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일은 1919년 3월 1일 대한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 지 105주년이 되는 날이다.그날의 만세 소리와 함께 시작된 독립운동은 결국 26년이 지나 1945년 일제 식민치하로부터 대한민국의 독립을 가져왔으며,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했다.이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은 105주년 기념사를 통해 그날의 3.1정신을 되살려 오늘의 한반도 통일을 완성하자고 역설했다.윤 대통령 기념사의 의미는 그날의 독립이 우리가 원하던 독립이 아니었고 오늘의 분단된 한반도를 통일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독립이며, 이 통일을 이루어가는 데 필요한 것이 바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전쟁 중에 많은 아이를 죽이는데, 왜 아무도 그들을 지켜주지 않나요?”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6일(현지시간) 각 대륙을 대표하는 84개국 7500여명의 어린이를 바티칸에 초청해 ‘소년, 소녀들에게 배우자’라는 주제로 만남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시리아 출신의 9세 소년이 교황에게 이 같은 질문을 했다. 소년의 질문에 교황은 “이것이 전쟁의 사악함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시작된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이 어느새 한 달이 넘었지만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새 시대 희망언론 ‘천지일보’가 창간 14주년을 맞았다. 14년 전 본지 이상면 대표는 “중도개혁의 정론지로 세상천지에 없어서는 안 될 신문이 될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당시 종이신문은 이미 사양길을 걷고 있었다. 해서 본지는 기대보다 우려의 목소리를 들으며 세상을 향해 첫발을 내디뎠다.기득권이 자리한 언론 시장에서 본지가 성장할수록 저항은 거셌다. 수많은 논란 속에서도 본지가 초심을 잃지 않고 걸어올 수 있었던 것은 본지가 지향한 ‘중도개혁(中道改革)의 정론(正論)’을 응원해주신 독자 여러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본지가
삼월, 이제 삼월도 몇 날이 남지 않았다. 삼월이 다 가기 전에 못다 한 노래가 있어 또다시 펜을 들었다. 우리 민족은 삼월 하면 왠지 습관처럼 그날이 생각난다.그날은 104년 전 파고다공원에서 시작한, 대한독립만세 소리가 병천 아우네 장터를 지나 삼천리 방방곡곡에 울려 퍼졌고, 태극기 물결은 온 나라를 휘감던 바로 그때다.3.1독립운동, 이 3.1독립운동은 3.1정신에서 기인됐고, 그 정신은 진리(道義)와 자유와 자주와 독립과 평화와 인류 사랑이었다.이러한 3.1정신은 구한말 내우외환(內憂外患)의 시대적 상황에서 종교지도자 33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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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북한의 국호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사회주의 국가 중 유일하게 인민과 민주주의 모두를 조합한 국호를 가지고 있다. 중화인민공화국, 콩고인민공화국 등 어느 사회주의 나라도 인민과 민주주의 모두를 국호에 넣지는 않고 있다. 그런데 최근 북한이 민주주의 수준 평가에서 167개국 중 165위로 또 최하위권을 기록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산하 경쟁력 분석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1일(현지시간) 공개한 ‘2022 민주주의 지수’에서 북한은 올해도 전 세계 최하위권에 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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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5월을 상징이나 하듯 5일 어린이날을 맞았다. 소파 방정환 선생은 1921년 천도교 소년회를 조직해서 국내 처음으로 ‘소년 운동’을 펼쳤다. 아이들도 인격을 갖춘 사회 구성원으로서 존중돼야 한다는 의미로 ‘어린이’라는 개념도 도입했다. ‘어르신’에 대비되는 아이들의 존칭으로 ‘어린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새싹이 돋아나는 5월의 첫날을 어린이날로 정했다가 해방 이후 5월 5일로 변경돼 오늘에 이른 것이다. 딱 100주년이다. 엄혹했던 일제강점기에 어린이들에 대한 사랑과 존중을 인식하고 직접 행동으로 옮긴 소파는 참으로 훌륭한 선
박관우 역사작가/칼럼니스트김응집(金應集)은 1919년 8월 12일 자택에서 ‘국민신보(國民新報)’ 제21호리 명명하고 다음과 같은 내용을 게재했다.“8월 3일자 ‘매일신보’ 3면 기사를 보라. 무도한 당국은 오등의 민의를 대표하고 기울어진 정부를 건설하고 잃어버린 조국을 되돌려 받으려 한 33명 외 13인을 내란죄라고 무법하게 결정 감행하였다. 오등은 일치단결하여 이들 무도한 자들을 일타 엄징함과 동시에 영구한 평화와 안락을 공고히 할지어다. 이는 우리 민족의 사명이며 또한 상제의 법률이다” 제하의 기사를 게재했다.김광집은 또한 8
좀도리 쌀박헌정좀도리 쌀이 있다.밥 지을 때 한 술씩 덜어놓는 쌀.퇴근길, 내 마음의 좀도리를 덜어놓는다.서러운 날 한 줌, 기쁜 날에도 한 줌아무 느낌 없는 날에도 스르르 한 줌그렇게 열심히 좀도리를 모았다.내 청춘 굽어지고,힘들고 힘들어 눈물 핑 돌 때까지,오늘, 바람 부는 유월의 퇴근길술 한 잔에 문득 생각이 났다.어머니가 새벽마다 갈무리 한 좀도리는,지금의 나를 키워준 좀도리는,그 꼬부라진 평생 동안 몇 줌이었을까.나는 오늘도 좀도리 쌀 한 줌을 벌었다. [시평]‘좀도리 쌀’은 ‘절미(節米)’, 곧 쌀을 아낀다는 뜻의 전라도
방재욱 충남대 명예교수영국의 시인 T. S. 엘리어트가 그의 시 ‘황무지’에서 잔인한 달로 비유한 4월을 지나보내고, ‘계절의 여왕’으로 불리는 ‘가정의 달’ 5월이 열리고 있다. 5월이 ‘가정의 달’로 불리는 것은 어린이날(5일), 어버이날(8일), 한부모의 날(10일), 입양의 날(11일), 세계 가정의 날(15일), 성인의 날(17일), 부부의 날(21일) 등 가정과 관련된 기념일들이 많은 달이기 때문이다.5월을 맞이하며 오랜만에 어린이날을 기념하는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오월은 푸르구나 우
3.1절이 지나갔다. 102년 전 3월 1일, 그날의 함성이 역사적 민족적 종교적 인류사적으로 얼마나 큰 가치가 있는 것이었는지 아는가. 왜 그날 선진들은 숭고한 피를 흘려야만 했는지 아는 이가 있는가.오늘날 형식적 요식행사와 함께 나타나는 위정자들의 주장과 발언은 오직 그날의 함성이 주는 메시지와는 사뭇 다른 정치적 수사(修辭)만 가득하니 각골통한(刻骨痛恨)이로다.그렇게 오늘의 3.1절 역시 이 시대 위정자들의 상투적 행사와 위선에 가려져 또 그렇게 잊혀져가고 있다.이러한 안타까운 현실이 3.1절이 한 주가 지난 지금 필자로 하여
박관우 역사작가/칼럼니스트1906(광무 10)년 의친왕(義親王)이 귀국하고 그 이듬해인 1907(융희 1)년 1월에 북한산성에서 거사를 결행하였는데 구체적으로 1월 15일에 의친왕이 북한산성(北漢山城)에 문관 3명, 군관 105명, 민간인 120명 등 총 228명을 비밀리에 소집하여 의병봉기(義兵蜂起)를 독려하는 연설을 하였다는 것이다.여기서 거사가 결행된 시기인 1907(융희 1)년은 헤이그 특사 사건으로 인하여 고종황제(高宗皇帝)가 일제에 의하여 강제로 퇴위되는 불행한 사건이 일어났으며, 1905(광무 9)년 을사늑약(乙巳勒約)
박관우 역사작가/칼럼니스트의친왕(義親王)은 미국 유학생활에 어려움을 느껴 1905(광무 9)년 3월 본국으로 귀국하기 위해 도쿄(東京)으로 돌아왔으나 고종황제(高宗皇帝)의 황명(皇命)에 의하여 다시 미국으로 갔는데 학자금 명목으로 5만원을 보냈다.그 이후 의친왕은 다시 같은 해 8월 28일 도쿄(東京)로 왔는데 이러한 소식을 알게 된 엄귀비(嚴貴妃)가 이근상(李根湘)을 도쿄(東京)로 보내 은 300만원을 주며 귀국하지 말라고 종용하였지만 그는 더 이상 뜻을 굽히지 않고 마침내 1906(광무 10)년 4월 7일 귀국하였다.의친왕이 귀
박관우 역사작가/칼럼니스트고종황제(高宗皇帝)는 1918년 6월 미국유학시절 의친왕(義親王)과 웨슬레안 대학 동문이었던 김란사(金蘭史)를 의친왕과 함께 파리강화회의에 극비리에 특사로 파견해 민족의 독립의지를 표명하려는 계획을 세웠다.그렇다면 고종황제가 언제부터 이런 계획을 세우게 됐는지 구체적인 과정을 살펴본다.고종황제가 덕수궁(德壽宮) 주변의 모든 민가들을 철거하였지만 유독 정동교회(貞洞敎會) 목사관(牧師館) 만큼은 철거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특사 파견 결정 후에 이 특사들을 파리까지 안전하게 인도하는 역할을 하는 손정도(孫貞道),
100년 전 2월 8일 지배국의 수도 도쿄 한복판에서 식민지 유학생들이 주축이 된 독립선언이 이뤄졌다. 이 소식에 조국의 지식인들은 큰 충격과 자극을 받았다. 소식을 접한 천도교 손병희 선생을 주축으로 33인이 결성돼 기미독립선언서가 작성됐다. 아이러니하게도 3.1운동 당일 독립선언서를 읽은 주인공도 민족대표 33인이 아닌 학생 정재용이었다. 33인은 파고다공원에 모인 인파를 보고 유혈사태를 우려해 태화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만세 운동이 예정된 오후 2시가 돼도 민족대표들의 모습을 보이지 않자 학생 정재용이 파고다공원 팔각정에 올라
3.1운동을 주도했던 종교계가 종단별로 기념사업 준비에 한창이다. 100년 전 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민족지도자 33인은 모두 종교인이었다. 이를 주도한 손병희 선생은 천도교만으로는 민족운동이 될 수 없다는 판단에 개신교, 천주교, 불교 지도자에게 참여를 권했다. 최종 구성은 천도교 15명, 개신교 16명, 불교 2명으로 마무리됐다. 천주교는 참여하지 않았고, 개신교는 주최 측보다 많은 16명이나 참여했다. 이런 결과를 두고 개신교는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그 배경에 교단싸움이 있었다는 것을 아는 이들은 별로 없다. 개신교는
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3.1운동은 들불처럼 일어났다. 삼천리 방방골골 독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고 전 민족구성원이 함께했다. 일제 통계만 보아도 3.1운동이 일어나고 3개월 동안 사망자가 7509명, 부상자가 1만 5961명, 체포된 사람이 4만 6948명에 이른다. 3.1운동은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을까. 그동안 역사교육에선 고종의 인산일어서 사람들이 많이 모일 수 있었고 울분에 찬 우리 민족이 독립만세를 외쳤다고 말한다. 3.1운동을 말할 때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을 한 민족대표 33인의 역할이 크게 부각돼 있다.
국립이천호국원 현충과 박종일다가오는 3월 1일은 3∙1운동 99주년을 기념하는 3∙1절이다. 3∙1운동은 일제에 항거해 민족 대표 33인의 독립선언서 낭독을 시작으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우리 민중들의 독립의지를 만방에 알린 독립운동이다.1905년 을사늑약의 강제 체결을 통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일제는 1907년 정미7조약으로 대한제국의 군대를 해산하고 1909년 기유각서로 경찰권과 사법권을 박탈했으며, 마침내 1910년 한일 병합 조약을 강제로 체결·공포해 국권을 침탈했다. 이후 헌병 경찰을 통한 강압적인 무단 통