했기 때
교계 '환영'대북지원 중단에서 진행ㆍㆍㆍ한기총 남북연합사업 지속여부 오는 10일 정리북핵문제가 새로운 국면에 돌입했다. 북한이 전제조건 없이 북핵 문제를 위한 6자회담에 복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이로써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으로 야기된 한반도의 핵 위기가 한풀 꺾였다.각 교단들은 이와 관련, 환영의 뜻을 내비침에 따라 한동안 머뭇거렸던 대북지원이 활발히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각 교단 및 교계연합단체들은 북핵문제가 터지자마자 성명서를 발표하고 북 핵실험에 대해 핵무기 전면 폐기를 주장했었다.그러나 북핵 대처 방법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