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경기 용인에서는 현직 교사가 또 목숨을 끊었다. 지난달 31일과 이달 1일에 이어 나흘 새 3명째다. 이번에 숨진 교사는 고교에서 체육을 담당하고 있는 60대 남성으로 정년을 1년가량 남겨둔 상태였다. 고인은 체육 수업 중 자리를 비운 사이 학생 한 명이 다른 학생이 찬 공에 맞아 수술이 필요할 정도로 크게 다치는 사고가 일어나 피해 학생 측으로부터 고소당하고, 교육청 감사를 받고 있었다고 한다.교사들의 연쇄적인 죽음은 지난 7월 서울 서초구 초등학교에서 숨진 20대 교사 이후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서 충격과 심각성을 더하
박관우 역사작가/칼럼니스트경술국치(庚戌國恥) 이후 1915년 의친왕(義親王)은 상해에서 이상설(李相卨), 박은식(朴殷植), 신규식(申圭植), 조성환(曺成煥), 류동열(柳東說) 등이 중심이 되어 결성된 독립운동단체 신한혁명당(新韓革命黨)에서 고종황제(高宗皇帝)를 당수(黨首)로 추대하고 베이징(北京)으로 망명시키려고 할 때도 본 사건에 연루되었다.관련해 당시 중대한 임무를 부여받고 서울로 잠입한 외교부장 성낙형(成樂馨)을 비롯하여 의친왕의 장인 김사준(金思濬), 김사홍(金思洪), 김승현(金勝鉉), 변석붕(邊錫鵬), 김위원(金胃元), 심
박종도 ㈔겨레얼 살리기 국민운동본부 이사, 답게살겠습니다 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 나라를 일제 침략에 강탈당하며 희생양으로 끌려간 원한 맺힌 영혼들이 광복 72년 만에 고국의 품에 안겼다.‘일제 강제징용 희생자 유해봉환위원회(봉환위)’는 일본 도쿄(東京) 히가시무라야마시(東村山市) 하기야마조(萩山町) 소재 재일동포 사찰인 국평사(國平寺)에 안치돼 있는 일제강점기 조선인 무연고 유골 약 300구 중 신원 파악이 된 101구를 한국에 모시기로 하고, 지난 8월 6일 1차로 국평사로부터 33구의 유골함을 전달받아 7일 모시고 왔다.이들은 어
전경우 작가, 문화 칼럼니스트 2001년 1월 이수현씨는 일본 도쿄의 한 지하철역에서 선로에 떨어진 승객을 구하기 위해 뛰어내렸다가 열차에 치여 목숨을 잃고 말았다. 당시 이씨는 고려대 학생으로 일본에 유학중이었다. 스물여섯 꽃 같은 나이였다. 벌써 14년 전 일이다. 우리들도 그의 이름을 잊지는 않았지만, 세월 따라 기억도 점차 희미해져가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고 이수현씨의 고귀한 뜻이 잘 이어져 오고 있다. 사고 이후 그가 다니던 학교로 보내져 온 성금을 기반으로 장학재단이 만들어져 지금까지 700명 가까운 동남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