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장수경 기자] 병자호란은 흔히 굴욕의 역사, 치욕의 역사로 인식되며, 전쟁의 발발과 참패가 당시 국왕을 포함한 지배층의 무능과 한계, 즉 국제 정세에 대한 오판이나 국방 태세의 해이에서 초래됐다는 점이 강조됐다. 그러나 이러한 주류적 해석은 그것과 상이한 사실을 전해주는 당대의 또 다른 기록들을 주목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재고할 필요가 있다.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기록을 검토해 보면 인조반정의 집권 세력 역시 광해군과 마찬가지로 후금, 청의 군사적 위협과 조선의 전력 열세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으며, 그 바엉책을 집권 초기부
[천지일보 중국=장수경 기자] 30일 오전 중국 허투알라에 청나라 초대 황제 누르하치가 세운 첫 번째 도읍지 허투알라성이 당시 세워진 모습 그대로 복원돼 있다. 1616년 누르하치는 이곳에서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올라 자신의 호칭을 ‘한(칸, 汗)’으로 부르게 하고 국호는 ‘후금(훗날 청나라)’으로 정했다. 성 건물 왼쪽은 누르하치가 정사를 보던 ‘한궁대아문(汗宮大衙門)’이며 오른쪽은 누르하치와 부인의 침궁이다.
국립중앙도서관 초청 강연[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청나라 외교문서를 통해 본 청나라와 조선의 관계를 알아볼까.18일 국립중앙도서관(관장 박주환)에 따르면, 25일 금요일 오후 2시 디지털도서관 대회의실에서 홍성구 경북대 교수를 초청해 ‘청나라 외교문서, 청-조선 관계의 변화를 담다’라는 주제의 고문헌강좌를 개최한다. 홍 교수는 ‘대청제국(1616~1799)’을 번역해 출간하는 등 오랫동안 청나라의 역사를 전문적으로 연구해온 학자다.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된 8장의 ‘청태종조유(淸太宗詔諭)’는 청나라 태종(재위기간:1626~1643)의 명
인터뷰|이기봉 국립중앙도서관 학예연구사후삼국, 고려시대 거치면서 한자의 소리 읽게 돼대한민국, 한양, 한강의 ‘한’은 우리말[천지일보=장수경 기자] “탄항리(灘項里)는 ‘여울목’, 이포리(梨浦里)는 ‘배개’라 불렀죠. 우리말 땅이름, 참 아름답죠?”이기봉 국립중앙도서관 학예연구사는 “우리말 땅이름을 부르는 게 당연하지만, 다른 문명권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사라졌다”며 안타까워했다.처음에는 한자의 뜻을 땄을 경우 뜻으로, 소리를 땄을 경우 소리로 읽었지만 후삼국과 고려시대를 거치면서 한자의 뜻을 땄든 소리를 땄든 표기된 한자의
아픔 담긴 장소지만 관광객 이어져인조, 남한산성 남문 통해 산성 들어가청나라 12만 대군 주둔한 곳 훤히 보여수어장대, 옹성 등 군사적 시설도 남아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치열했던 47일간의 역사를 담은 남한산성 이야기가 최근 영화로 제작됐다. 개봉 7일 만에 300만명을 돌파하는 등 국민의 관심을 받고 있다. 엄동설한인데다 식량부족까지 덮친 악조건. 싸워야 할지, 항복해야 할지 조선의 왕 인조는 선택해야 했다. 밤낮없이 고뇌로 씨름해야 했던 남한산성의 현장에서 그날의 숨결을 다시 한번 느껴봤다.◆정묘호란에 이어진 병자호란경기도
세계 3대 기호음료 속해中서 유래 ‘신농설’에 등장신농, 찻잎 먹고 해독돼韓 고려 때 향차 세계 수출[천지일보=박선혜 기자] 한국인에게 “어떤 차 드실래요?”라고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커피요”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커피는 열매로 만든 음료라 차(茶)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영어권에서도 커피는 차(tea)에 포함되지 않는다. 차는 차나무의 잎을 가공해 음료로 마시는 것으로, 커피·코코아와 함께 ‘세계 3대 기호 음료’로 불린다.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차가 정신을 맑게 하며, 마음을 다스리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것에 도움을 준다고 여
역사학계 갑론을박… 한국고대사 학술회의서 여진史 귀속 문제 논의 이도학 교수 여진 세운 金 시조·국호 ‘신라서 유래’ 문헌 확인 조우연 교수 유물·유적에 차이 있어 한반도, 자체문화 형성 [천지일보=김성희 기자] 여진족의 역사를 한국사에 넣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역사학계가 들끓고 있다. 지난 20일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열린 ‘한국고대사의 시공간적‧문헌적 범위’를 주제로 한 학술회의에서 ‘한국사의 확대 과정과 여진사(女眞史)의 귀속 문제’가 논의됐다. ◆“고구려, 발해는 한국사 편제… 동일지역서 활동한 여진족만 애매” 이 자리에서
[천지일보=김성희 기자] 여진족 역사를 한국사에 넣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국전통문화대 문화유적학과 이도학 교수는 20일 열릴 ‘한국고대사의 시공간적·문헌적 범위’라는 주제의 학술회의에 앞서 발표한 논문을 통해 청나라 이전의 여진족의 역사는 중국사로 볼 수 없다면서 한국사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만주 지역에서 생성과 성장·소멸을 거듭했던 종족의 역사 가운데 부여와 고구려, 발해는 한국사에 편입됐는데 동일하게 만주 지역에서 활동했던 여진족의 역사는 애매한 상황이 됐다”고 지적한다. 또한 이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가노라 삼각산아’ 김상헌 作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고국의 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시절이 하도 수상하니 돌아올 동 말 동하여라. [천지일보=김지윤 기자] 조선 역사상 가장 비참하게 패배를 안겨주었던 병자호란이 발발했을 당시다. 나라와 왕실을 겨우 지켜낸 인조는 청나라에 항복문서를 바칠 때 절해야 하는 수치를 겪어야만 했다. 조정은 청나라와 싸워야 한다는 척화파 즉 주전파와 타협을 해야 한다는 주화파로 나뉘었다. 예조판서였던 김상헌은 척화파 일원이었다. ‘가노라 삼각산아’는 패전국의 전범자로 몰린 그가 주상께 하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