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바야흐로 송구영신의 때다. 이는 필자의 말도 주장도 아닌 구전과 성인과 모든 경서와 만물이 알려 왔고, 나타난 이 시대가 이를 알리고 있으며 나아가 입증해 주고 있다.예부터 선진들이 천지분간하라 해옴도 이때가 왔을 때 보내야 할 천지와 맞이해야 할 천지를 분간하라 한 것이며, 낡고 쇠하여져 없어지는 천지가 아닌 영원한 새 시대 곧 새로운 천지를 확인해 맞이하라는 당부였다.이를 분간할 수 있는 것도 약속된 새 시대의 실체가 약속대로 정한 때가 돼 나타남으로 인해 비로소 확인이 가능해지며 분간도 할 수 있으니 이 또한 만고의 이치
세상만사엔 이치라는 게 있다. 이 이치는 어쩌면 법 위에 있을지도 모르며, 이 같은 이치가 있기에 세상은 그래도 굴러가는지도 모르겠다. 이로 보건대 세상 법과 이치는 마치 율법과 자유율법의 관계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 같다.이 세상에서 이치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는 표현이 있다면 ‘뿌린 대로 거둔다’는 속담일 것이다.세상 농사법에서도 알 수 있듯이, 콩 씨를 심었으면 어김없이 콩이 열리며, 팥 씨를 심었으면 팥이 열리는 게 당연하니, 이치란 어쩌면 당연한 것을 말한다고도 볼 수 있겠다.그런데 문제는 이처럼 당연한 것을 당
소(牛), ‘소’하면 일을 떠오르게 하고 나아가 일꾼을 연상시키는 가축(家畜) 즉 육축(六畜: 소, 말, 개, 돼지, 양, 닭) 중 하나다.이렇게 접근하다 보니 우리가 말하는 소는 농부(주인)의 손에 이끌려 ‘밭 가는 소’가 아닌 ‘소같이 일하는 사람’을 이면에 두고 있었으니, 그 소는 소가 아닌 소같이 일하는 충직한 사람임을 알 수 있다.이 대목에서 놓쳐선 안 될 깨달음이 있다. 밭 가는 소가 스스로 하는 게 아니고 주인(농부)에 의해 부려지듯이, 소 같은 사람 역시 누군가(주인, 농부)에 의해 부려진다는 사실이다.그래서인지 소는
필자는 기자(記者)다. 기자란 알 권리를 가진 독자(국민, 인류)에게 그때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제공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가진 시대적 사명자다. 필자는 기자를 사명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 중에 지극히 작은 한 사람일 뿐이다.필자가 알고 깨달은 진리 하나가 있으니 그것은 지금은 바야흐로 송구영신의 때라는 사실이다. 어찌 이같이 엄청난 진리를 이 못난 필자에게까지 알게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필자는 지금 이 시대가 송구영신의 때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이 한 가지다.송구영신(送舊迎新)이란 가고 오는 한 해를 넘어 옛(
외교부 공식인가 사단법인 세계경제문화교류협의회(ECI, 류영준 총재)는 일본 내 이방자 여사 관련 왕실인 이본궁기념재단, 덴리대학과 지난해 12월 27일 ECI갤러리에서 몽유도원도 국내 환수를 위한 계약을 체결했다.이본궁기념재단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비인 영친왕비 이방자 여사의 황실가문으로 우리나라와는 인연이 깊다. 덴리대학(천리대학)은 몽유도원도 일체가 소장돼 있는 곳이다.ECI는 이본궁기념재단 중요문화재 증여에 관한 협정서(2022년 3월 14일)와 덴리대학 기부행위확약서(2021년 10월 20일)에 의해 지난 2022년 1
다가올 2024년은 갑진년 청룡의 해다. 지금 온 세상은 용의 해를 앞두고 기대감으로 들떠 있다. 이를 어쩌나, 용은 그 운명을 다해가며 마지막 숨을 헐떡이고 있으니 말이다.지구촌과 우리 인생은 원하지 않는 어떤 사연으로 인해 긴긴 세월 용의 권세와 주관 아래서 살아와야 했었다.우리에게 생로병사가 있어야 했고 흥망성쇠가 있어야 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면 얼마나 이해할까.이제 해 아래서 밝혀지지 않을 것이 없는 때를 맞이했다.그동안 용이 우리 인생과 지구촌을 통치해왔지만, 이젠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의 주인 되신 하나님이 통치
프랑스의 수학자이며 철학자, 신학자, 사상가로 유명한 파스칼은 “인간은 자연 가운데 가장 약한 하나의 갈대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것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말을 남겼다.과연 그러할까. 그러하다. 그 답은 파스칼과 같은 우리 인생이 아닌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에서 찾을 수 있다.2000년 전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던 세례요한은 돌연 예수님이 진정 하나님이 보내신 자인지에 대한 회의감이 들게 됐다.그리고 예수님은 세례요한의 흔들리는 믿음에 대해 제자들에게 이르기를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에 비유했다.즉, 우리 인생은
최근 괄목할만한 뉴스 하나가 세간에 관심을 끌고 있다. 전쟁과 죽음과 공포가 뒤덮인 작금의 현실과는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팩트인 것만은 분명하다.네델란드 건축가인 요한 휘버스씨는 2012년 완성한 모형 노아의 방주(길이 약 125m, 너비 약 29m, 높이 약 23m, 무게 3000톤, 7층 구조, 비용 약 57억원, 약 7년간 제작)를 한국에 기증할 의사를 밝혀 화제가 되고 있다.휘버스씨는 한국 기증에 대해 ‘분단된 한반도의 평화염원’을 그 이유로 들었다.노아의 방주, 경에 의하면 하나님은 부패한 아담세계를 홍수로 쓸어버릴
세상엔 만고불변(萬古不變)의 이치 하나가 있다. 그중 하나가 농사의 이치다. 이 농사의 이치를 모르고 다른 세상 이치를 말할 수도 없고 또 말해서도 안 된다.그만큼 농사법 곧 농사의 이치 속엔 대자연의 섭리이자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대서사시와 같은 인류구원의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있으니 부인할 수 없다.지금은 이전 때와같이 살아가는 시대가 결코 아니다.이제 정한 때가 되어 길고 긴 세월 회자 돼온 진정한 송구영신의 시대가 눈앞의 현실이 돼 있기 때문이다.송구영신(送舊迎新), 이는 한 시대가 가고 또 한 시대가
인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누구라도 한 번쯤은 고민해봄 직한데, 얼마나 생각해 봤을까.인류는 산에서 시작했고, 시작한 지 몇 날이 지나지 않아 창조주 하나님과 인생들이 원치 않는 사연에 의해 긴긴 세월 방황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며 살아왔고, 이제 다시 그 산 곧 버려졌던 산이 회복되고 있다.그 산은 과연 어떤 산이며 또 어느 산일까.그 산은 바로 동방의 에덴동산이며, 동방의 에덴동산이 회복되므로 인해 지구촌은 그야말로 참된 세상으로 변화(소성)돼 갈 것이다.지금까지 인류가 고된 삶 즉, 고통의 나날을 견뎌온 이유가 여기에 있
과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자유가 있는가. 여기서 말하는 자유는 진정한 자유 곧 ‘참 자유’를 말한다.자유 곧 참 자유는 거저 오는 게 아니라 이김으로 오는 것이며,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되찾는 것이다.우이독경(牛耳讀經)이 돼 버린 악한 세대에 누가 이 말을 알아듣겠는가. 그래도 들을 귀가 있는 자가 있을까 해 오늘도 힘을 내 써 내려간다.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자유는 무엇인가.작금의 시대는 송구영신(送舊迎新)이라 하듯, 형이하학적 차원을 넘어 형이상학적 차원에서 매사를 진단하고 분석하고 현실을 직시해 살아가야만
세상에는 표면과 이면이 있고, 겉과 속이 있고, 거짓과 참이 있다. 중요한 것은 전자에 속해 살아가야 하는 때가 있고, 후자를 깨달아 살아가야 하는 때가 있다는 사실이다.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께서 정해 놓은 세상은 이 두 가지다. 이 두 가지의 세상은 사람이 어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창조주께서 정해 놓은 기한과 때가 있으며, 그 정한 때가 차면 정한 사람을 통해서만이 알 수 있게 했다.이것이 계시(啓示)며, 계시시대며, 참 종교(宗敎)의 시대다.따라서 그 정한 때가 되어 정한 사람을 통해 알려주기 전에는 천상천하 그 누구도
예부터 “천지분간 좀 하고 살거라”라며 부모님이나 이웃 어른 나아가 직장 상사한테 듣지 않고 자란 사람은 아마 없을 것 같다. 이는 한마디로 분별력을 가지라는 어른들의 책망이며 사랑이 아니었을까 싶다.우리는 무심코 내뱉는 말이지만, 언중유골(言中有骨)이란 말처럼 그 말속엔 가히 상상할 수조차 없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이를테면 “말이 씨가 된다” “복 받아라, 복 받아라” “용용 죽겠지” 등 구전돼 내려온 ‘말말말’ 속엔 깊은 의미를 넘어 엄청난 비밀이 내재 돼 있었다.예부터 구전되고 배달돼온 말은 사실 장차 이룰 예언이었다.
이 세상이 존재하고 유지하고 발전해 나가기 위해 절대 필요한 게 있다면 각자의 역할이다. 인류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각자의 역할이 있고, 그 역할 중 한 가지가 있으니 기자(記者, reporter)라는 직업군이다.기자의 역할은 독자(시청자, 국민)들에게 사회와 나라 나아가 세계에서 일어나는 정보(뉴스)를 편견과 가감 없이 신속 정확하게 알려야 하는 아주 특별한 사명을 가지고 있다.이제 생각해 볼 것은 일반적 기자의 사명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지만,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하는 또 다른 차원의 기자도 있음을 알리는 바다.우리는 흔히 형
땅끝 동방(東方) 한반도 남단 동쪽과 서쪽엔 예사롭지 않은 큰 산이 각각 위치해 있다. 동편엔 온 인류가 와서 기댈만한 ‘큰 언덕’이라는 뜻을 가진 대구(大邱)를 품고 있는 ‘팔공산(八公山)’이 있고, 서편엔 ‘빛고을’이라는 뜻을 가진 광주(光州)를 품고 있는 광주의 어머니 산 곧 ‘무등산(無等山)’이 있다.창조주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은 각기 이름이 있고, 그 이름은 이름값을 하게 된다. 이름값을 한다는 것은 이름처럼 된다는 의미며, 이는 만고불변의 이치 중 이치다.그렇다면 지음 받은 이름은 예언이며 그 예언은 정한 때가 되면 이름
삼월, 이제 삼월도 몇 날이 남지 않았다. 삼월이 다 가기 전에 못다 한 노래가 있어 또다시 펜을 들었다. 우리 민족은 삼월 하면 왠지 습관처럼 그날이 생각난다.그날은 104년 전 파고다공원에서 시작한, 대한독립만세 소리가 병천 아우네 장터를 지나 삼천리 방방곡곡에 울려 퍼졌고, 태극기 물결은 온 나라를 휘감던 바로 그때다.3.1독립운동, 이 3.1독립운동은 3.1정신에서 기인됐고, 그 정신은 진리(道義)와 자유와 자주와 독립과 평화와 인류 사랑이었다.이러한 3.1정신은 구한말 내우외환(內憂外患)의 시대적 상황에서 종교지도자 33인
하늘이 어디일까. 저 푸른 창공이 하늘이라면 ‘떨어진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하늘이 무너진다 했으니, 이 땅에 세워졌거나 창조된 것이 부패하고 낡고 쇠하여지고 잘못돼 없어지는 게 분명해 보인다.천지일보를 통해 늘 말해왔듯이, 이제 때는 바야흐로 형이하학적 시각에서 벗어나 형이상학적 시각과 차원으로 우리의 생각을 업그레이드 시켜야 하니 찾아온 시대가 강하게 요구하는 바다.경(經)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다. ‘땅에 속한 이는 땅에 속한 것을 말하고, 하늘에 속한 이는 그가 보고 들은 것을 말한다’고 했으며, ‘육에 속한 사람은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우리의 의식 속엔 이미 생로병사라는 결론을 내려놓고 살아가고 있다. 그것이 과연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의 뜻일까. 그렇다면 우리는 살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죽기 위해 사는 모순의 주인공인 셈이다. 세상사 모든 것이 이와 같으니 ‘짜가 세상’이라 하듯, 우리뿐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 역시 모순과 거짓과 왜곡의 세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인류사에서 이 같은 모순과 타협하지 않고 창조주께 따지듯, ‘이 생로병사가 어디서 왔습니까’ 또 ‘하나님의 뜻이 생로병사가 맞습니까’ 하
지금은 천지분간(天地分揀)의 때다. 오랜 세월 민간에 전해 온 ‘천지분간 좀 하며 살라’고 한 것도 이때를 염두에 둔 말이다. 경(經)의 시작과 끝에도 ‘천지’며, 한자 공부의 시작도 ‘천지’다. 이는 천지분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리는 증거가 된다. 하지만 지금의 때는 형이하학적 차원이 아닌 형이상학적 차원의 시대라는 정도는 알아야 한다. 즉, 문자 그대로도 아니며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의미다. 다시 말해 눈에 보이는 것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알고 찾아야 하는 시대 즉, 형이상학적 차원의 시대니 곧 계시(啓示
지금 한반도엔 대체 무슨 일이 진행되고 있을까. 눈에 보이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도무지 알지 못한 채 그저 자기 생각과 삶에 골몰할 뿐이다. 필자는 눈에 보여 많은 사람들에게 이미 회자되고 있는 얘기는 그만하고 싶다. 뉴스 홍수시대를 만나 모두가 다 알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론 답도 없는 얘기, 그저 그런 얘기는 이미 필자가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이 거론하고 있다. 다만 필자는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내용, 그러나 이 시대가 반드시 알고 깨달아야 할 엄청난 사실을 알리고 싶을 뿐이다. 기자(記者)는 일반 세상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