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남인사 마당 야외무대서 개최… 원로·중견·신진 시인 참석[천지일보=임문식 기자] ‘시민(詩民)과 함께하는 시(詩)의 날’ 행사가 내달 1일 열린다. 이날 오후 2시 30분부터 5시까지 서울 인사동 ‘남인사 마당 야외무대’에서 열리는 행사는 ㈔한국현대시인협회(이사장 김용재) 주관, ㈔한국시인협회(회장 윤석산)가 공동 주최, 종로구청과 한국다선문인협회 후원으로 치러진다. 올해로 32회째인 이번 행사에서는 이근배, 이향아 등 원로 시인을 비롯해 문단의 중견 신진 시인이 두루 참석해 시민들과 함께 시의 축제를 벌인다.방송인 이상용 씨
겨울밤박용래(1925~1980)잠 이루지 못하는 밤 고향집 마늘밭에 눈은 쌓이리.잠 이루지 못하는 밤 고향집 추녀 밑 달빛은 쌓이리.발목을 벗고 물을 건너는 먼 마을.고향집 마당귀 바람은 잠을 자리.겨울밤은 길다. 긴 겨울밤 잠을 이루지 못하는 한 사람을 만난다. 눈물의 시인이라고 불리던 박용래 시인. 술이 취하면 이내 누구를 만나도 울면서 이야기를 하던, 이야기를 하며 울며, 울며 밤을 새우던 시인. 정감이 넘쳐나 그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던 시인.잠 못 이루는 겨울밤 고향을 생각한다. 이리저리 뒤척이다 이내 자신이 태어나고 또 자
다 쓰여진 치약에게이선영쥐어짜고 쥐어짜다안 되면 자른다자르고 또 쥐어짜낸다옹색한 살림살이를 가진 이 세상이마지막 진액까지쥐어짜내진말라붙은 육신 한갓 껍데기하필 가난한 집에 팔려 와죽도록 고생만 하다 가는구나기박한 일생이여지금은 물자가 너무 넘쳐나 문제가 된다. 오래지 않은 시절 우리네 살림에는 절약이라는 것이 몸에 배어 있던 때도 있었다. 화장실에는 요즘의 화장지가 아닌 신문지를 자른 것이 매달려 있었고, 형이 입던 교복을 동생이 물려받아 입기가 십상이었다. 치약도 튜브에서 나올 때까지 쥐어짜서 썼다.쥐어 짜이는 치약을 바라보며,
가마솥에 대한 성찰복효근(1962~ )어디까지가 삶인지… 다 여문 참깨도 씹어보면 온통 비린내 뿐 이쯤이면 되었다 싶은 순간에도 또 견뎌야할 날들은 남아참깨는 기름집 가마솥에 들어가 죽어서 비로소 제 몸을 참깨로 증명하는구나 그렇듯 죽음 너머까지가 참깨의 삶이라면 두려운 것은 죽음이 아니다 살과 피에서 향내가 날 때까지 어떻게 죽음까지를 삶으로 견디랴 세상의 가마솥에서 참 삶까지는 멀다 참깨는 볶아지고 으깨지고 또 짜여져서 향기가 고소한 참기름으로 다시 태어난다. ‘기름집 가마솥에 들어가 죽어서 비로소 제 몸을 증명하는’ 참깨. 죽
에펠탑조병화(1921~2003) 에펠탑 100주년광장엔 까만 흑인들뿐이었다.물건 사라고에펠탑은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워진 파리를 상징하는 탑이다. 탑이 세워진 해가 1889년이니, 100년 기념은 1989년이 된다. 100년이라는 새로운 세기를 맞는 해, 기념을 하기보다는, 기념을 하기 위하여 오는 사람들에게 물건을 팔기 위한 흑인 장사꾼들만이 버글거리는 풍경을 바라보며, 시인은 이 시대는 무엇을 기념하는 의식보다는, 자신의 개인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더 우선이 되는 시대임을 이렇듯 절감하고 있다. 혁명도,
律呂集 9- 눈 오는 저녁정진규(1939~)싱싱한 돈절(頓絶)이 사흘째 하얗게 켜로 깔리고 있다 이제 가장자리까지 아득히 지웠으니 기다리지 않고도 시가 되는 저녁이 곧 오리라 죽음의 봉분까지 하얗게 평토(平土) 치는 폭설이여, 싱싱한 돈절이어 광(光)케이블까지 빗장 걸고 실로 오랜만에 외로움의 속살을 고맙게 만지고 있다 외로움이 무한 증식되고 있다눈이 오는 날, 몇 날 며칠 오는 눈 속에 갇히어 눈과 함께 눈이나 바라보며 지낼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눈이 왔으므로 세상이 모두 눈으로 뒤덮여 모든 경계가 없어진 세상. 그래서
눈김종해(1941~)눈은 가볍다서로가 서로를 업고 있기 때문에내리는 눈은 포근하다서로의 잔등에 볼을 부비는눈 내리는 날은 즐겁다눈이 내릴 동안나도 누군가를 업고 싶다하늘에서 눈이 내린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얀 눈들이 가볍게 날리듯 내린다. 먼저 떨어지는 눈을 따라 뒤의 눈이 내리고, 또 그 뒤의 눈이 서로 엉기듯 내리고. 눈이 내리는 하늘을 올려다보면, 눈들은 마치 서로가 서로를 업고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듯하다. 서로가 서로를 업어주는 마음.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 함께하는 마음. 눈이 오는 날은 누군가에게 정답게 기대고 싶
고향조말선(1965~)벗어놓은 외투가 고향처럼 떨어져 있다내가 빠져나간 이후에 그것은 고향이 되었다오늘 껴입은 외투와 나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하면한 번 이상 내가 포근하게 안긴 적이 있다는 것이다나는 비로소 벗어놓은 외투를 찬찬히 살펴보는 것이다내가 빠져나가자 그것은 공간이 되었다후줄근한 중고품더 이상 그 속에 있지 않은 사람의 언어 고향은 내 본향의 냄새가 묻어 있는 곳이다. 고향은 내가 포근하게 안겨 있던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향을 생각하면, 그 포근하고 정겨운 냄새가 나는 듯하다. 지금 내가 막 벗어놓은 외투에는 나의 냄
이야기를 잔뜩이탄(1940~2010)4월 8일은 새로 쓰는 날, 우리의 우주인이 탄생한 날이다소련이나 미국한테는 고궁의 뜨락을 청소하는 날이다요리조리 피하여 다니는피하다가 무릎을 다쳤다는 서툰 걸음3Cm가 더 자라났다는 이야기물이 없어서 오줌을 다시 물로 만들어 쓴다는 이야기창문을 열어주고 지구의 색이 푸른색이라는 이야기지구는 나라별 구분이 없다고 하는 이야기귀환하는 때 이야기를 잔뜩 갖고 올 것 같다귀환할 때 3㎝가 다시 졸아들겠지만우리의 로켓으로, 팔월이면 움직일 수 있다고 하니소유즈는 신세를 지지 않을 것 같다. 우주선을 쏜다
노을 김수복(1953~)왜 열일곱에 시집왔어요? 아부지가 소녀공출 안 보낼러고 보내부렀어 함평 산암 할머니들 고생한 거 착으로 써먼 몇 권으로도 모자라! 열일곱에 시집을 와서 함평 산골에서 한평생을 사시는 할머니들. 젊디젊은 시절 일제의 처녀공출을 피하기 위하여 아버지가 시집을 보내서, 그래서 시집을 와서 이적까지 그렇게 사셨다는 할머니들. 시집가는 것이 다른 무엇이 아니고, 다만 소녀공출 피하는 길이었던 할머니들. “고생한 거 착으로 써먼 몇 권으로도 모자라!” 굽이굽이 지나온 삶이듯, 굽이굽이 이어진 산골 작은 마을에 평생을 사
소금 이건청(1942~)폭양 아래서 마르고 말라, 딱딱한 소금이 되고 싶던 때가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쓰고 짠 것이 되어 마대자루에 담기고 싶던 때가 있었다. 한 손 고등어 뱃속에 염장질러 저물녘 노을 비낀 산굽이를 따라가고 싶던 때도 있었다. 형형한 두 개 눈동자로 남아 상한 날들 위에 뿌려지고 싶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이 딱딱한 결정을 버리고 싶다. 해안가 함초 숲을 지나, 유인도 무인도를 모두 버리고, 수평선이 되어 걸리고 싶다. 이 마대 자루를 버리고, 다시 물이 되어 출렁이고 싶다. 물건이 썩는 것을 막고
싱그러운 느낌표유봉희(1944~)! 는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있다 동그란 머리 땅에 놓고 긴 다리 하늘로 올렸다 아이들이 물구나무서기를 즐거워하듯 물구나무서서 세상을 다른 눈으로 보듯 저기 산도 물구나무로 서 있다 제 품에 물고기 몇 마리 품고 호수가 몰래 스냅 한 장 찍는 것도 모르고 물구나무선 세상의 모든 것들을 바라보며 !!!!!!!!!!!!!!!!!!!! 물구나무서는 내 마음의 느낌표들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고, 일을 하고, 퇴근을 해서 소주라도 한 잔 마시고 집으로 돌아와 잠을 자고, 또 그 다음 날도 그렇듯, 그렇듯 반복하는
낮 꿈조영서(1932- )지하철 안에서 깜빡 졸았다그 틈에하늘이 한강을 건너 달리고 있다파랗게,바람을 바퀴에 휘감고끝이 보이지 않는사람을 태운 열차 한 칸이 높게 떠있었다뜬구름 사이로하늘은 꿈을 깨자 다 어디 가고 없었다거, 참! 도심을 벗어난 지하철은 한강을 건너기 위하여 지상철이 된다. 잠깐 잠이 들었다가 눈을 뜨니 지하의 컴컴함을 벗어나 지상의 밝음 되었다. 어느덧 파랗게 바람을 바퀴에 휘감고 한강다리를 건너고 있구나. 한 생애도 이러했으리라. 한 잠 자듯이 잠깐 졸고 나니, 지하철이 지상철이 되고, 지상철이 다시 지하철이 되
미시령 노을이성선(1941-2001)나뭇잎 하나가아무 기척도 없이 어깨에툭 내려앉는다.내 몸에 우주가 손을 얹었다너무 가볍다 미시령은 설악의 웅장한 품속을 구불구불 파고들듯 나 있는 고갯길이다. 크나큰 산들의 가슴이 그윽이 품고 있는 듯한 고갯길 미시령. 핏빛 노을이 멀리 바라다 보이는 고요의 시간, 나뭇잎 하나 아무러한 기척도 없이 어깨에 툭하고 내려앉는다. 마치 미시령을 감싸고 있는 설악이 그 손을, 아니 설악을 품고 있는 우주의 적막이 손을 얹어놓듯이.너무 가볍다. 아무 기척도 없이 내려앉는 나뭇잎 하나. 아니 만유를 품고 있
달맞이꽃이홍섭(1965 --)한 아이가 돌을 던져놓고돌이 채 강에 닿기도 전에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다어디로 날아갈지 모르던돌 같던 첫사랑도 저리했으리그로부터 너무 멀리 왔거나그로부터 너무 멀리 가지 못했다. 강가에서 강을 향하여 돌팔매를 하던 시절 누구에게나 있었다. ‘돌팔매’, 그저 강을 향해 던지던 돌팔매질. 그것은 누구를 향한, 또 누구를 맞히고자 하는 것도 아닌, 그저 덧없는 자신을 향한 돌팔매질이기도 하다. 우리 삶의 첫사랑은 바로 우리가 던지던 돌팔매질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러한 조건도, 따짐도 없이 만나고 사랑했
가을 외출김경희(1950 --)가을은 門이 되고 있다펑벌레 먹은 열매의 아름다움 속으로 난 길 밖으로늙은 悲哀의 내肝 하나, 잎새 하나, 가방 하나우주 外로 새어나간다.위에서는 누가,등으로 門을 닫는다. 무더운 여름인가 했더니, 벌써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다. 낙엽, 우수, 그리고 수확을 연상시키는 가을. 벌레 먹은 열매가 아름답다. ‘펑’ 열매 속으로 난, 벌레들이 만들어놓은 아름다움을 따라 늙은 비애, 내 간(肝) 하나, 잎새 하나, 가방 하나, 아득히 우주 밖으로 새어 나가는듯한, 아! 공활(空豁)한 가을. 모
신선한 불안장순하(1928 - )“저예요”가 익은 귀에“저거든요”라고 한다.한 음절이 늘어난 사정요모조모 헤아린다손덤벙 발덤벙하는이 신선한 불안감. 요즘 사람들의 말을 듣다가 보면 알 수 없는 말이 참으로 많다. 알 수 없는 말 뿐만이 아니라, 무슨 말인지 그 진의를 잘 모를 때도 많다. 어떤 확실한 대답을 하면서도 “그런 것 같아요.”라고 답한다. 그런가 하면, “됐걸랑요”한다. 됐다는 것인지, 되지 않았다는 대답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니 듣는 사람은 ‘손덤벙 발덤벙’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신선함’과 ‘불안함’, 이 두 양자
불황기의 사랑백인덕(1964 --)그는 그녀를 집으로 끌고 다녔다ㅡ 울산집, 아줌마집, 과부집그는 그녀를 방으로 끌고 다녔다ㅡ 섬다방, 금강다방, 차다방그는 그녀를 논으로 끌고 다녔다- 존재론, 예술론, 우주론그녀가 집이 싫증났다고 하자 그녀를 너무 사랑하는 그는 그녀를 성으로 데려 갔다ㅡ 만리장성, 자금성, 소주성 우리가 사는 오늘은 여느 시대보다 풍요한 시대라고 말한다. 특히 물질의 면에서 그렇다. 그러나 이러한 풍요의 시대를 살면서도 우리는 ‘불황’을 느낀다. ‘불황’,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 느끼는 그 불황은 물질의 불황이
다시 태어난다면이유경(1940- )바다에 가서 물총을 쏘며 문어처럼 살고 싶다해삼과 전복의 숨은 동무가 되어그들 단단한 내면을 욕심내면서내 쓰라린 삶 모두 지우고 싶다수십 차례의 계절 지나고서 다시 태어난다면 고려 속요인 은 청산에 가서 머루랑 다래랑 먹으며 살고 싶다고 노래한다. 또 바다에 가서 조개랑 해초랑 먹으며 살고 싶다고 노래한다. 얼마나 현실적인 삶이 어려웠으면, 인적이 없는 청산이나 바다에 가서 살겠다고 노래를 했겠는가.우리가 삶을 살다가 보면, 이러한 이 저도 모르게 흥얼거려질 때가 있다. 그래서
겨울 주례사조정권(1949 - )언 호숫가 겨울나무가 서 있다.흰 눈의 면사포를 쓰고 있다.눈이 온다.일생 겨울숲 속에서 밑 둥은 얼어있을 것이다.바람 속에서견디고 있는 마음과벌서고 있는 마음진정 두 마음은 한마음임을 약속하겠는가. 어찌 보면, 산다는 것은 견디는 것인지도 모른다. 산다는 것은 세상으로부터 벌을 서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겨울숲 속 언 땅에 밑 둥을 박고,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서서 견디는 것. 그것이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더더구나 혼자도 아닌 둘이 하나가 되어, 한 마음을 이루고, 나아가 한 사회를 이루며 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